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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큰, 작은 차 피아트 500

이탈리아 차는 분명한 컬러가 있다. 80년대 후반, 2.0 터보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중형세단 피아트 크로마가 국내 판매됐었다. 강력한 주행성능이 매우 인상적인 차였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들어온 피아트의 판다도 있었는데, 경차 크기의 차체에 1000cc 4기통 엔진을 달고, 사륜구동이면서도 최고시속 150킬로미터를 여유 있게 달리는 높은 성능을 과시하는 매력 있는 녀석이었다. 

이 차들을 함께 시승했던 선배의 얘기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말은 이랬다.  
“이태리 차중에 안 나가는 차 본 적 있어? 이태리 차는 곧 죽어도 달리기 하나만큼은 무조건 잘나가. 왜냐? 국민들 성격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급하거든. 같은 반도국가 아니야! 느린 차는 차로 취급을 안 해요. 이태리 차 봐봐.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안 나가는 차 있어? 양산차도 마찬가지야. 그것들은 실내 내장재 같은 건 좀 허접한 게 흠인데, 나가는 건 끝내주게 잘 나가. 악셀 끝까지 밟아봐. 기분 쥑인다고.”

그의 말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한 건 아니지만 오로지 달리기 위해 태어난 쇳덩어리인 양, 빠르게 잘 달리는 이탈이아 차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성능 좋고 매력적인 이탈리아 피아트의 차들이 자주 볼 수 없어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피아트와 한국의 인연은 오래다. 70년대에 기아차가 피아트 124와 132를 조립판매했었다. 국내 최초의 DOHC 엔진 장착모델이 바로 피아트 124였다. 수입차로는 금호그룹에 이어 한보그룹이 피아트의 모델들을 들여다 팔았다. 한보그룹이 정태수 회장의 수서비리 파동으로 무너지면서 피아트는 한국시장과 결별을 고해야 했다. 국내에서 팔린 피아트 최후의 모델은 ‘피아트 쿠페’였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났던 피아트가 다시 국내에 들어온 것은 피아트가 인수한 크라이슬러를 통해서다. 

다시 만난 피아트의 첫 모델은 500이다. 이탈리아어로 친퀘첸토로 읽는다. 이탈리아 차는 고성능이란 기억을 가진 기자에게 작고 예쁘기 만한 피아트 500은 생뚱맞게 보이는 이탈리아 차다. 우여곡절을 거친 피아트를 다시 한국에서 만난 건 2013년, 첫 시승차는 500, 친퀘첸토였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난 듯 무척이나 반갑다. 

개나리 색상의 친퀘첸토의 첫인상은 앙증맞고 귀엽다. 트렁크 쪽 헤치가 비스듬하기 때문에 차를 측면 45 각도에서 실루엣만 바라보면, 앞뒤가 비슷해 보이는데, 둥그런 헤드램프와 네모난 리어램프가 앞뒤를 분명히 구별시켜 준다.

차 크기에 비해 도어는 크고 묵직하다. 도어를 열고 닫을 때 묵직한 느낌이 전해진다. 쪼그만 녀석이 제법이다. 작은 차라면 도어에서 가볍게 울리는 소리는 깡통 철판 소리가 나도 이해할 법 한데 중형급 세단 수준의 도어 느낌을 전하고 있다. 작아도 자존심은 큰 녀석이다. 

천정은 높은 편이어서 타고 내리기에 편하다. 실내는 개방감이 있고, 운전석에서 바라볼 때 A필러부분이 폴크스바겐 비틀처럼 앞으로 전진 배치되어 회전할 때 시야가 좋다. 

실내 작동버튼은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단순화된 버튼 방식으로 조작하기 쉽다. 대시보드에는 보디컬러와 같은 노란색으로 배치해 눈을 시원하게 한다. 플라스틱 재질은 조금 딱딱한 느낌이다.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가장 개성적인 부분은 계기판인데, 원형의 속도계 계기판 중심에 또 하나의 작은 원 바깥 테두리로  rpm 바늘이 움직인다. 작은 원 안에는 차량 정보와 날짜, 시간, 요일까지 표시되어 편리하다. 

시트는 모두 수동으로 조작되고, 뒷좌석은 좁은 4인승이다. 뒷좌석 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운전석과 조수석은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음에 만족해야 한다. 오디오의 음질은 기대 이상으로 좋은데, 스피커를 실내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한 것 같다.

스티어링 휠은 가벼워서 운전하기 편하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해 고속에 이르면 스티어링 휠에 적당한 무게가 실린다.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면 변속시점이 늦어져 가속에 도움을 준다. 
엔진소음은 거슬린다. 특정 구간에서만 거친 게 아니다. 낮은 속도에서도 그리 조용한 편은 아니고 엔진 회전수가 증가함에 따라 비례해서 소음도 증가한다. 브레이크는 예민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다. 1, 2단 기어비가 조밀하여 초반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맛이 좋다.  작은 차지만 변속감은 고급 세단을 능가할 정도로 부드럽다. 변속레버를 왼쪽으로 당기면 수동조작이 가능하다.
타이어는 앞, 뒤 모두 피렐리 185/55R15 사이즈다. 단단히 노면을 붙드는 그립력은 인상적이나 타이어의 패턴 소음은 아쉬운 부분이다. 조용한 타이어로 교체하면 주행 소음 면에서 조금 더 유리하겠다. 

친퀘첸토의 엔진은 1,368cc 가솔린엔진으로 최고출력은 102마력, 연비는 12.4km/L다. 100km/h 주행시 2500rpm을 유지한다. 엔진 배기량이 작은 만큼 좀 더 큰 힘을 써야 시속 100km를 낼 수 있는 것.  시속 120km/h 까지는 여유 있게 속도 상승이 이루어지며 140이상은 힘이 달리는 느낌을 준다. 

서스펜션은 단단한 편인데 통통 튀지 않고 편안하다. 겉모습은 순한데 비해 주행성능은 외모와 반대로 스포티하다. 자동차의 기본기인 달리기, 서기, 돌기를 불안감 없이 잘한다. 청계천 옆의 돌로 된 오톨도톨한 길은 이탈리아 도심의 돌바닥 길과 비슷한데,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리면 비슷한 급의 다른 차는 몹시 심한 노면소음이 올라와 당황스럽다. 친퀘첸토는 달랐다. SUV로 지나가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약간의 진동만 전해줄 뿐 거친 노면에서 올라오는 쇼크와 잡음을 부드럽게 처리해준다.  이탈리아 길에 최적화된 친퀘첸토는 한국에서도 빛을 발하기에 충분한 느낌이다. 

경쟁상대로는 미니를 지목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이탈리안 자존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버다. 많은 사람들은 미니와 피아트 500을 경쟁차로 보지 않는다. 굳이 미니와 경쟁하려 하지 않아도 친퀘첸토는 충분히 존재감을 가질만한 차다. 

수입차 시장에 작은 차 바람이 분다. 

글·사진 / 박창완

pcw2170@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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