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다. 진짜 크다. 5m를 훨씬 넘는다. 제원표에서 확인한 이 차의 길이 5,165mm다. 너비는 1.931mm이고 사이드미러를 포함하면 2,114mm에 이른다. 높이는 1,425mm다. 우람한 모습을 드러낸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 차 만큼이나 이름도 길다.

5,015mm의 길이를 가진 파나메라도 충분히 큰데 여기에 휠베이스를 무려 150mm나 늘려 리무진으로 만든 게 이그제큐티브 버전이다. 포르쉐는 지난 9월 한국에서 신형 파나메라를 선보이며 파나메라 4S와 터보에 이그제큐티브 버전을 추가했다.

무지막지한 크기는 필연적으로 호화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화려함이다. 개인별로 조절이 가능한 4존 에어 컨디셔닝 기능, 리어 캐빈 실내조명 패키지, 전기 콘센트가 장착된 중앙콘솔, 햇빛의 추가 차단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측면 및 후면 유리의 전동식 선블라인드 등이 있다. 뒷좌석 공간이 황송할 정도로 넓어지고 다양한 편의장치도 더해졌다.

뒷좌석 헤드레스트는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시트의 요추 서포트는 네 방향으로 조절된다. 뒷좌석 시트도 난방과 통풍이 된다. 실내조명은 뒷좌석에 초점을 맞췄다. 발 밑 공간 조명, 도어 수납공간 조명, 천장 조명, 2개의 독서등이 있다. 조명만으로도 충분히 호화롭다. 앞좌석 헤드레스트 뒤로는 뒷좌석 승객을 위한 개별 모니터가 내장됐다.

크고 넓고 호화로움의 극한을 이루는 차. 독일식은 아니다. 중국에선 이런 차가 대환영이다. 그 씀씀이를 가늠하기 힘든 중국의 부호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차다. 2억5,690만원. 파나메라의 가격표에서 가장 아래에 자리한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를 탔다.

도어는 대충 걸쳐놓으면 유령이 잡아당기듯 스르르 닫힌다. 문이 제대로 안 닫혔다고 열었다 닫는 일은 적어도 이 차에선 없다.버킷 시트는 몸에 착 감긴다. 착용감 좋은 슈트처럼 승객의 몸을 잘 받아준다. 핸들 오른쪽에 자리한 키홀더에는 키가 꽂혀있는 것처럼 손잡이가 붙박이로 설치됐다. 키를 몸에 지닌 채 키홀더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시동이 걸린다. 그냥 버튼 시통키가 낫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포르쉐의 전통을 아는 이라면 왼쪽 손으로 시동을 거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주행모드는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노멀 3단계로 나뉜다. 스포츠, 혹은 스포츠 플러스를 택하면 스티어링 휠에도 표시가 된다. 조금 더 도전을 해서 론치 스타트도 가능하다. 최대의 가속력을 얻기 위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함께 밟으면 rpm이 3,000 근처에서 안정되며 핸들에 론치 스타트 등이 표시된다. 이 상태에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최대의 가속력을 얻을 수 있는 것. 덩치가 크고 호화로운 GT카이지만 스포츠 모델 911의 핵심 기능들은 그대로 파나메라에도 적용됐다. 바꿔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고 이 원칙을 지켜가는 것. 이것이 포르쉐의 강점이다.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조금 큰 듯한 핸들은 약 2.7회전 한다. 덩치는 무지막지하게 키웠지만 그렇다고 핸들링까지 양보할 수는 없었나 보다. 차체는 스티어링에 빠르게 반응했다.

4.8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에서 터지는 힘이 무려 520마력, 토크는 71.3kgm에 이른다. 이 정도면 수퍼카다. 공차중량 은 2,070kg으로 사이즈에 비해 무겁다고 할 수 없다. 1마력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 즉 마력당 무게비를 따져보면 4.0kg에 불과하다.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4.2초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수긍이 간다. 10초 안에 시속 100마일 즉 160km/h에 도달하고 14.2초면 시속 200km를 넘어선다는 게 메이커의 발표다.고속주행에서도 차의 흔들림은 크지 않다. 바람 소리도 생각보다 조용한 편이다. 덕분에 매우 빠르게 달리면서도 승객이 느끼는 불안감은 거의 없다. 고속 주행안정성이 놀라울 정도로 우수하다.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엔진 사운드. V8 터보 엔진에서 터지는 우렁찬 소리는 주변을 압도한다. 사운드 튠 버튼이 있어 더욱 자극적이고 힘 있는 소리를 즐길 수 있다. 사운드 튠을 작동하고 달리다가 시프트다운을 시도할 때 터지는 엔진 사운드는 정말 매력적이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자꾸 시프트다운을 시도하게 된다.더블 클러치를 적용한 7단 PDK 변속기는 엔진 출력을 잘 조율해낸다. 기어비는 1단에서 5.97, 5단에서 1:1을 보이고 6, 7단이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7단 기어비는 0.59.

시속 100km에서 rpm은 1,400에 머문다. 크루즈컨트롤을 시속 100km에 맞춰 변속을 해보면 6단 1,900, 5단 2,400, 4단 3,200, 3단 4,800rpm을 각각 마크한다.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1단 시프트다운이 일어나고 차는 예민해진다. 다시 스포츠 플러스를 누르면 한 번 더 시프트다운이 일어난다. 노멀모드 보다 2단을 낮추는 것. rpm은 당연히 더 올라간다.가속을 깊게 이어가면 6,500rpm까지 거침없이 치솟은 뒤 변속이 일어나면서 rpm은 4,500 까지 떨어진 뒤 다시 회전수를 높여나간다. 핸들에 붙은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변속을 이어가는 재미도 크다.
V8 엔진은 보어가 96mm, 스트로크가 83mm다. 전형적인 쇼트 스트로크 엔진으로 고속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차선이탈 감지장치와 액티브 크루즈컨트롤 시스템(ACCS)은 안전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ACCS은 정해진 속도 안에서 앞차에 맞춰 스스로 속도를 조절한다. 완전 정지까지도 가능하다. 앞차와의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데에도 즉, 추돌 위험이 있는데도 운전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경고음을 내고 제동까지 한다. 하지만 운전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운전자의 몫이다. 차를 과신해 운전에 집중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탁 트인 길을 시원하게 내달릴 때가 이 차의 압권이다.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작정하고 내달리면 스트레스 쌓일 일은 없겠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좁은 길을 갈 때엔 최악이다. 서울 강남 르네상스 호텔의 지하 주차장이 그런 길이다. 좁은 나선형 통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추운 날씨에도 땀이 삐질 삐질 흘렀다. 앞을 보면 뒤가 걸리고 뒤를 보면 앞이 걸린다. 달팽이 기어가듯이 움직여야 했다. 하긴 이 정도 차는 발렛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손수 주차장으로 운전해 가는 게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

고급 휘발유를 사용해야 하는 이 차의 복합연비는 7.3km/L. 기름값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이 차의 고객층이 아니다. 포르쉐 성능의 진수에 더해 이그제큐티브의 호화로움을 만끽하려면 감수해야할 연비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내비게이션은 안습이다. 2억5,690만 원짜리 차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제품을 탑재했다.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보는 순간 이 차에 대한 기대가 단박에 곤두박질친다. 이 차에 이건 아니다.차가 멈추면 엔진도 따라 멈추는 오토스탑 기능은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부분 금방 풀렸다. 잠깐 시동이 꺼지는가 싶으면 금방 다시 시동이 켜지는 식이다. 방향지시등의 조작감은 거칠고 딱딱하다. 조금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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