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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세 완화? 수입차 아닌 서민들 손해

일명 ‘탄소세’로 부르는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도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제도 시행을 1년 앞두고 이 제도를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산차가 역차별 받는다는 논리에 정부가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진단이다.

이 문제는 국산차대 수입차간 차별문제가 아니다. 연비가 나쁜 큰 차와 연비가 좋은 작은 차의 대결이다. 수입차 국산차를 막론하고 연비가 안 좋은 큰 차타는 사람이 부담금을 내고 연비 좋은 소형차를 타는 사람이 보조금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자와 서민의 이익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말 그대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에 부담금을 지우고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차에는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소형차, 디젤엔진차, 하이브리드차 등이 유리하고 대형차, 가솔린 엔진차는 불리한 구조다. 판매비중이 높은 국산 중대형차중에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수한 연비를 가진 차들은 많지 않다. 수입차 중에는 그나마 일부 차종이 이 같은 기준을 만족시키는 중대형 차들이 제법 있다. 독일산 디젤 세단들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수입차가 유리하고 국산차는 불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상직 산업통산부장관도 이 같은 주장에 맞장구를 쳤다. “이 제도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애초 환경부가 생각한 시행방안보다 완화하는 방향으로 새로 짜고 있다”고 윤장관은 말했다. 잘못된 판단이다. 윤장관은 국산차와 수입차 사이의 형평성을 따질 게 아니라 부자와 서민 사이의 형평성을 봐야 한다.

이 제도를 좌초시키거나 완화시킬 경우 손해보는 것은 수입차도, 국산차도 아닌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보조금과 부담금을 받지도 내지도 않는 중립구간이 131~150g/km (1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31~150g)으로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기준으로 에너지관리공단의 국내 수송에너지 자동차 리스트를 분석해보면 부담금을 내야하는 차종은 국산차가 135개 차종인데 반해 수입차는 무려 461개 차종이다. 수입차가 3배 이상 더 많다.(스타렉스 등 상용차는 제외) 특히 가장 많은 부담금을 내야하는 191g/km 초과 구간에서는 국산차가 50개 차종, 수입차는 297개 차종으로 6배 가까이 수입차가 많다. 연비가 안 좋은 차종이라면 수입차에도 만만치 않은 타격이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보조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는 130g/km 미만에서도 국산차는 결코 수입차에 불리하지 않다. 수입차가 100개 차종, 국산차가 89개 차종이 이 구간에 포진하고 있다. 전기차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는 41~100g/km 구간에는 국산차 14개 차종, 수입차 10개 차종이 있다. 국산차가 더 많다. 보조금을 받게 되는 국산차는 대부분 배기량 1.6 미만의 경·소형, 준중형 차들이다.

결국 국산차가 타격을 입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국산차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연비가 안 좋기 때문이다. 즉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하지 못한 책임이다. 저탄소협력금 제도는 어느 날 뚝딱 시작하게 되는 제도가 아니다. 당초 2012년 도입 예정에서 2013년 상반기로 미뤘다가 다시 2015년으로 연기됐다. 충분히 예고됐던 만큼 국산차, 수입차를 막론하고 이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산차 메이커들은 이 부분에 소홀했다.

대표적인 부분이 엔진 다운사이징이다. 엔진 다운사이징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엔진 배기량을 줄이고 연비는 개선하고 출력은 높이는 흐름이다. 1.8 엔진으로 과거 2.0, 혹은 2.5 엔진만큼의 출력을 내고 연비는 더욱 개선하는 것. 국산차 메이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현대기아차는 이 부분을 간과했다. 출력은 높아졌지만 엔진배기량은 그대로고 심지어 연비는 나빠지기도 한다. 최근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메이커들이 한국 시장만을 보고 이 같은 기술개발을 해온 것은 아니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흐름이 연비를 강화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개편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차근차근 대비해온 것이다.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가 2008년부터 시행중이다. 싱가포르에서도 곧 도입이 예정돼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등 11개주에서는 전기차를 포함해 친환경차 의무판매비율을 2018년부터 강제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에 부담금을 지우는 제도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기술력으로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해외 판매 비중이 80%에 달하는 현대기아차로서는 새겨들어야할 대목이다. 글로벌 무대에서의 제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연비 관련 기술개발이 절실한 때다. 안방에서 투정부릴 때가 아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의 후퇴를 반길 이들은 국산차 수입차를 막론하고 자동차업계 전체다. 수익이 많이 남는 비싼 대형차를 계속 많이 팔 수 있어서다. 제도 시행으로 수입차 업계가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제도를 시행하지 않거나 완화될 경우에 기대되는 이익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중대형차가 여전히 많이 팔리면 세금을 많이 거두게 되는 정부도 나쁠 게 없다.

결국 제도 후퇴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서민들뿐이다. 보조금을 받고 좀 더 싼 값에 연비 좋은 소형차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산차 보호를 명분으로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더는 미루지 말고 예정대로 이 제도를 시행해 국산차 메이커를 자극하고 연비를 개선하는데 사활을 걸고 매달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통해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산차 메이커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는 수입차와 국산차간 형평성 문제가 아니다. 큰 차와 작은 차, 부자와 서민 사이의 형평성 문제다. 둘 중 어느 쪽의 이익을 고려해 정책을 펴야할지가 정부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예정대로 제도를 시행하면 된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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