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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스포츠 쿠페 시로코 R

어두운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었다. 계기판의 파란 바늘이 물결치듯 움직이며 잠자는 엔진을 깨운다. 어둠 속에서 파란 빛을 발하며 힘 있게 움직이는 바늘이 인상적이다.

시로코 R이다. 골프를 앞세워 소형 해치백을 평정하고 있는 폭스바겐이 고성능 모델로 개발한 신병기다. 폭스바겐의 고성능 제품들을 담당하는 폭스바겐 R GmbH가 만들었다.

길이 4,250mm, 높이 1,395mm. 작고 낮은 덩치가 암팡져 보인다. 폭은 1,820mm로 딱 벌어진 어깨를 가졌다. 보닛 라인은 앞으로 낮게 쏠렸고 치켜 올라간 엉덩이 라인에는 포르쉐의 느낌도 묻어 있다. 측면 옆구리는 잘록한 허리처럼 쏙 들어간 S 라인을 보여준다. 눈을 내리 깐 듯 한 헤드램프는 적당히 불량스럽게 보인다. 정해진 틀 안에 갖힌 모범생의 모습은 아니다. 작지만 우습게 볼 차가 아님을 디자인이 말하고 있다.

5개의 스포크를 가진 휠은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있다.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우는 19인치 타이어가 차의 비례를 멋있게 마무리하고 있다. 앞 뒤 모두 235/35ZR 19 타이어를 장착했다.

시로코 R은 까칠했다. 운전석 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도어를 열고 허리를 잔뜩 숙여 버킷 시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거의 수퍼카 수준이다. 머리부터 어깨, 허리, 엉덩이, 허벅지까지를 한 몸으로 받쳐주는 버킷 시트는 마치 레이싱카에 올라 탄 기분을 준다. 심박수를 올리는 자극적인 요소지만 불편하다. 그냥 순순히 운전석을 내주는 게 아니다. 콧대 높은 아가씨처럼 까탈스럽다.

바이제논 헤드램프와 블랙 스모크 테일램프, 듀얼 머플러를 갖췄고 뒤 범퍼 아랫부분은 블랙 하이글로시 디퓨저를 적용했다. 시로코 R만의 모습이다.블랙 하이글로시 사이드미러와 ‘R’ 로고가 새겨진 브레이크 캘리퍼, 바디와 동일한 컬러의 사이드 스커트 등은 시로코 R 만의 모습. 보디 컬러는 R모델에만 특별 제공되는 라이징 블루를 비롯해, 캔디 화이트, 딥 블랙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낮은 지붕이 시야에 걸린다. 야구모자를 쓴 느낌이다. 신호대기 중에 제일 앞에 서면 어떨 때에는 머리를 숙여야 신호등을 볼 수 있을 정도. 차 안에 푹 파묻힌 느낌을 준다.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면 뒷좌석의 헤드레스트 두 개가 거울을 가린다. 뒷좌석 헤드레스트는 가운데를 파 빈 공간으로 만들어 시야를 가리는 부분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좁은 뒷좌석은 그나마 독립된 두 개의 시트로 구성했다. 좁지만 필요할 때에는 유용하게 쓰일 시트다.

핸들 아랫부분이 직선으로 처리된 D 컷 핸들은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볍게 핸들을 쥐면 핸들이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다. 핸들을 돌려보면 정확하게 3회전 한다.대시보드는 골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테리어에서 느껴지는 폭스바겐 모델들의 비슷한 느낌을 시로코도 가졌다.

파노라믹 루프 글래스는 시원한 하늘을 실내로 선물한다. 선루프처럼 지붕을 완전히 열 수는 없지만 살짝 들어올리는 틸트 기능이 있어 좋다. 이 정도만 해도 실내 환기효과는 확실하다. 굳이 지붕을 활짝 여는 선루프가 아니어도 충분히 만족할만하다.

이 작은 차에 올라간 2.0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265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35.7kgm다. 엔진 배기량에 비해 놀라운 힘을 뽑아내고 있다. 최대토크는 디젤 엔진과 같은 수준으로 2,500~5,000rpm에서 고르게 터진다.

이 엔진을 뒷받침하는 변속기는 6단 듀얼 클러치 DSG다. 두 개의 클러치를 배치해 변속 타이밍을 극단적으로 짧게 가져가 연비와 성능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기술이다.

시로코 R의 서스펜션은 일반 시로코보다 10mm 낮은 스포츠 서스펜션이 적용됐다. 심한 코너에서도 최상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자식 디퍼렌셜 록 XDS (전자식 가로축 잠금 시스템) 시스템이 장착됐다. 차세대 전자식 주행 안정 컨트롤(ESC), 야간 주행 시 40km/h 이하의 속도에서 차량 진행방향대로 비춰주는 정적 코너링 라이트, 전조등 세척 장치, 타이어 공기압 경고장치 등이 기본 탑재됐다.

정숙하면서도 반응이 빠른 가솔린 엔진은 시로코 R을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로 만든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얌전하게 움직이는가하면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야생의 질주를 보여준다.

시로코 R은 작은 차도 고속주행을 잘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차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작은 차는 고속주행안정성이 중대형차에 비해 떨어진다. 시로코 R은 아니었다. 극한적인 속도를 넘나드는 고속주행에서 제법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했다. 차체 크기로 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수준이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가속을 이어가면 시프트 업이 일어나는 순간에 마치 헛기침을 하는 것 같은 특이한 변속음이 들린다. 재미있다. 7,000rpm을 지나 시프트 업이 이뤄지면 rpm 게이지는 5,000까지 빠르게 떨어지다가 다시 상승을 시작한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400을 마크했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6단 DSG 변속기라면 rpm을 조금 낮춰도 만족할만한 성능과 속도를 확보할 수 있겠지만 스포츠 쿠페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만큼 rpm을 조금 높게 쓰고 있다.

덕분에 가속응답성은 확실히 빠르다. 즉답식이다. 가속페달로 신호를 보내면 시트가 바로 등을 밀어낸다. 조향반응 역시 빠르다. 반응이 빠르고 버킷시트에 앉은 몸이 이를 더 빨리 느껴 차와 드라이버가 한 몸이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코너를 돌아나갈 때 가속페달과 스티어링 휠의 조작이 버킷 시트를 통해 즉각적으로 드라이버의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제법 짜릿하다. 스포츠 쿠페로선 더 없이 큰 미덕이다.

서스펜션은 에누리 없다. 일원 한 푼 에누리 없이 가격표대로 찍어대는 계산원처럼 도로 위의 저항, 충격을 거의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그만큼 딱딱하다.

엔진 사운드는 어떤 소리에도 지지 않는다. 중저속에서도 느낌이 살아있는 엔진 사운드는 속도를 높이면 아주 확실하게 모든 소리를 제압한다. 바람소리, 노면 노이즈도 엔진 소리에 묻혀버린다. 엔진 소리를 제대로 즐기길 원하는 드라이버라면 시로코 R이 사랑스러울 법 하다.

시로코 R의 연비는 11.2km/l로 4등급이다. 성능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 연비를 어느 정도 희생한 값으로 보인다. 배기량과 성능을 고려하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연비다.

국내 판매 가격은 4,820만원이다. 수퍼카 흉내를 내는 작은 쿠페다. 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즐기기에는 딱 좋은 가격과 성능이라 하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시트를 누이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레버를 젖혀 바로 시트를 누이는 게 아니라 동그란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야 시트가 조금씩 기운다. 한 숨 자려고 시트 조절하다 잠이 깨버릴 정도다. 여자에게 작업 중이라면 뽀뽀까지만 해야 한다. 그 이상 작업을 시도하려고 시트를 조절하다간 서로 민망해진다. 유독 폭스바겐이 시트에 이같은 로터리 손잡이를 고집한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A, C 필러는 두껍다. 왼쪽으로 심하게 굽은 길을 갈 때, 혹은 고개를 돌려 측후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 필러가 시야의 상당 부분을 가린다.

시승 /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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