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을 잡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번거롭다. 라이딩기어를 입고 부츠를 신고 헬멧과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6월 땡볕에 온 몸을 감싸는 가죽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야 하는 당혹감. 그러나 가슴은 벌렁거리고 입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차가 아닌 모터사이클이어서다. 

BMW F800 GT다. 원래 BMW는 자동차를 만들기 이전에 모터사이클을 먼저 만들었다. 뮌헨에 있는 BMW박물관에 들어서면 그들이 만든 첫 모터사이클을 자동차보다 먼저 만나게 된다. 올해로 90년을 맞이할 만큼 BMW의 모터사이클 역사는 깊다. 
F800 GT는 장거리 라이딩에 적합하게 설계한 BMW의 최신작이다. 국내에는 지난 2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20여년 만에 처음 바이크를 만났다. 왕복 300km가 넘는 장거리 투어는 처음이다. F800GT가 본격적인 시승을 하는 첫 모터사이클이다. 뒤늦은 첫사랑인 셈이다. 

작열하는 태양은 아스팔트를 구워버릴 기세다. 완전 중무장을 한 상태로 바이크에 올라 그 거리를 달린다는 건 고문이다. 남이 시켜서는 절대 하지 못할 일. 하지만 헬멧에 감춰진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삐질 삐질 땀이 흘러내리지만 드디어 모터사이클을 탄다는 희열은 컸다. 20대에 한동안 미친듯 타던 바이크를 다시 20여년이 흘러 만났으니 감회도 새롭다. 

기어를 넣고 조심스럽게 클러치를 떼어본다. 바이크가 움직인다. 몸 안의 어느 구석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잠자던 감각이 하나씩 둘씩 살아난다. 클러치를 쥔 왼손, 쓰로틀을 당기는 오른손, 기어를 넣는 왼발, 브레이크를 밟는 오른발. 차례차례 잊혀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고백컨데 딱 한 번 시동을 꺼트렸을 뿐이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F800 GT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도심의 차량 행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도심은 최악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교통체증은 좀처럼 달릴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땀이 더해진다. 잘 익은 보쌈을 만들기에 최적의 상황이다.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헬멧은 꼭 안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삐질 삐질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그래도 의젓하게 폼잡으며 신호대기를 할 수 있는 것은 헬멧 덕분이다. 내가 누군지 사람들은 모르니까. 내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들의 시선에서 내가 안전한 거다. 

도심에서의 힘든 코스를 벗어나는 순간 고통도 끝났다. 시원하게 스로틀을 당기는 순간 더위도 땀도 씻은 듯 사라졌다. 3단, 4단, 5단, 6단. 높아지는 기어를 따라 속도도 부드럽게 빨라진다. 온몸을 파고드는 바람엔 열기가 묻어 있지만 그래도 시원했다. 목적지는 김삿갓의 고향 강원도 영월. 최고의 라이더 둘을 앞뒤로 세우고 가운데 묻어서 달렸다.
쓰로틀 밸브를 당기면 새털처럼 가볍게 속도를 올린다. 귀에 와 닿는 생생한 엔진 사운드가 멋지다.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 들어서지 못하고 국도를 달려야 하는 건 바이크의 운명이다. 한국에선 그렇다. 저주일수도 축복일수도 있는 운명. 받아들이고 즐기면 그뿐이다. 평소 다니지 않는 길, 가다가 아무 곳에서나 멈추고 쉴 수 있는 길이어서 나쁘지 않다. 

F 800 GT는 BMW모터라드의 미들급 선수다.  기존 K 1600 GT 대형 그랜드 투어러에 이어 나온 모델. 798cc 수랭식 직렬 2기통 엔진은 8,000rpm에서 최고출력 90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5,800rpm에서 8.78kgm다. 바이크의 무게, 즉 건조중량은 213kg. 자동차에 익숙한 눈으로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은 검소한 숫자들이다. 하지만 우습게 볼 건 아니다. 마력당 무게비가 2.36kg에 불과하다. 시속 100km를 불과 4.0초에 돌파하고 최고속도는 시속 200km를 넘긴다. 90마력에서 슈퍼카에 버금가는 동력성능이 뿜어져 나오는 셈이다. 

뉴 F 800 GT는 초보자에게도 친절하다. 전자장비들을 대거 적용해 위험한 상황에서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ABS와 전자 제어식 트랙션 컨트롤이 적용됐다.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깊게 밟으면 규칙적인 반발력을 통해 ABS가 작동하는 살아있는 느낌이 전해진다. 인체공학적 설계와 유선형 디자인을 적용해 편안하게 탈 수 있다. 

두 차례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모두 코너에서였다. 깊고 타이트한 코너에서 당황하다가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야 했다. 시선처리 미숙과 충분히 바이크를 눕힐 수 없는 테크닉 부족이었다. 한번 겁먹은 뒤로는 코너가 나타날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설설 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먼지를 털고 되살아난 감각들은 다시 먼지 속으로 기어들어가려하고 있었다. 

용기를 냈다. 여차하면 바이크를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회전하는 방향, 바이크가 가야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고 바이크를 조금 기울여봤다. 조금만 기울어도 넘어질 것 같은 바이크는 의외로 안정적이었다. 조금 기운다고 넘어갈 자세가 아니다. 오뚜기처럼 무게중심이 아랫쪽에 딱 잡혀있는 그런 느낌이다. 이후에는 코너에 대한 부담이 많이 사라졌다. 약간의 용기만 내면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다. 

연비는 90km/h에서 리터당29.4km, 120km/h에서는 23.3km/h다. 전자제어식 서스펜션 ESA(Electronic Suspension Adjustment)는 옵션이다. 버튼 하나로 노면 상태와 라이더 취향에 따라 컴포트, 노멀, 스포츠 등 총 3단계를 손쉽게 선택할 수 있다.
 
시트 높이는 765mm에서 820mm까지 라이더의 체형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1,585만 원.

투어링을 마치고 헬멧과 라이딩 기어를 벗고 산골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산들거리는 산바람이 식혀주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엔진형식

직렬 2기통 엔진

건조중량

213kg

냉각방식

수랭식

배기량

798cc

최고출력

90마력(bhp) / 8,000rpm

최대토크

8.78kg·m / 5,800 rpm

변속기

6단 변속

안전최고속도

200 km/h 이상

0 –100 km 가속

4.0초

연비 (90km/h)

29.4km/l

연비 (120km/h)

23.3km/l

전륜 브레이크 규격

320mm 유압식 트윈 디스크

후륜 브레이크 규격

265mm 유압식 싱글 디스크

전륜 타이어 규격

120/70 ZR 17

후륜 타이어 규격

180/55 ZR 17

가격(VAT 포함)

1,585만 원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