저탄소협력금제도 도입이 2020년 말까지 연기됐다. 정부의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2009년부터 논의가 시작돼 2012년 상반기 제도시행이 예고됐지만 2013년과 2015년으로 두 차례 늦춰진 바 있다. 이번에 그 시행시기를 2020년 이후로 연기하면서 제도 도입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저탄소협력금 제도는 이산화탄소배출이 많은 차에 부담금을 지우고 적은 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소형차, 디젤차, 친환경차는 유리하고 가솔린차, 배기량이 큰 중대형차는 부담금을 내야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하지만 수입차에 유리하고 국산차에 불리하다며 업계 일부에서 강하게 반발했고 정부는 결국 제도 도입 시기를 늦추게 됐다.
국산차 업계는 일단 큰 위기를 벗어나게 됐다. 유럽산 자동차에 비해 연비가 안 좋은 국산차로서는 제도도입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됐던 만큼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저탄소협력금제도 도입 연기는 국산차 메이커는 물론 한국 사회에 독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기술 개발을 강하게 압박하는 제도가 당장은 입에 쓰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국산차의 연비 수준 향상을 유도해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제도 도입 연기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일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출시한 쏘울 제네시스 쏘나타 카니발 쏘렌토 등을 보면 쏘나타와 카니발만이 이전 모델에 비해 연비가 개선됐다. km당 0.2리터 가량 개선된 쏘나타는 사실상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본다면 카니발 한 차종만이 연비가 좋아진 셈이다.
다운사이징은 연비와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대표적인 기술이다. 엔진 배기량을 줄이고 연비는 개선하고 출력은 높이는 흐름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런 흐름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출력은 높아졌지만 엔진배기량은 그대로고 연비는 뒷걸음질 친다.
연비개선을 압박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기아차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가 무산될 것임을 알고 신차 출시를 준비했는지 모른다. 정부가 제도 시행을 강하게 압박했다면 신차들의 연비는 훨씬 더 좋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큰 변화를 피한만큼 당장 시장이 요동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을 모르는 개구리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독일차를 필두로 유럽차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든 시장 점유율을 차근차근 넓혀갈 것이다.
저탄소협력금 제도를 도입해 당장은 힘들지만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야 했다. 사활을 걸고 그래야 한다. 그 길이 오히려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수입차 공세에 제대로 된 방어막을 치는 길이었다. 보약을 준비했는데 걷어차 버렸으니 이제 그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연비 좋은 작은 차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소비자들도 피해다. 최대 400만 원가량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소비자들은 제도 도입 연기의 최대 피해자일 수 있다. 연료를 많이 쓰고 배기량이 큰 대형차를 타는 부자들은 더 많은 부담을 질 위험을 벗어난 셈이다. 가장 큰 이익을 본 셈이다.
궁극적으로 이 제도는 작은 차 구입을 권장하는 효과를 낸다. 큰 차보다 작은 차 구매를 유도하는 것. 하지만 제도 도입 연기로 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제도가 도입된다는 2020년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궁금해진다. 저탄소협력금 제도 도입 연기는 ‘달콤한 독배’였음을 그때가서 알아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은 점점 뜨거워지는데 솥 안의 개구리는 마냥 행복한 모습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