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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본능을 자극하는 그랜드 체로키

남자는 힘이라 했던가. 지프의 플래그십 그랜드 체로키를 마주하면서 든 뜬금없는 생각이다. 5m를 육박하는 길이, 1.9m를 넘기는 너비, 그리고 1.7m를 넘기는 높이. 딱 벌어진 어깨에 근육과 살이 적당히 붙은 덩치 큰 미국 남자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을 지냈던 웨인첨리가 생각난다.  
지프 그랜드체로키. 마초들의 본성을 자극하는 차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크기, 도심지향이라며 한없이 나긋나긋해지는 다른 SUV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프로드도 다 같지 않다며 다양한 악조건을 대비한 기능들을 장착한 내실. 거친 야성을 굳이 숨기지 않는 남자의 차다. 

그런 면에서 따진다면 랭글러가 한 수 위다. 단기필마로 거친 황야를 누비는 총잡이의 차가 랭글러라면 그랜드 체로키는 일가를 태우고 서부를 달리는 스테이션 왜건쯤 되겠다. 그 차의 운전석에서 한 팔을 내밀며 피우는 담배는 말보로가 어울리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체로키’라는 차 이름은 서부의 총잡이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기도 하다. 잔인한 역설이다. 

그 차, 그랜드 체로키를 만났다. 3.0 디젤 오버랜드 모델이다. 
7슬롯 그릴, 7개의 구멍으로 이루어진 수직형 그릴은 지프의 상징이다.  그 양옆으로는 새롭게 변한 헤드램프가 자리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실내 공간은 따로 살펴볼 것도 없이 넓다. 뒷좌석은 다리를 꼬고 앉아도 편할 정도다. 핸들 아래로는 레버가 하나뿐이다. 그 레버 하나로 방향지시등, 와이퍼, 리어 와이퍼를 모두 작동시킨다. 간단해서 좋다. 

휠하우스에는 금호타이어 솔루스 265/50R20 사이즈의 타이어가 자리했다. 

그랜드 체로키는 굳이 야성을 숨기지 않는다. 거친 정도를 넘어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에 도전하는 오프로더 본연의 자세를 간직하고 있다. 곳곳에서 그런 야성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핸들 회전수도 그중 하나다. 한없이 돌아가는 스티어링 휠은 무려 3.7 회전을 한다. 일반적인 차들의 스티어링 회전수가 3회전이고 3.5 회전하는 차들은 겨우 손에 꼽을 만한데 그랜드 체로키는 이마저도 넘는다. 핸들을 완전히 감았을 때 약간의 유격도 있다. 
오프로드를 감안한 세팅이다. 핸들조작이 중요한 오프로드에서는 어느 정도 유격이 있고 회전수가 많아야 유리하다. 

변화무쌍한 차 높이도 그렇다. 기본 차 높이에서 아래로 41mm, 위로 56mm 까지 변한다. 최대 97mm 차이가 나는 셈이다. 오프로드에선 최저 지상고가 높으면 훨씬 움직임이 자유롭다. 
3.0 디젤 오버랜드 모델에는 쿼드라 드라이브 4WD 시스템이 있다. 전자제어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을 뒷 차축에 적용해 좌우측 토크를 조절한다. 

셀렉 터레인 시스템도 있다. 운전자가 주행상황에 맞춰 다이얼을 돌려 샌드, 머드, 오토, 스노, 락 등 5가지 모드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오프로드에 자신이 없는 운전자에게 셀렉터레인 시스템은 큰 도움이 된다. 어지간한 경우는 이 레버를 돌리는 것만으로 험로에서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다. 

셀렉 터레인 시스템을 포함하는 사륜구동장치는 그랜드 체로키의 생식기다. 지프의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튼튼한 물건을 가진 수컷임을 말해주는 증거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입장에서 본다면 사륜구동장치도 없이 무늬만 SUV인 차들은 거세당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차가 높다. 게다가 서스펜션은 조금 물렁하다. 미국차의 물렁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오프로드를 고려한 것으로 보고 싶다. 오프로드에선 하드한 서스펜션보다 조금 무른 하체가 낫다. 출렁이는 차체에 몸을 맡기고 오프로드를 타본 이들은 안다. 

오프로드에서 로모드를 택했다. 차고가 높아지고 속도는 확 줄어든다. 동시에 타이어의 강한 구동력이 전해온다. 게으름뱅이의 발걸음처럼 느릿하지만 두꺼운 허벅지로 튼튼하게 걸어가는 느낌이다. rpm을 높여도 차는 빨리 달리기를 거부한다. 변속기를 4단으로 높여도 시속 20km 정도를 마크할 뿐이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연스럽게 강한 엔진 브레이크가 걸린다. 
아무리 오프로드 주행을 감안한 차라고 해도 움직이는 대부분은 온로드일 수밖에 없다. 온로드 주행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3.0 디젤엔진이 뿜어내는 힘은 최고출력 241마력, 최대토크 56.0kgm다. 출력보다 토크에 더 눈길이 간다. 1,800rpm에서 나오는 최대토크는 대단히 강력했다. 공차중량 2,400kg의 거구를 가뿐하게 끌고 나간다. 
 ZF사의 8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해 낮은 rpm에서도 충분한 힘을 뽑아낸다. 시속 100km로 달릴 때 rpm은 1,600에 불과했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변속기를 7단으로 물리면 2,000 rpm이 된다. 

계기판은 다양한 정보를 표시한다. 크루즈 컨트롤, 구동상태, 타이어 공기압 등의 정보를 보여준다. km로 보이는 속도계를 버튼 하나 눌러 마일로 볼 수도 있다. 

8.4인치 터치 스크린이 적용된 유커넥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놀랍다. 한국어를 인식한다. 블루투스로 핸드폰을 연결해 놓으면 음성으로 전화를 걸 수도 있다. 문자 메시지를 한글로 읽어주기도 한다. 조금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지만 듣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로컬 시장에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음이 놀랍다. 

온로드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껑충했던 키가 낮아진다. 흔들림이나 거동에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지만 시트 포인트도 따라 내려가면서 운전자는 좀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중미산 와인딩 코스에 올랐다. 그랜드 체로키가 이런 길을 마구 달리는데 어울리는 차는 아니지만 사륜구동차로 코너에서의 안정감을 느끼기엔 나쁘지 않은 길이다. 

타이트한 코너를 돌 때 핸들을 조금 더 돌려야 한다. 헤어핀일 경우 핸들 컨트롤을 하는 경우 난감할 때가 있다. 하지만 국도의 와인딩 코너 정도는 충분히 커버한다. 
출력도 좋아서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다. 거침없이 오르막을 내달리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뱉으며 야무지게 코너를 물고 달린다. 
이어지는 내리막 코스. 사륜구동이 오프로드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와인딩에서 사륜구동은 이륜구동에 비해 탁월한 안정감을 자랑한다. 네 바퀴 모두 구동하는 만큼 코너 한계 속도가 높고 직선에서 안정감도 높다. 

시속 90km 전후로 달리면 앞차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 잔잔하게 들린다.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그런대로 편안한 수준의 바람소리다. 8단 변속기는 rpm을 높게 쓰지 않는다. 가속할 때 말고는 엔진소리를 크게 들을 일이 없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차간 거리가 가까워지면 스스로 제동한다. 믿고 운전할 수 있는 장치다. 오프로드에서 움직일 때 이런 전자장치들과 센서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랜드 체로키는 오프로드에 강하고 온로드에서도 편안한 움직임을 보인다. 빨리 달려야겠다고 작정하고 밟으면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유현진처럼 육중한 덩치가 제법 빨리 몸을 놀린다. 가속페달은 킥다운이 없어 아무런 저항 없이 바닥에 닿는다. 

차 높이가 있다 보니 도로에 밀착된 느낌은 없다. 높게 앉아 멀리 보며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여행을 하기에 제격이다. 때로 그 여행지가 산 넘고 물 건너는 험한 길이어도 상관없다. 무늬만 SUV인 차들이 결코 갈 수 없는 곳을 목적지로 삼는다면 지프 그랜드 체로키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비를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계기판에 연비 표시는 11.5라는 숫자가 표시된다. 11.5km/L가 아니라 11.5L로 100km를 간다는 의미다. 8.7km/L 정도다. 메이커에서 발표한 복합연비는 11.7km/L로 3등급에 해당한다. 도심연비는 10.5, 고속도로 연비는 13.4km/L다. 

3.0 오버랜드는 7,490만원이다. 3.0 디젤 리미티드는 6,890만원, 3.6 가솔린 오버랜드는 6,990만원이다. 가장 비싼 모델은 디젤 3.0 서밋으로 7,790만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변속레버는 R로 이동할 때 자꾸 자리를 잘못 잡는다.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R로 움직이는데 P로 가거나 D로 가는 경우가 많다. 오작동의 우려가 크다. 물론 이런 경우는 차가 정지 상태인 경우이기 때문에 오작동에 따르는 위험이 큰 편은 아니지만 성질 급한 운전자가 서두르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오작동하지 않게 좀 더 정확하게 작동하는 확실한 방법을 만들어야 하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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