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5, 7로 이어지는 숫자는 정겹다. 1월 1일은 설날이고 3월 3일은 삼짇날이고, 5월5일은 단오고 7월7일은 백중, 9월9일은 중양절이다. 예로부터 홀수를 사랑했던 민족이다. 점백에 1, 3, 5, 7로 고스톱 한 판을 즐기는 이들에겐 의미 없는 짝수보다 홀수의 의미가 더 각별하다.
BMW가 홀수 시리즈를 라인업의 기둥으로 삼은 건 그런 면에서 재미있다. 그들이 한국 시장을 보고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인 셈이다.
그런 BMW가 이제 본격적인 짝수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일찌감치 6시리즈를 내놨고 지난 10월에 4 시리즈를 한국에 선보였다. 곧 2시리즈도 나올 예정이다. 세단을 1, 3, 5, 7로 배치하고 그 사이 사이에 2, 4, 6을 쿠페, 컨버터블 등 틈새 차종으로 매꾼다는 그림이다. 틈새차종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차다. 파생차종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만든 차라는 설명이다.
시승차는 BMW 428i.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느낌이 한결 가볍다. 파란 보디컬러에 빨간 색이 주를 이룬 인테리어는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무채색 자동차에 익숙한 우리에게 원색이 주는 자극은 생각보다 크다. 낯선 상대에서 느끼는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길이 4638mm, 너비 1,825mm, 높이 1,362mm에 휠베이스는 2810mm다. 3시리즈 쿠페와 비교해보면 길이는 26mm, 휠베이스는 무려 50mm나 길어졌다. 높이는 16mm 낮아졌고 너비는 14mm 늘었다. 3시리즈 쿠페보다 훨씬 다부진 몸매다. 휠베이스가 길어졌고 높이가 낮아졌음에 주목해야 한다. 훨씬 더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는 체격을 갖춘 셈이어서다.
실제로 4시리즈는 로드스터인 Z4와 시트포지션이 같고 BMW 라인업 중에서 무게중심이 가장 낮은 차다. 여기에 더해 국내에 판매되는 모든 4시리즈에는 M 스포츠 서스펜션이 기본 장착된다. 도로에 착 달라붙어 달리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4인승 2도어 쿠페. 두 개의 도어는 크고 시트는 쉽게 젖힐 수 있지만 그래도 뒷좌석에 드나들기는 쉽지 않다. 불편하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4인승 쿠페가 원래 그렇다. 그런 불편함이 싫다면 세단을 택하면 된다.
대신 날렵한 디자인과 역동적인 주행성능은 세단을 넘어서는 쿠페의 장점. 4 시리즈 역시 예외는 아니다.
428i의 엔진 배기량은 1,997cc다. 8단 변속기와 짝을 맞춰 최고출력 245마력의 힘을 낸다. 트윈터보로 배기량의 한계를 극복하고 높은 출력을 만들어냈다. 최대토크는 1,250~4,800rpm 구간에서 35.7kgm를 뽑아낸다. 가솔린 엔진임에도 디젤 엔진처럼 낮은 rpm에서부터 최대토크가 나온다. 연료에 따른 엔진특성 차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차다. 가솔린은 디젤처럼, 디젤은 가솔린처럼 서로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의 특성이 서로 비슷하게 수렴되고 있는 것.
제법 빠르다. 메이커 발표에 따르면 정시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5.8초에 불과하다. 스포츠카 수준의 순발력이다. 킥다운이 걸릴 때까지 가속페달을 밟아 밀어붙이면 시트가 몸을 밀고 가는 가속감을 체감할 수 있다. 엔진은 7,000rpm까지 치솟은 뒤 변속에 들어간다.
숨가쁜 변속이 이어지고 아주 빠른 속도에 이르면 의외의 안정감이 찾아온다. 고속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저속에서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변하고 시야는 좁아지는 속도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색다르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차분하게 총을 겨누는 스나이퍼의 평상심을 느낀다.
시속 120km 부근을 넘어서면서 바람소리가 생각보다 더 크게 들린다. 바람소리 자체가 크다기보다는 그 이전에 너무 조용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바람소리가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모든 주행상황에서 힘은 넘친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가파른 언덕을 쉽게 올라선다. 고속에서의 순간 가속도 너끈히 해낸다. 디젤 엔진처럼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최대토크를 뽑아내고 고속에서는 가솔린 엔진의 특성을 십분 발휘해 탄력 있는 주행을 보여준다.
주행모드는 모두 다섯 단계로 나뉜다. 스포츠 플러스, 스포츠, 컴포트, 에코, 에코 프로 등이다. 각 단계의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지만 스포츠 플러스의 단단하고 강한 느낌은 몸이 먼저 느낀다.
시승차에는 앞 뒤 모두 컨티넨탈이 만든 225/45R18 사이즈의 런플랫 타이어가 장착됐다. 원래 이 사이즈는 디젤 엔진 모델인 420d에 장착된다. 428i에는 앞에 225/40R19, 뒤에 255/35R19가 적용된다. 원래 타이어를 달았다면 훨씬 강한 구동력을 확보하는 대신 어느 정도 연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2.2 회전하는 스티어링 휠을 통해서는 매우 날렵한 조향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 4,639mm의 차체를 다루는 데 부담이 없다. 후륜구동으로 안정감 있는 무게 배분에 힘입어 가속, 방향전환, 턴 등이 무리가 없다. 발레리나가 정확하게 계산된 동작으로 무대를 누비듯 도로를 장악하며 달린다.
보닛을 열 수가 없었다. 보닛 레버를 잡아당겼는데 후드를 물고 있는 레버를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보닛 레버를 잘 살펴보니 ‘x2’ 표시가 있다. 두 번 잡아당기니 보닛이 열린다. 모를 땐 고생스럽고 짜증났는데 알고 나니 참 쉽다.
내비게이션은 선명하고 터치패드가 가능해 편했다. i 드라이브 컨트롤러를 통해 한글과 영어를 손으로 써도 인식한다.
복합 연비는 11.3km/L로 4등급에 해당한다. 고속도로 연비는 14.1km/L, 도심연비는 9.7km/L다. BMW 428i M 스포츠 패키지 판매가격은 6,42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은 개선이 필요하다. 차가 멈춰 시동이 꺼지면 핸들이 잠긴 듯 무거워진다. 이 상태에서 핸들을 돌리면 시동이 걸린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시동이 걸린다.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도 핸들을 쉽게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시동이 걸리는 시점도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때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밟는 시점이라야 운전자가 좀 더 편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