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개막했다. 화석 연료를 태워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머플러 없이 전기로 모터를 돌려 달리는 전기차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르노삼성차 SM3 ZE, 레이 EV, 스파크 EV등이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 개막을 알리고 있다. 그중 하나 르노삼성차의 SM3 ZE를 제주에서 만났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제주도는 전기차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이다. 관용차의 대부분을 전기차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세울 만큼 적극적이다. 서귀포를 출발해 제주도의 서쪽 일주도로를 따라 제주시까지 달렸다.
버튼식 시동키를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다. 말이 시동키지 스위치를 ON으로 누른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 가속페달을 밟아야 비로소 차는 반응을 시작한다. 아무런 소음이 없는 차는 발 없는 유령이 소리 없이 움직이듯 스르르 굴러가기 시작한다. 시속 30km미만에서는 일부러 차의 소음을 만들어 보행자들에게 알리는 기능이 있다. 너무 조용해서 일부러 소리를 만들어 내는 역설. 하지만 그 소리는 나는 듯 마는 듯 실내에서는 알아채기 힘들다. 차창을 열고 유심히 귀 기울여 들어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가 없다. 전기로 모터를 돌려 구동력을 얻는다. SM3ZE의 모터는 14,000 rpm까지 사용할 수 있다. 초반부터 가속력이 거침없이 뻗어가는 이유다. 속도를 높여 바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엔진 소리가 사라진 자리는 어색한 침묵이 차지한다. 전기를 받아 모터가 돌아가는 ‘윙’하는 소리가 낯설다.
전기차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얼굴을 갖는다. 경제성, 효율을 중시하는 태생적인 속성이 그 하나이고 엔진 회전수의 서너배를 거뜬히 소화하는 전기 모터의 특성으로 인해 순간 가속은 물론이고 쭉쭉 뻗어나가는 가속감이 스포츠카를 능가한다는 것이 두 번째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효율이 높은 차로 만들 수 있는가하면 슈퍼카를 능가하는 스포츠카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그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자린고비처럼 운전하다가도 마음먹고 밟으면 시원하게 내달리는 가속감을 짜릿하게 맛볼 수도 있다.
양립하기 힘든 두 개의 특성이 부딪히는 부분이 타이어다. 금호타이어가 만들어 공급하는 205/55R16 사이즈에 회전저항 2등급인 타이어는 전기차의 고성능을 힘들어한다. 급가속하면 타이어가 순간적으로 헛돈다. 가속페달을 함부로 바닥까지 붙여선 안되는 이유다. 코너에서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단점이라고 나무랄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효율을 높이는데 중점을 둔 차인만큼 당연한 일이다.
시속 140km까지 순식간에 밀어붙인다. 차창을 가르는 바람소리도 그리 큰 편은 아니어서 제법 빠른 속도에서도 차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회생제동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에너지를 만들어 배터리에 저장한다. 계기판을 보며 회생제동이 작동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기분이다.
80% 정도 급속충전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정도. 집에서 완속충전을 하면 3-4 시간이 걸린다. SM3 ZE는 배터리를 아예 교체하는 퀵드롭 방식도 도입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게 아니라 다 충전된 배터리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주행거리가 긴 택시라면 충전하느라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배터리를 바꿔 끼우는 것. 10분 남짓 시간이 걸린다. 이 같은 충전방식 때문에 전기차 운전자들을 둘러싼 생활패턴에는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급속충전시 30분 정도 소요된다고는 하지만 먼저 충전하는 차가 있다면 30분을 기다려야 충전이 가능하다. 급속충전소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실내 공간은 부족함이 없다. 준중형이라고는 하지만 SM3 세단 기준으로 13cm를 늘려 4,750mm의 길이를 가졌고 뒷좌석 공간도 좁은 줄 모르겠다. 문제는 트렁크 공간이다. 뒷좌석 뒤로 배터리가 세로로 들어가는 공간 때문에 트렁크는 골프백 하나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할 정도로 좁다.
전기차 수요의 상당부분을 택시가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택시 기시 입장에서는 좁은 트렁크가 걸린다. 몸만 타는 승객이 많은 서울이라면 모르겠지만 관광객이 절대 다수인 제주에서라면 더 그렇다. 커다란 가방을 잔뜩 든 승객을 태울 방법이 없다. 연간 수백만 원의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는 설명에도 택시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지금 같은 형태의 변속레버가 굳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기차인데 변속기가 있는 내연기관의 변속레버를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변속레버를 스위치 박스 형태로 만들어 대시보드로 옮겨 놓으면 공간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100km 가량을 달리는 동안 배터리는 거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35km.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100km로 보고 운행하는 게 안전하다. 물론 남은 거리는 계기판을 통해 안내된다. 배터리의 성능이 확 떨어지는 한 겨울이라면 그 거리는 더 줄어든다고 봐야 한다.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한가득 짐을 싣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전기차 시대가 막상 코앞에 닥치니 이것저것 생각해볼 것도, 계산해봐야 할 것도 많다.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전기차가 이제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첫발을 뗀 전기차는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생활을 조금씩 바꿔 놓을 것이다.
전기차는 비싸다. SM3ZE가 4,500만원. 여기서 교육세와 개별소비세 272만원이 빠지고 제주도의 경우 이중 1,500만원을 국비에서 보조하고 800만원을 제주도가 보조해서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1,928만 원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나쁜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을 언제까지 얼마만큼이나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반드시 필요한 전기차를 보급하기 위해서 정부 보조금 지급은 있어야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자동차 구매자들에게 몇 천만 원씩 준다는 게 맞는 일인지도 짚어봐야 한다. 분명한 건 현재로선 보조금이 없이 일반소비자가 전기차를 구매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의 지원금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시장의 크기가 정해진다. 시장의 한계성이다.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던지는 숙제들 하나하나가 이처럼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이제 전기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플라스틱으로 감싼 인테리어는 기대 이하다. 대시보드, 도어패널을 만져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얇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글로브 박스는 압권이었다. 핸들 왼쪽 아래에 마련된 버튼들은 단면 마무리가 거칠어 손을 대기가 머뭇거려질 정도다. 전기차는 고급스럽게 만들면 안되는 건지. 전기차에 대한 기대수준을 너무 낮춰 버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