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쳐다본다. 서두른다. 마음이 급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포르쉐를 만날 땐 가슴이 뛴다. 병이다. 포르쉐 앞에만 서면 평정심은 무너진다. 왜냐고 묻는 건 의미가 없다. 그냥, 좋다. 
 
카이맨을 만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짓궂은 날씨는 봄비치고는 독한 비를 한참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봄 하늘을 드러냈다. 차를 타기에 최고의 날씨다. 

지난해 새 모델을 선보인 박스터에 이어 올해엔 카이맨과 카이맨 S가 새 모습을 드러냈다. 소프트탑 박스터와 하드탑 쿠페 카이맨은 같은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 지붕의 형태만 다를 뿐 같은 차다. 3세대 모델로 진화한 카이맨 S를 만났다. 

큼직하게 자리한 카이맨S의 헤드램프는 큰 눈망울처럼 사람을 빨아들인다.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앞으로 숙여지는 라인을 애용하는 다른 차들과 다르다. 뒤로 주저앉은 개구리를 닮은 자세다. 웅크린 모습은 안정감과 역동성을 함께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더 큰 역동성을 본다. 휠 아치를 가득 채우는 20인치의 대형 휠이 주는 시각적 느낌도 만만치 않다. 
뒷범퍼 아래 중앙에 두 개의 배기구가 있다. 양 옆으로 벌려놓지 않고 한 곳으로 모아 놓은 모습이 차렷 자세를 연상시킨다. 

이전 모델보다 더 길고 낮아졌다. 휠베이스와 트레드는 넓어졌고 휠은 20인치로 키워 강력한 성능을 암시하고 있다. 

시승차에는 최근 열린 포르쉐 데칼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데칼이 장식됐다. 아마추어의 작품치고는 나름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로컬 시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부분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계기판 한 가운데는 rpm 게이지가 있다. 속도계는 이보다 작게 왼편에 배치했다. 시동키 역시 핸들 왼편에 있다. 다른 차들과는 다른 포르쉐의 원칙이다. 또한 자동차 경주에 기원을 둔 포르쉐의 레이아웃이다. 시동을 켜고 동시에 기어를 넣기 위해서는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써야 한다. 키가 오른편에 있으면 불가능해진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차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키를 왼편에 배치한 이유다. rpm 게이지가 계기판 한 가운데 자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경주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엔진 회전수다. 이처럼 포르쉐는 잘 달려야 한다는 명제 하나에 집중한다. 포르쉐의 모든 특성이 알고 보면 이 명제를 실현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박스터와 마찬가지로 카이맨 역시 미드십 리어엔진이다. 3.4리터 수평대향 엔진이 뒷바퀴 안쪽으로 배치됐다. 엔진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차체의 앞 뒤로 트렁크를 확보했다. 아주 많은 짐을 실을 수는 없지만 요긴한 공간이다. 
네 개의 타이어를 잇는 공간 안에 엔진을 배치하면 차는 매우 안정감 있게 움직인다. 게다가 두꺼운 책 한 권 정도의 형태인 박서 엔진은 낮게 배치할 수 있어 무게중심을 낮출 수 있다. 모두가 단 하나를 위한 것이다. 잘 달릴 것.


 
사랑에 눈이 먼 연인처럼 포르쉐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명제가 바로 이것이다. 달리는 데 방해가 되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승차감이 그렇다. 포르쉐 카이맨에서 그런 승차감을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도로의 흔들림을 잘 제어하면서도 솔직하게 전달한다. 주행모드는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3가지가 있지만 어느 것도 소프트하지는 않다. 단단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아주 단단하게로 단단함의 강도를 더하는 수준이다. 

엔진 사운드는 호쾌하다. 어떻게 하면 엔진 소리를 줄일까 하는 게 일반 세단의 고민이라면 카이맨S를 비롯한 포르쉐의 차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하면 엔진 소리를 듣기 좋게 키울까를 고민한다. 안그래도 큰 엔진 사운드는 스포츠 플러스로 넘어가면 귀청을 때리는 수준으로 커진다. 

천천히 움직이다가도 변속기를 시프트다운하면 마치 총소리처럼 엔진 소리가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온다. 길 가던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다. 심하면 민폐다. 적당한 수준에서 즐겨야 한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차에 들어가야 한다. 겸손한 자세를 요구하는 것. 시트는 몸에 딱 맞는 슈트처럼 엉덩이와 허리를 받쳐준다. 이런 부분이 코너에서 더 강한 성능을 내게 하는 밑받침이 된다. 운전자의 자세가 안정되면 자연히 자동차도 안정감 있게 달린다. 시트 역시 차의 성능과 직결되는 셈이다. 

핸들은 최대 2.3 회전한다. 작게 돌려도 크게 반응한다. 예민한 편이다. 편평비 35 시리즈의 타이어, 예민한 핸들, 단단한 서스펜션이 궁합을 맞춰 만들어내는 코너링은 예술이다. 여기에 더해 포르쉐 토크 벡터링도 있다. 코너에서 안쪽 뒷바퀴에 적절한 제동력을 전달해 조향성능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 이를 통해 보다 안정감있고 빠른 코너링을 실현한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빠르게 돌아나가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얼마든지 밟아보라는 듯 빠른 속도에서도 여유롭게 달린다. 왜 포르쉐인지, 왜 미드십인지 코너에서 그 진가를 보여준다. 

7단 PDK 변속기는 시프트 업, 다운이 확실하다. 시프트다운을 하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확실한 힘이 느껴지고, 힘차게 달리다가 시프트 업을 하면 금새 편안한 달리기로 복귀한다. 무엇보다 엔진 브레이크가 확실하고 강해 마음에 든다. 운전자의 지시에 순종한다. 그래서 좋다. 

무엇보다 이 차를 신뢰하게 만드는 건 잘 달리는 능력이 아니라 강력한 제동성능이다. 잘 멈추지 못하면 잘 달리는 의미가 없어서다. 고속주행하다 브레이크 잘못 밟으면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포르쉐의 강력한 브레이크는 고속주행에서도 감속과 제동을 무난하게 수행한다. 앞이 푹 숙여지는 노즈 다이브도 심하지 않았다. 

고속주행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3.4리터 6기통 수평대향엔진에서 터지는 325마력, 37.8kgm의 토크는 어떤 순간에서도 가뿐하게 차체를 컨트롤한다. 5초 만에 시속 100km를 넘기고 최고속도는 283km/h에 이른다. 

쓰다듬고 돌리고 만지는 부드러운 터치로 차를 달군 뒤에 거친 터치로 본격적인 달리기에 나섰다. 끝까지 가속페달을 밟으면 rpm 게이지는 춤을 추며 엔진 회전수를 높여가고 엔진은 터질 듯한 소리를 마음껏 질러댄다. 운전자의 심박수도 따라서 빨라진다. 드라이버와 차가 혼연일체가 되는 무아지경.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머리 속은 하얀 도화지처럼 비워진다. 차와 나, 그리고 도로만이 있는 세상. 포르쉐가 연출해내는 판타지다. 

포르쉐에 어울리지 않는 적막함도 있다. 신호대기를 위해 차를 멈췄을 때 실내에 엄습하는 어색한 적막함이다. 오토스탑 기능이다. 무아지경의 질주 후에 이런 적막함을 만난다면 더 극적이다. 섹스를 나눈 뒤 찾아오는 잠시의 침묵과 다르지 않다. 조금은 어색한, 하지만 사랑스러운……. 포르쉐를 운전하는 건 섹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이 차를 타는 동안 운전자는 늘 달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시원하게 터지는 엔진 사운드, 차체를 가르는 바람소리에 취해 달리다보면 과속하기 일쑤다. 실제 속도보다 체감속도가 낮아 과속을 피하려면 수시로 속도를 체크해야 한다. 겸손과 절제. 이 차를 운전할 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카이맨 S의 연비는 10.1km/L. 차체의 무게를 줄였고 오토스탑 기능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연비다. 한 가지 더 있다. 세일링 주행 기능이다. 서서히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수동 변속으로 7단을 선택하면 탄력주행이 시작되는 기능이다. 이 때 연료는 최소한으로 소모된다. 

판매가격은 카이맨이 8,160만원, 카이맨S가 9,660만원. 가장 저렴하게 택할 수 있는 포르쉐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실내는 좁다. 2명이 타면 가방 하나 제대로 넣어둘 공간이 없다. 시트를 누일 수도 없어 차 안에서 편안한 휴식은 기대해선 안된다. 차의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지니맵이 적용된 내비게이션 품질은 포르쉐의 이름에 걸맞는 수준이 아니다. 해상도도 낮을 뿐 아니라 포르쉐의 격에 맞지 않는 제품이다. 고품질의 내비게이션이 좋겠다.  

시승 /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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