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창세기 2장을 쓰기 시작했다. 신형 제네시스를 앞세워서다. 제네시스 2세대 모델이 본격적인 바람몰이에 나섰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서울을 떠나 전남 광주에서 영암까지, 그리고 영암 F1 서킷에서 제네시스를 탔다. 시승모델은 G 380 H트랙.
현대차가 명운을 걸고 개발했다는 제네시스다. 이름부터 비장하다. 제네시스는 창세기를 말한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담기에 이보다 좋은 이름이 있을까.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거는 기대는 크다. 제네시스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고 싶은 게 현대차의 소망이다. 그렇게 만든 제네시스가 이제 2세대 모델로 진화했다. 창세기 2장인 셈이다.
현대차는 1세대 모델에 비해 훨씬 더 자신감 있는 태도다. 그만큼 공을 들였다. 현대차가 적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과 기능, 안전장비들이 총동원됐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프리미엄 세단 이상이라는 게 현대차의 자랑이다. 과연 그럴까.
자신감은 디자인에서부터 드러난다. 현란하거나 과장되지 않았다. 측면에는 기울기 없는 플랫한 라인이 두드러진다.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기울여 다이내믹함을 강조하는 시도도 접었다. 견고한 수평라인에서 강한 자신감을 읽는다. 강고한 옆모습은 참 보기 좋다. 하지만 리어램프는 흔들렸다. 측면을 파고도는 리어램프의 끝이 거슬린다. 그냥 단정하게 마무리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차후에 리어램프 형상 변경을 하게 될 경우 보디까지 손봐야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넓은 면적을 수평 라인만으로 커버해 시원하게 배치했다. 강한 첫인상을 주면서도 튀지 않는 안정감이 있다.
현대차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인테리어는 매우 고급스럽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는 몸을 잘 받쳐준다. 열선이 내장된 핸들은 추위에 언 손을 순식간에 녹여준다. 핸들, 대시보드의 버튼들, 변속레버 등은 손이 먼저 느낀다. 촉감이 좋아 일없이 자꾸 이것 저것 만지게 된다.
대시보드와 도어패널에 적용한 나무도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자연스럽다. 뒷좌석은 전동 슬라이드가 적용돼 시트를 뒤로 누일 수도 있고 버튼을 눌러 앞좌석을 멀찌감치 밀어낼 수도 있다. 운전기사를 두고 주인은 뒷좌석에 앉아서 다녀도 좋을 구조다. 뒷좌석 좌우로는 별도의 모니터가 마련됐다. 후륜구동, 혹은 사륜구동인 탓에 뒷좌석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센터터널은 어쩔 수 없다. 센터터널이 주는 공간 제약은 그러나 5명이 탈 때만 느끼는 불편이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자연스럽게 핸들을 돌려보는데 반발력이 크다. 무겁다는 말이다. 가볍게 휙휙 돌아가는 이전의 핸들이 아니다. 파워 스티어링이기는 하지만 적당히 힘을 써야 돌아간다. 완전히 감아 돌리면 2.6회전 한다. 반응이 빠른 조향비를 택했다.
당연한 선택이다. 다이내믹한 스포츠 세단을 지향하고 있어서다. ‘기본기에 충실한 다이내믹 세단’ 현대차가 이 차를 설명하는 기본 컨셉이다. 초강력 강판을 대거 적용하는 등 섀시 강성을 높였고 주행성능을 대거 보완해 제대로 달리는 차로 만들었다는 것.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녹색지옥이라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클링으로 끌고간 이유이기도 하다. 선진 메이커들이 차를 단련시키는 그곳에서 현대차도 제네시스를 조련했다는 것. 이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뉘르부르클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주행속도와 목적지 안내 등 운전자가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앞 창에 띄워준다. 계기판을 보려고 시선을 아래로 내릴 필요가 없다.
엔진 소리는 현대차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다. 살아 있다. 독일 세단에서 느끼는 박력있는 엔진 사운드를 제네시스에서도 이제 느낄 수 있다. 소리를 조율해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제법 듣기 좋은 사운드를 잘 만들어 냈다.
엔진 소리는 예민한 문제였다. 소리는 없애는 게 좋은 것이고 실내는 무조건 조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랫동안 현대차를 짓누르고 있었다. 좀 더 스포티하고 다이내믹한 성능을 보이겠다며 올해 1월에 선보였던 제네시스 다이내믹 모델에서조차 적막한 실내를 만들었을 정도다. BMW를 잡겠다며 만들었는데 렉서스 같은 차가 나와버린 이유다.
2세대 제네시스에선 그런 소리의 강박을 완전히 벗어났다. 쉽지 않은 결단이라 짐작해본다. 이제 남은 문제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지금도 한국의 소비자들, 특히 대형 세단을 타는 이들은 조용한 차, 편안한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하나의 숙제가 남은 셈이다.
V8 3.8 람다 엔진은 최고출력 315마력을 6,000rpm에서, 최대토크 40.5kgm를 5,000rpm에서 뿜어낸다. 이 힘을 조율하는 건 8단 자동변속기다. 힘 센 엔진에 고단 변속기를 물려 큰 힘을 쓰지 않고도 빠른 속도로 달린다. 시속 100km에서 엔진 rpm은 1,600 전후로 안정적이다.
가속페달의 킥다운 버튼도 현대차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부분이다. 밋밋하게 바닥까지 밟히던 가속페달 대신 마지막 부분에서 한 번 걸리면서 운전자의 의사를 타진하는 반응이 좋다. OK! 지금부터 달린다하고 가속페달을 마지막으로 꾹 누르면 6,500rpm까지 거침없이 내닫는다. 레드존을 터치한 뒤에는 시프트업과 함께 5,000rpm으로 한 발 물러선 다음 또 다시 가속이 이어진다.
하체는 단단하다. 빙상선수의 허벅지처럼 단단한 하체는 흔들림 없이 차체를 받쳐주는 한 편 노면 충격도 높은 수준으로 흡수해준다.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의 느낌을 보면 알게 된다. 잔진동없이 깔끔한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가속감은 묵직하다. 공차중량 2,000kg.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은 아니다. 사륜구동 H트랙이 더해져 차는 조금 더 무거워졌다. 연비는 손해를 봐야 했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가속감은 안정감이 있다. 앞 뒤 51: 49의 무게비에 네 바퀴가 모두 구동해 높은 수준의 안정감을 만들어냈다.
한 차원 높은 코너링도 사륜구동을 도입한 덕분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빠져나오는 램프를 돌아나가는데 조금 과한 속도도 편안하게 소화한다. 영암 F1서킷의 코너에서도 그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났다. 깊은 엑셀과 과한 스티어링 조작으로 전륜구동이나 후륜구동이라면 차가 스핀할 정도의 상황에서 시승차는 약간의 타이어 마찰음 정도로 커버했다. 네 바퀴가 모두 구동력을 확보해 코너에서의 한계성능이 높아진 덕이다.
제네시스 계약 고객중 70% 이상이 H트랙을 선택하고 있다. 그만큼 사륜구동 세단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을 작동시키면 차량의 흐름을 따라 장거리를 운전할 때에는 가장 유용한 장치다. 속도를 정해 놓으면 그 속도 안에서 가속과 감속을 스스로 하면서 달린다. 이와 별도로 자동긴급 제동장치도 있다. 아차하고 브레이크 타이밍을 놓쳤을 때 차 스스로 제동을 건다. 운전자를 돕는 최후의 지원군이다.
안전 및 편의장비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다. 차선이탈 경보시스템, 어드밴스드 주차조향 보조 시스템, 선회제동 시스템, 과속위험지역 자동감속 기능, 스마트 하이빔, 스마트 후측방 경보 시스템, 액티브 후드 시스템, 전좌석 냉난방 통풍시트, 고스트 도어 클로징, 뒷좌석 전동 시트 등이 차의 구석 구석에 배치돼 운전자를 지원하고 탑승객을 편안하게 한다.
안전을 위해 고장력강판을 많이 썼고 많은 편의장치들을 장착하느라 무거워졌다. 어느 정도 연비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최고수준의 편의장비들을 모두 장착하려고 욕심을 부린 결과다. 제네시스 G380 H 트랙의 복합연비는 9.0km/L, 도심 7.4km/L, 고속도로 11.3km/L다.
제네시스의 판매가격은 4,660만원부터 6,960만원까지다. 250만원을 더주면 H트랙을 장착한 사륜구동모델을 택할 수 있다. 가격과 편의장비 수준을 보면 BMW5시리즈나 벤츠 E클래스에 밀리지 않는다. 현대차는 능가한다고 자랑했다. 한 번 붙어볼만한 정도는 된다고 보인다.
문제는 독일산 프리미엄 세단의 대체재로 제네시스가 인정받을 수 있는가다. 현대차에 따르면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독일산 프리미엄 세단 경쟁모델들의 11월 판매가 전달에 비해 17% 가량 줄었다는 것. 제네시스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사전 계약이 이미 1만2,000대를 넘겼다고 한다. 제네시스가 큰 파도를 일으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차가 멈추면 시동이 꺼지는 ISG가 없다. 한 방울의 연료도 아껴야할 입장인데 ISG가 없는 건 의문이다. 계기판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뜬다. 필요한 정보를 빠른 시간에 보기가 힘들다. 첨단 기능을 가진 안전 및 편의장치가 많아 이와 관련된 많은 정보들이 올라와서다. 좀 더 일목 요연하게 정돈된 계기판이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