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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산 일본차 혼다 시빅 유로의 ‘잔소리’

수입선 다변화를 도모하던 혼다코리아가 영국에서 만든 ‘시빅 유로’를 들여왔다. 

소형차에 어울리는 해치백의 경쾌한 스타일에 탄탄한 성능을 인정받아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델이다. 시빅 유로는 이 차의 글로벌한 특성을 한 몸에 담고 있다. 영국에서 생산되는 일본차가 한국에서 팔리는 것. 같은 이름의 세단형은 미국서 만든다. 차 한 대에 온 세계가 녹아 있는 셈이다. 

시빅은 지금 9세대로 접어들었다. 72년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니 마흔 살이 넘었다. 시빅은 어코드와 더불어 혼다의 대표적인 장수모델이다. 혼다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델중 하나가 이 차, 시빅이다. 

작다. 국산차와 비교하자면 현대차 i30와 흡사한 사이즈다. 길이와 높이가 4,300mm와 1,470mm로 두 차가 똑 같다. 너비는 시빅이 1,770mm, i30가 1,780mm다. 작지만 허술해보이지는 않는다. 단단하고 야무진 느낌이 묻어있다. 

HID 램프를 적용한 헤드램프는 명쾌한 시야를 확보해준다. 날카로운 라인으로 예각을 이루는 눈꼬리가 사뭇 매섭다.  
지붕에서 뒤창으로 이어지는 라인은 여느 해치백과는 다르게 많이 경사를 줬고 뒤창에서 수직으로 떨어진 라인은 범퍼로 이어진다. 해지백이지만 뒷창이 많이 누워있다. 도어 손잡이는 앞에만 노출됐고 뒷도어 손잡이는 윈도 라인을 따라서 숨겨놓았다. 뒷도어 손잡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2도어로 착각할 수도 있는 이 차는 분명히 5도어 해치백이다. 
뒷도어는 작지만 열리는 각도가 크다. 작지만 활짝 열리는 문이라 타고 내리는데 편하다. 뒷모습에서는 양옆의 리어램프 사이를 잇는 빨간 날개를 달아 뒷모습에 강렬한 포인트를 줬다. 

크기는 작은데 실내 공간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패키징으로 크기의 제약을 극복했다. 
 
세 개의 원으로 구성된 계기판 위로 또 하나의 정보 표시창을 배치했다. 멀티플렉스 미터다. 계기판의 속도계와 별도로 멀티 플렉스 미터에 디지털 속도계를 추가로 배치했다. 운전자의 시선 처리를 단순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핸들 좌우로 녹색과 빨간 버튼이 시선을 잡는다. 왼쪽은 초록색 ECON 버튼, 우측은 빨간색 시동 버튼이다. 

핸들에는 햅틱 스타일을 본뜬 원형 버튼을 배치했다. 촉감이 좋고 조작감도 무난하지만 햅틱은 아니다. 사소한 부분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건 작은 차의 숙명이다. 시빅 유로는 뒷시트를 완전히 접으면 트렁크와 평평한 바닥을 만들어 낸다.  

국내 시판되는 시빅 유로의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1.8 SOHC i-VTEC 가솔린 엔진과 자동 5단 변속기 조합이다. 최고출력 141마력, 최대 토크는 17.7kg•m의 성능을 확보했다. 복합연비는 13.2km/L. 강화된 연비 측정 기준 때문에 거품이 많이 빠졌다. 예전의 연비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눈에는 흡족하지 않을지 몰라도 거품이 빠진 연비임을 감안하면 제법 우수한 편이다. 
핸들은 2.7 회전한다. 깔끔한 조향비다. 날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샤프한 핸들링을 기대해도 좋을 조향비다. 핸들에는 패들시프트도 있다. 핸들을 쥔 채로 변속을 하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일 없이 옆구리 쿡 찌르며 장난을 걸 듯 괜히 한 번씩 패들 시프트를 조작하게 된다. 

시속 100km에 맞췄다. rpm은 2,000에 고정된다. 6단 변속기였다면 조금 더 낮은 rpm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 차는 5단 자동변속기를 채택했다. 잔잔한 평온을 유지하며 최적의 주행상태를 보인다. 가장 좋은 속도다. 바람 소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적당한 잔소리처럼 귀찮지 않을 정도로 귀를 자극한다. 잠깐 기분 좋은 쪽잠을 자도 좋을 만큼 흔들림도 편안하다. 

승부는 그 이상의 속도에서 갈린다. 시속 140km까지 무난한 반응이다. 해치백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안정감을 지켜내며 속도를 높였다. 제법이다. 조금 더 높은 속도로 갈아탔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시빅 유로는 거침없이 내닫는다.  
가속페달에는 킥다운 버튼이 있다. 액셀러레이터를 부드럽게 끝까지 밟다가 마지막 순간에 걸릴 때, 한 번 더 힘을 주면 드디어 바닥에 닿게 된다. 본격적인 가속을 하겠다는 의지를 차에 전해주는 것. 

잘 달렸다. 힘은 넘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속이 답답할 정도는 아니었다. 속도에 딱 맞추는 저스트 파워다. 속도를 높일수록 어딘지 불안한 느낌이 더해진다. 고속주행을 완벽하게 뒷받침하기엔 차체 강성의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해치백 특유의 뒷바람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잔소리는 강도를 더하고 쪽잠을 부르던 기분 좋은 흔들림은 단잠을 깨게 만든다. 

적당히 자극적이던 잔소리가 도를 더해 싸움으로 번지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실내를 덮는다. 이 선을 넘으면 차는 힘들어한다. 속도계는 시속 180km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시빅유로는 한국에서 혼다 라인업의 틈새를 매워줄 모델이다. 시점이 참 공교롭다. 혼다가 이 차를 들여오기로 한 것은 수입선을 다변화한다는 방침에 따라서다. 지난 몇 년간 엔화 강세로 인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데 지금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일본 엔화 강세로 몇 년 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던 혼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산 자동차를 들여오기로 했는데 최근 엔화는 다시 약세로 반전한 것이다. 혼다로선 이런 엇박자가 없다. 미칠 노릇이겠다. 게다가 시빅 유로는 영국에서 생산돼 FTA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게 결정한 시빅유로의 가격은 3,15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5단변속기로 한국의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소형차에도 6단자동변속기가 적용되는 시대다. 연비는 물론 출력을 위해서도 6단변속기가 효과적인데 아직 5단 변속기가 달려있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혼다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시승/글=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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