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 바람이 거세서일까. 포드까지 ‘메이드인 저먼’을 말하고 있다. 오늘 시승 할 모델은 포드 포커스 디젤. 독일 자를루이에 자리한 포드 공장에서 만든 차다. 미국 브랜드인 포드가 독일에서 만든 차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포드 유럽의 역사는 193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만든 모델 ‘Y’가 포드 유럽의 시초다. 포드가 처음으로 미국 밖에서 설계해 만든 차다. 포드가 유럽에서 만드는 소형차의 기원이기도 한 차다. 유럽에서도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포드다. 이쯤되면 유럽 차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유럽에서는 포드에 대해 이질감이 없어 미국 브랜드가 아닌 유럽 브랜드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포드코리아가 큰 기대를 걸고 판매에 나선 포커스 디젤 모델을 타고 시승에 나섰다. 포드 포커스는 포드의 글로벌 C 플랫폼을 사용한다. 포커스, 이스케이프, C맥스 등이 같은 플랫폼을 쓰는 모델들이다.
운전석에 앉아 버릇처럼 핸들을 끝까지 감아본다. 회전수 2.7. 작은 차답게 예민한 조향성능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수치다. 길이가 4도어 모델은 4,535mm, 5도어는 4,360mm다. 4도어는 아반떼보다 5mm 길고, 5도어는 현대 i30보다 60mm 짧다. 시승차는 163마력짜리 5도어 스포츠 모델이다.
포커스 디젤은 스포츠와 트렌드 두 개 차종이 있다. 동일한 1,997cc 디젤 엔진을 올렸는데 엔진 출력은 스포츠 모델이 163마력, 트렌드가 140마력으로 차이를 보인다. 출력 차이에도 복합연비는 17km/L로 동일하다. ECU의 소프트웨어를 조절해 두 가지 출력을 만들어 냈다는 설명이다. 대신 스포츠 모델은 서스펜션을 조금 더 하드하게 세팅했고 스포츠 시트를 적용했다는 것.
같은 엔진에 출력이 다른 두 개 모델이 연비와 CO2 배출량이 동일하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ECU 프로그램을 조절해 출력을 다르게 했다면 연비와 CO2 배출량도 차이가 나는 게 정상이다. 연비 변동 없이 출력만 다르게 프로그래밍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알쏭달쏭하다.
넓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넓게 드러난 앞모습은 공격적인 인상을 준다. 조금 복잡하고 과장돼 보이는 디자인은 작은 크기로 인한 왜소함을 커버해준다. 리어램프는 차의 옆면과 뒷면 모서리에 기하학적으로 배치됐다.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덩치는 작지만 실내는 5명이 앉을만 했다. 뒷좌석에 앉아보면 무릎 공간이 남는다. 대시보드는 포커스의 강한 개성을 담았다. 라인이 살아있고 면의 굴곡도 있어 지루함을 덜어준다. 요모조모 꾸미고 신경 쓴 티가 역력하다. 조금 과했던 걸까. 재미있는 디테일이지만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복잡하다. 특히 송풍구와 오디오 버튼이 자리한 부분이 그렇다. 디테일은 재미있지만 전체는 산만한다.
운전석 바로 옆으로 사이드 브레이크가 자리했고 그 옆으로 변속 레버가 있다. 변속레버와 사이드 브레이크를 세로 아닌 가로로 배치해 좁은 공간을 알뜰하게 이용하고 있다. 변속레버가 조금 먼 듯한 느낌을 준다.
운전석에 앉으면 버릇처럼 핸들을 돌려본다. 2.7 회전한다. 날카로운 핸들링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조향비다.
시동을 걸고 도로 위에 올라섰다. 차체 길이가 짧아 움직임이 경쾌하고 부담이 없다. 좁은 골목길이 불편하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차체가 빠르게 반응한다. 마력당 무게비는 스포츠 모델이 9.4, 트렌드가 10.9kg이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제법 큰 힘이 느껴진다. 163마력의 파워는 이 작은 차를 움직이는 데 충분해 보인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에서도 자잘한 소리들이 거침없이 실내로 파고든다. 소형 해치백인 만큼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디젤엔진의 묵직한 반응은 저속에서부터 힘 있게 차를 몰아친다. 굵은 토크감이 좋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유럽 세단의 느낌을 잘 전해주는 요소다. 이 차가 미국이 아닌 유럽 태생임을 확인하게 된다. 노면을 잘 딛고 선 타이어와 이를 정확하게 컨트롤하는 스티어링이 조화롭다. 코너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잘 돌아나갔다. 셔터 그릴이 적용돼 시속 70km에 이르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폐쇄된다.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다.
포커스 디젤에는 건식 더블 클러치가 적용됐다. 빠른 변속은 힘과 효율 모두를 잡아내는 일타쌍피의 카드다. 더블 클러치는 건식이지만 거칠지 않고 마치 습식처럼 부드럽게 작동해 변속 쇼크를 확 줄였다.
가속 페달에 킥다운 버튼은 없다. 그냥 밋밋하게 바닥까지 닿는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800 수준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6단 자동변속기가 엔진의 힘을 잘 컨트롤해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한 결과다.
시속 150km 이상의 고속주행에서는 노면과의 밀착감이 줄어든다. 소형 해치백의 한계다. 길이가 짧은데다 차 뒤로 넘어온 공기를 제대로 잡아주는 트렁크가 없어 차체가 노치백 세단에 비해 많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이 장점이라면 고속에서의 안정감이 조금 떨어지는 건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고속주행을 할 일이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다. 불편을 느낄 일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체급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냈지만 포커스 디젤은 달릴 수 있는 영역에서만큼은 만족스럽게 잘 달렸다.
17km/L의 연비는 이 차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새롭게 강화된 연비 규정에서 2.0 디젤 엔진으로 이 만큼의 연비를 내는 차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달리는 데 충분한 파워를 끌어내면서도 높은 수준의 연비를 보이는 것을 보면 의외로 완성도 높은 디젤 엔진임을 알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포드는 이미 유럽에서 최고의 디젤 엔진 메이커로 명성이 높다. 미니,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 피아트, 푸조, 시트로엥 등 유럽의 다양한 브랜드들이 포드 디젤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 경쟁자들에게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말이다.
포커스 디젤 판매가격은 트렌드 모델이 2,990만원, 스포츠 모델이 3,090만원이다. 포드 포커스 디젤이 수입차 시장의 지형을 넓히는데 큰 공을 세울 모델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소리는 거슬린다. 속도를 조금만 높이면 어김없이 바람소리와 엔진소리, 노면 잡소리 등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다. 소형 해치백이어서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가격을 맞추느라 그랬겠지만 내비게이션이 없는 건 불편하다. 이제 내비게이션은 필수인 시대인데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게 때로는 눈 감고 운전하는 것처럼 답답했다. 하다못해 스마트폰 거치대라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좀 낫겠다.
시승 /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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