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발생해 회수한 제품을 해체해 다시 만든 부품에 ‘순정’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재제조부품을 ‘순정르만부품’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판매에 나서기로 했다. 벤츠가 ‘순정르만’이라 부르는 부품은 기존 부품을 반납하면 최대 26%까지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재제조부품이다. 원래의 부품(코어부품)이 고장 났다면 이를 반납하고 ‘순정르만부품’으로 수리하면 최대 26% 싸게 부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어부품을 반납하지 않으면 17% 정도를 할인받을 수 있다.
벤츠 측은 ‘순정르만부품’이 재생부품이 아니라 재제조부품이라고 강조한다. 즉, 기존 부품을 재활용하는 것은 맞지만 원래의 부품 제조사에서 새로 제조해 새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엄격한 품질관리로 순정품과 동일한 품질을 확보했고 품질보증도 동일하게 이뤄진다고 벤츠는 설명했다.
자동차 메이커가 책임지고 부품 재사용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을 생각한다는 측면에서도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다시 만든 부품’ ‘재사용한 부품’ 임을 오해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표기하고 알려야 한다.
순정르만부품은 새제품인가 중고품인가. 순정품인가 아닌가.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순정’ 이라는 단어와 재제조를 의미하는 ‘르만’이라는 단어가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순정부품’은 자동차 제조사가 생산라인에서 사용하는 제품과 동일한 제품을 말한다. 순정부품은 당연히 새제품이고 재생부품이거나 재제조 부품일 리가 없다고 소비자들은 인식한다. 하지만 벤츠는 원래의 부품을 해체해 다시 제조한 부품에 순정 딱지를 붙였다. 르만, 즉 reman이라는 단어는 ‘Re-manufactured’의 줄임 말이다. 다시 만들었다는 의미다. 상충되는 두 단어로 인해 소비자들은 이 제품의 정확한 성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메이커가 품질을 보증한다는 의미에서 ‘순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의 혼란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의견이다. ‘순정’ 이라는 단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다. 진심으로 소비자를 위해 도입한 제도라면 그 이름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비자 친화적이어야 한다. 순정르만부품에서 순정을 빼면 된다. 그냥 ‘르만부품’ 혹은 ‘재제조부품’이라고 표기하면 된다. 굳이 순정을 고집해 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비싼 가격도 문제다. 부품을 반납할 경우 26%, 그렇지 않으면 17%를 할인해준다는 조건을 역산해보면 반납하는 부품 가격은 약 9%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부품가격이 100만원이면 9만 원 정도를 주고 문제 부품을 회수해 재조립 등의 과정을 거쳐 74만원에 재판매하는 것이다. 재제조부품으로는 너무 비싸다.
현대글로비스도 재제조부품을 판매한다. 가격은 정품의 50% 안팎이다. 박스에는 “순정부품 수준으로 복원시킨 재제조부품”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볼보건설기계도 한국에서 재제조부품을 취급한다. 하지만 ‘순정’이라는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냥 ‘르맨부품’으로 판매한다. 소비자들이 오해할 여지가 없다. 벤츠의 사례를 보면서 기존 업체들까지 재제조부품에 순정딱지를 붙일까 우려된다.
순정부품이 아닌 제품에 순정을 수식어로 붙여서는 안 된다. 벤츠의 순정르만부품은 순정부품이 아니다. 순정 딱지를 떼어내야 하는 이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