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차 값을 깎아주지 않습니다.”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차값을 할인받아 싸게 샀다는 이들이 많이 있다.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판매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차를 만드는 이들이 판매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 한국지엠이 딜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딜러들의 자율권이 거의 없어 그 의미는 크게 상실됐다. 딜러들이 판매가격을 정할 수 없는 구조라서다.

자동차 판매 가격은 누가 정할까. 미국에선 딜러들이다. 딜러들이 대량으로 차를 주문하고 소비자 판매가격은 딜러들이 탄력적으로 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문화적, 지리적 배경이 있지만 미국의 자동차 판매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자동차 메이커들이 판매가격을 정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른바 ‘정도 영업’을 표방하며 판매가격을 정할 것을 일선 영업소에 강요한다. 한국지엠도 마찬가지다. 정도 영업의 원조는 르노삼성차다. 삼성자동차 출범 당시부터 그들의 모토중 하나는 ‘원 프라이스 정책’이었다. 정도 영업과 원 프라이스 정책의 핵심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에 차를 팔겠다는 의미다. 즉 가격 할인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차를 파는 입장에서 단일 가격을 고수하는 이유는 과도한 경쟁으로 판매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게 팔아야 영업사원도 구매 고객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고 메이커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푼이라도 더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에게 단일가격을 지키고 따라줄 것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어느 정도 추가 할인을 받을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 발품을 팔면 된다. 서너군데서 견적을 받아보면 정도영업의 허점은 금방 드러난다. 견적을 받아본 후에는 본격적으로 흥정을 시도해 보자.

국내 메이커들의 판매조직은 직영영업소와 대리점으로 나뉜다. 직영영업소는 자동차 메이커에서 직접 운영하는 조직이다. 대리점은 메이커와는 다른 별도의 사업자가 딜러권을 가지고 영업을 하는 조직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리점을 상대하는 게 추가할인을 받을 확률이 높다. 직영 영업소는 본사의 직접 통제를 받는다. 또한 기본급도 높은 편이어서 영업사원들의 판매 열의도 대리점에 비해 높지 않다.

대리점은 메이커와 다른 별도의 사업체인만큼 좀 더 탄력적으로 가격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비공식이다. 직영점이든 대리점이든 판매 가격을 깎아주면 본사로부터 강한 제재를 받게되는만큼 처음부터 가격 할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이 진짜 차를 살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어느 정도 추가할인의 여지를 제시한다. 확실한 구매자라면 말이다.

할부나 리스로 차를 사게 되면 좀 더 확실하게 가격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메이커가 지급하는 판매 수당 이외에 할부금융사가 추가로 영업사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데 그 일부를 이용해 할인받을 수 있어서다.

연말이나 월말에 흥정을 한다면 소비자는 조금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판매 목표를 채워야 하는 영업사원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깎아줘서라도 차를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있다. 비공식적인 할인은 결국 대리점 마진이나 영업사원의 판매수당 일부를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들이 받아야할 정당한 댓가의 일부를 구매자와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판매자의 무리한 희생을 바라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차 가격을 할인받았다는 사실은 조용히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좋다. 메이커의 사후 점검 과정에서 추가 할인이 밝혀지면 해당 영업사원과 영업점은 징계를 피할 수 없고 심할 경우 회사를 떠나야 하거나 딜러권 박탈까지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