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는 고집쟁이다. 남을 따라가는 법이 없다. 옛날을 구식이나 무시하지 않고 새것을 무작정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정교한 기계적 결합에 전자장치를 더해 좀 더 완벽에 가까운 자동차를 만든다. 잘 달려야 한다는 명제 하나에 포르쉐의 모든 관심은 집중돼 있다. 편안함은 그 다음이다. 그래야 포르쉐다. 

포르쉐의 다양한 모델들 중에서도 박스터는 카이맨과 더불어 미드십 엔진이라는 가장 좋은 체형을 가졌다. 박스터는 컨버터블이고 카이맨은 하드탑 쿠페다. 엔진이 뒤차축 안쪽에 낮게 배치돼 차의 무게중심이 가운데,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흔들림 없이 잘 달릴 수 있는 체형이다. 

포르쉐 박스터 S를 만났다. 3세대로 진화한 모델이다. 1996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박스터는 2005년 2세대로 탈바꿈했고 이제 3세대 모델을 선보였다. 356 No1 로드스터, 550 스파이더, 718 RS60 스파이더로 이어지는 포르쉐의 미드십 로드스터의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도로 위에 넓고 낮은 자세로 웅크린 박스터는 크지 않은 차체지만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간직하고 있다. 범퍼에 자리한 LED 드라이빙 램프,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등 여기 저기 변한 곳이 눈에 띄지만 여전히 박스터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바로 포르쉐의 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의 변화도 상당하다. 지독한 다이어트로 무게는 가벼워졌고 휠베이스는 길어졌고 트레드는 넓어졌다. 훨씬 더 안정된 자세를 확보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연비로 대표되는 연료 효율성을 더 좋아졌고 힘은 세졌다. 

소프트톱은 진한 와인색이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인상이다. 부리부리한 눈, 미끈하게 빠진 보디는 다른 여느 차들과는 다른 아우라를 가졌다. 완전히 바뀐 뒤태는 여전히 매력만점이다. 볼륨감 넘치는 여인의 엉덩이를 닮은 리어 휀더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손이 올라간다. 

두 개의 배기구는 범퍼 아래 한 가운데에 차렷 자세로 모아져 있다. 엔진을 가운데로 밀어 넣은 덕분에 차체의 앞과 뒤에 트렁크를 확보했다.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실내에 마땅한 공간이 없는 만큼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는 트렁크다.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4,374mm, 1,801mm, 1,281mm다. 넓고 낮은 사이즈다. 도로에 딱 달라붙는 자세가 나온다. 이 녀석과 눈을 맞추려면 허리를 굽히는 정도가 아니라 무릎을 꿇어야 한다. 운전석 시트 포지션도 낮다. 도로에 달라붙어 달리는 맛을 느끼기에 좋은 위치다. 낮은 자세를 요구하는 건, 그만큼 겸손하게 운전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포르쉐는 엔진 소리가 다르다. 박스터S도 그랬다. 3.4리터 315마력의 파워를 자랑하는 박서 엔진의 숨소리는 공회전 상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들리는 듯 마는 듯 하는 일반 세단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쭉 뻗은 도로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제대로 박스터S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초반의 엔진 반응이 두근거림이었다면 고속주행에서의 엔진 사운드는 마음껏 소리를 내지르는 로커의 열정적인 노래를 닮았다. 살짝살짝 심장을 터치하다가 본격적으로 두드리는, 찢어지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차와 드라이버의 맥박수가 함께 빨라진다. 극한으로 빨려들어가는 소리. 속도계의 바늘은 이미 오른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극한적인 고속주행이지만 몸이 느끼는 체감속도는 그리 높지 않다. 이 상태에서도 차는 여유가 있다. 변속기는 4단, rpm은 6,000~7,000을 넘나들고 있다. 도전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박스터 S는 다른 포르쉐 모델들이 그렇듯이 달릴수록 안정감이 더 살아난다. 저속에서는 거칠게 느껴지는 서스펜션이 고속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딱딱한 서스펜션이 중저속에서는 차가 튀는 느낌을 주지만 속도를 올릴수록 그런 딱딱함이 차를 제대로 지지해 극한적 주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시승차에는 PDK가 적용됐다. 더블클러치가 적용된 7단 기어박스다. 두 개의 클러치를 이용해 변속타이밍이 빠르고 추월가속은 물론 가속을 마친 뒤 일상적인 주행상태로의 복귀도 빠르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극한적인 속도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일상주행 상태를 빠르게 넘나드는 것. 포르쉐는 이미 1980년대에 모터스포츠를 위해 이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후 911에 처음 적용해왔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인 PASM도 있다. 이를 통해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3개의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전 후륜에 4개의 수직 센서를 추가해 주행상황을 섬세하게 제어한다. 편안하게 달리는 노멀모드와 노면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달리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의 느낌은 확연하게 다르다. 스포츠카의 본류인 포르쉐답게 스포츠 모드에서 한 단계 더 나간 스포츠 플러스를 도입했다. 극한의 경험을 위한 모드다.

시속 100km 상태에서 노멀 모드를 택하면 rpm이 1800에 머문다. 같은 속도에서 스포츠모드로 변경하면 2,800rpm으로 올라가고 스포츠 플러스로 세팅하면 3,500으로 점프한다. 같은 속도라 해도 주행모드를 택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달리는 성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포르쉐의 고집이 박스터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스터 S에는 엔진 스타트 스톱 기능도 있다. 차가 멈추면 엔진도 따라 멈춘다. 시동이 꺼지면서 몰려드는 조용함은 묘한 느낌을 준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다시 시동이 걸린다. 극한의 성능을 추구하는 스포츠카지만 이와 더불어 기름 한 방울도 아끼는 짠돌이다. 10.1km/L의 연비가 나오는 비결이다.

코너에서 이 차가 보여주는 성능은 매우 탁월하다. 2.7 회전하는 핸들을 살짝 돌리기만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차의 흔들림은 크지 않다. 한 가운데 바늘을 꽂고 움직이는 것처럼 날렵하면서도 스트레스 없이 코너를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미드십 리어 엔진의 특성에 더해 코너 안쪽 바퀴를 적절하게 제어해주는 토크벡터링 기술이 결합해 만드는 코너링 특성이다. 

지붕을 열고 달렸다. 전동식 루프의 작동 시간은 9초. 시속 50km 미만에서 이동 중에도 지붕을 여닫을 수 있다. 히터를 틀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춥다는 느낌이 없다. 차창을 올리면 나름 포근한 느낌까지 준다. 상쾌하다. 바람이 실내로 휘몰아치지도 않는다.

박스터S는 기본이 하드한 차다. 평상 주행시에도 노면의 쇼크가 크게 전해진다. 도로방지턱이 사방에 깔린 이면도로에선 불편함이 크다. 스포츠카를 타는 불편함일 수 있다. 이런 불편은 쭉 뻗은 도로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흔들림 없이 안정된 자세로 달리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달릴수록 편안해지는 짜릿한 역설을 박스터S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운전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진다. 운전에만 집중하게 된다. 모든 걱정과 잡념을 버리고 차와 하나가돼서 달리는 기분은 느껴본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다. 바로 스포츠카를 타는 이유이기도 하다. 판매가격은 9,560만원부터다. 다양한 옵션들을 통해 나만의 포르쉐 박스터S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옵션을 택할 때마다 가격이 따라서 올라간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2인승 로드스터로 공간의 협소함은 피할 수 없다. 시트를 뒤로 누일 수도 없다. 장거리 이동할 때 차에서 쉬기는 힘들다. 고래 꿈을 꾸면서 새우잠을 자야할 판이다. 이 차를 택하려면 일반 세단에서 누릴 수 있는 사소한 편안함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단점이라기 보단 특성이지만 그래도 때론 불편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