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메라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봄 독일에서였다. 포르쉐 R&D센터가 자리한 독일 바이삭에서 공식 발표를 앞둔 파나메라를 잠깐 타 볼 수 있었다. 공식 발표에 앞서 연구소의 테스트 트랙에서 파나메라를 탈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포르쉐가 만드는 GT카로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파나메라는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팔린 파마메라가 약 1,300대다. 시나브로 많아진 차들이 이제는 서울 거리에서도 제법 눈의 뜨일 정도가 됐다.
4년 만에 세대교체를 마친 2세대 파나메라를 강원도 평창에서 시승했다. 국내에 팔리는 파나메라는 총 9종. 6기통 엔진의 파나메라, 파나메라4와 파나메라 디젤, 그리고 8기통 엔진의 파나메라 GTS, 파나메라 터보로 구성된다. 파나메라 S와 4S는 새롭게 개발된 바이터보 차저의 V6 엔진을 탑재해 효율성을 높인 모델이다. 이그제큐티브 모델 2종도 추가됐다. 파나메라 4S 이그제큐티브와 터보 이그제큐티브는 휠베이스를 15cm 늘려 뒷좌석 공간을 최대한 넓혔다. 이그제큐티브 모델은 큰 차를 좋아하는 중국을 겨냥한 모델이라고 봐야한다. 한국 역시 큰 차를 좋아하는 부자들이 적지 않다.
숨겨진 모델도 있다. 아직 출시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파나메라 터보S와 E-하이브리드가 더 있다. 이들까지 모두 출시되면 파나메라는 모두 11종으로 라인업을 구축하게 된다.
신형 파나메라는 외형상 변화를 찾기 힘들다. 프런트 엔드의 라인, 리어 램프의 형상, 더 커진 에어 인테이크 정도다. 옆에서 이 차를 보면 키가 큰 늘씬한 독일 미녀를 보는 듯 하다. 팔등신 미녀다. 특히 볼륨감 있는 엉덩이는 911의 그것처럼 매력 만점이다. 차가운 금속에 불과하지만 잔뜩 부풀어 오른 볼륨감이 예사롭지 않다. 슬쩍 쓰다듬으면서 혼자 음흉한 미소를 지어본다.
시승모델은 파나메라 GTS. 8기통을 장착해 V8 4.8 리터 엔진을 올려 440마력의 괴력을 자랑하는 모델이다. 센터 터널이 높게 솟으며 좌우를 정확히 구분한다. 뒷좌석에도 2명만 앉을 수 있는 4인승 모델. 럭셔리 하이엔드 모델답게 탑승객을 늘리려 무리하지 않았다. 4인승 GT카로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운전석은 비행기 조종석을 방불케 한다. 운전석 좌우로 배치된 수많은 버튼들. 특히 센터페시아와 변속레버 주위로는 셀 수 없는 버튼들이 운전자의 손끝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버튼은 원 샷 원 킬이다. 두 번 세 번 누를 필요 없이 한 번 누르면 작동한다. 운전자의 동작이 단순해진다. 다만 버튼이 많아 눈으로 보고난 뒤 작동해야한다.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것. 하지만 적응하고 나면 문제될 게 없다.
인테리어는 프리미엄의 끝을 보여준다. 가죽으로 둘러싸인 실내는 여유로운 공간에 더해 최고급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뿐 아니다. 포르쉐라면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해선 안 되는 고성능을 지향하는 요소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나메라가 그저 고급스럽기 만한 세단이 아님을 말해준다.
핸들 왼쪽에 마련된 키박스, 계기판 정중앙에 배치된 rpm 게이지는 포르쉐의 모든 차들이 가진 공통분모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핸들은 2.7 회전한다. 스티어링 휠이 조금 작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회전 상태에서 rpm은 600에 못 미친다. 우렁찬 엔진소리는 엔진룸이 좁은 듯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허벅지까지 충분하게 받쳐주는 시트에 몸을 맡기고 가속페달을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했다. 깊게 가속을 이어가면 rpm이 7,000까지 치솟는다. 이 지점에서 변속이 일어난 뒤 5,000rpm으로 일단 떨어지고, 그 뒤에 가속이 이어지지 않으면 다시 4,000rpm밑으로 떨어지면서 안정된 호흡을 이어간다. 계속 밀어붙이면 7,000rpm과 5,000rpm 사이를 번갈아가며 시프트업을 반복한다.
포르쉐는 엔진 사운드에 관대하다. 기분 좋게 귀를 자극하는 엔진 소리를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귓불에 불어대는 애인의 숨소리처럼 짜릿하고 매력적인 사운드다.
사운드 튠 버튼을 누르면 엔진 소리는 우렁차다 못해 포효하는 수준에 이른다. 시프트다운을 하면 마지막 순간에 찢어지는 듯한 엔진 소리가 압권이다. 골목길에서는 절대 활성화해선 안 될 버튼이다. 보행자들이 깜짝 놀란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에는 운전하는 재미를 더해주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포르쉐가 자랑하는 더블 클러치 변속기인 7단 PDK는 빠른 변속으로 성능과 효율을 모두 만족시킨다. 두 개의 클러치를 이용해 변속시간을 줄여 동력 손실을 막아주는 것. 성능을 높여줄 뿐 아니라 연료 낭비도 막아준다.
D 레인지에 변속레버를 놓고 부드럽게 가속을 이어가면 시속 100km에서 2000rpm에 머문다. 부드러운 주행은 최고급 세단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부드럽고 편안한 움직임은 이 차가 포르쉐인지를 의심케 한다.
포르쉐의 진가는 고속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rpm을 더 과감히 올리면 극한적인 속도에 쉽게 올라선다. 6단 4,000rpm에서도 가속페달에 여유는 많다. 놀라운 것은 그리 빠르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것. 편안하게 가라앉은 차체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도로를 장악하며 달린다. 속도계만 보지 않는다면 실제 속도를 느끼기 힘들다. 체감 속도는 실제속도의 3분의 2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속도계를 특히 더 체크해야 하는 이유다. 정신 놓고 달리면 과속하게 된다. 강한 섀시와 단단한 하체, 고성능 타이어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달리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터닝 포인트를 돌고난 후에는 대관령 옛길로 접어들었다. 와인딩 코스가 계속되는 길이다. 파나메라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헤엄치듯 달렸다. 좌우로 연이어 굽은 길은 오르막 코스여서 큰 부담 없이 내달릴 수 있었다. 이렇다 할 비명소리도 없이 왼쪽 코너를 돌고 다시 이어지는 오른쪽 코너를 야무지게 내달린다. “역시 포르쉐”라는 감탄이 입 밖으로 새나온다. 카이엔이든 파나메라든 포르쉐가 만든 차에는 스포츠카 911의 DNA가 담겨 있다. 잘 달리지 않으면 포르쉐가 아니다.
오토스탑 모드를 활성화하면 기가 막힌 적막감을 느끼게 된다. 차가 멈췄을 때 엔진이 따라 멈추면서 모든 소리가 갑자기 사라진다. 바람소리 잡소리 엔진 소리 등으로 어수선하던 실내를 한 순간에 덮어버리는 적막함은 때로 당황스럽다. 오토스탑 기능이 창조하는 순간적인 적막감은 늘 새롭다.
복합연비 7.3km/L로 만만치 않은 식성을 과시하지만 4.8 리터 8기통 엔진의 먹성으로는 과하지 않다. 판매가격 1억 7,890만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엔진소리를 더욱 강력하게 내주는 사운드 튠 기능은 매력적이지만 때로 보행자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보행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골목길에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 기능을 켜 놓은 채 무심코 시프트 다운을 했다가 엄청 눈총을 받아야 했다. 낮은 속도에서는 이 기능을 아예 차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비게이션은 차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 1억8,000만원을 호가하는 차의 내비게이션이 2,000~3,000만 원대 차의 내비게이션보다도 못하다. 모니터만이라도 좀 더 깨끗하고 선명했으면 좋겠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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