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색깔이 강하다. 고집도 있고 성격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 같은. 어찌보면 고약한 성격을 가졌지만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어 절대 놓지고 싶지않은 여자를 닮은 바이크, BMW HP4를 만났다.
K 1300 S와 S 1000 RR로 짜여진 BMW 모터사이클의 스포츠모델 라인업에 합류한 최신 기종이다. HP4는 2005년 출시한 ‘HP2 엔듀로’를 비롯해 ‘HP2 메가모토’, ‘HP2 스포츠’에 이은 네 번째 모델이다. HP는 말 그대로 하이 퍼포먼스의 약자로 고성능모델임을 말하고 있다.
HP4는 S 1000 RR을 베이스로 개발된 최신작이다. 언뜻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HP가 가볍다. 건조중량 기준으로 HP4의 무게는 169kg으로 9kg이 가볍다. 차체 여러 부분을 탄소 소재로 제작했고 알루미늄 단조 휠과 티타늄 배기시스템 등을 적용해 출력과 연비 면에서 보다 유리한 체형을 만들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고성능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인 BMW S 1000 RR의 유전자를 계승한 HP4는 블루와 화이트 색상으로 이루어져 더욱 민첩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차체 하단의 배기 시스템 대신 엔진 스포일러가 리어 타이어까지 길게 이어졌으며, 뒷좌석에 캐노피가 자리해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의 색깔을 더욱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옵션으로 다양한 액세서리 패키지를 제공, 고객 취향에 따라 나만의 바이크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시트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몸은 자연스럽게 차체에 밀착하면서 앞으로 숙이게 된다. 애인을 감싸 안듯 품안에 연료탱크가 얌전히 안긴다. 바이크에 오르는 순간 폼은 자연스럽게 잡힌다. 바람 앞에 몸을 한껏 낮춘 겸손한 자세다.
폼 하나는 죽여주는 바이크다. 클러치를 잡고 발끝으로 기어레버를 툭 밟는 순간 달릴 준비가 됐다는 신호가 온다. 카랑카랑한 엔진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클러치를 떼고 스로틀을 당겼다. 강한 토크가 연결되면서 바이크는 강하게 튀어 나간다. 순간적으로 거친 움직임이 이어진다. 힘을 주체하지 못해 날뛰는 야생마를 제대로 컨트롤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은 능숙하게 바이크를 다루지 못하는 탓이다.
앞에 가이드를 세우고 뒤를 따랐다. 모터사이클 선수처럼 몸을 잔뜩 숙여 차체에 엎드린 자세는 아무래도 불편했다. 게다기 온 몸은 잔뜩 굳어 긴장했다. 처음 만나는 녀석과 아직 제대로 교감을 나누지 못한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엉덩이 위쪽 고관절 주위로 근육에 쥐가 난다. 바짝 엎드린 자세로 바이크를 타느라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 반항하는 것이다. 긴장한 탓도 크다. 온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이리 저리 다리를 움직이며 굳어지는 근육들을 풀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HP4는 조금씩 운전자를 받아들였다. 몸을 숙이다보니 헬멧 윗부분이 시야를 가려 목을 바짝 세워야 했다. 매우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게 잡힌다. 불편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자동차나 바이크나 스포츠 모델은 불편함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그래야 빨리 달릴 수 있으니.
HP4는 수랭식 직렬 4기통 1.0리터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93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1마력이 감당해야하는 무게는 겨우 0.9kg에 못 미친다. 스포츠 바이크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스로틀을 감아 돌리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스로틀 조작을 부드럽게 하지 않으면 바이크는 거칠어진다. 살짝만 당겨도 순간적으로 치고나가는 토크감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다루는 조련사의 자세로 바이크를 컨트롤해야 한다.
HP4가 얼마나 날카롭고 예민한지는 다른 바이크로 옮겨 타보면 안다. HP4에서 내려 로드스터 모델인 K 1300R에 올랐을 때 느꼈던 극적인 반전이 인상적이다. K 1300R이 그렇게 편안하고 순한 바이크인지 새삼 느꼈다. HP4를 여자에 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쭉쭉빵빵한 몸매에 잠자리에서도 끝내주지만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고 한 성질하는 여자, 그래서 아주 세심하게 잘 다뤄야하는 그런 여자를 닮았다.
앞뒤 서스펜션의 압축 팽창을 주행상황에 맞춰 자동조절해주는 다이내믹 댐핑 컨트롤(Dynamic Damping Control)덕분에 안정감 있는 주행이 유지된다. 고속에서는 접지력을 높여 안정적인 자세를 잡아준다. 단시간 내에 최고의 출력을 뽑아내면서도 안정적으로 출발하게 해주는 론치 컨트롤 기능도 있다.
직선로에서의 가속감은 압권이다. 빨려들어가듯 달리는 무아지경을 느끼게 된다. 속도감과 스릴은 자동차와 비교할 수 없다. 외부와 차단된 실내에서 빨리 달리는 것과 온 몸을 공기 중에 내맡기고 속도를 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HP4는 레인, 스포츠, 레이스, 슬릭 등 총 4가지 주행 모드를 갖췄다. 주행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모드를 택해 달리면 된다.
바이크의 묘미는 코너에 있다. 위험하면서도 짜릿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코너에서는 완전히 속도를 줄인 뒤 기어가듯 돌아나갔다. 코너가 하나 둘 계속 이어지면서 조금씩 더 차체를 기울여 봤다. 생각보다 안정감 있는 자세가 놀랍다. 시간이 갈수록 신뢰감을 준다. 속도를 줄여 코너에 진입한 뒤 탈출구를 보면서 스로틀을 당기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워낙 고성능이어서 차가 어디까지 달려줄지 가늠하기 힘들어서다. HP4 성능의 절반이나 제대로 경험한 건지 모르겠다. HP4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라이더라면, 야생마처럼 거친 이 차를 순한 양처럼 다루며 그 성능을 제대로 뽑아내고 즐길 수 있다면 그는 ‘고수’ 임이 분명하다. 잘못 덤비면 한 방에 날아간다. 조심할 일이다.
판매가격은 BMW HP4가 3,190만 원, BMW HP4 컴피티션 패키지가 3,690만 원이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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