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밀린 숙제하느라 바쁘다. 연말에 4개 차종을 몰아서 출시했다. 오딧세이 파일럿 크로스투어 그리고 어코드를 두 개씩 묶어 두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미니밴 SUV CUV 세단 등 다양한 차종을 거의 동시에 풀어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하나하나가 주목할만한 모델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모델은 역시 어코드다. 혼다의 주력 차종이어서다. 혼다코리아의 화룡정점 어코드를 경주에서 시승했다. 기자에게 배당된 차종은 어코드 2.4.

신형 어코드는 9세대 모델이다. 1976년 3도어 해치백으로 첫 모델을 선보인 뒤 혼다를 대표하는 중형세단의 자리를 36년간 이어오고 있는 혼다의 자존심과 같은 모델이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차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국내 수입모델 역시 미국에서 생산된다.

신형 어코드는 구형보다 작다. 길이가 70mm, 휠베이스는 25mm가 줄었다. 신형모델을 내놓을 땐 너도 나도 크게 만드는 관행을 혼다는 따르지 않았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공간이 작아지지는 않았다. 실내 패키징을 통해 유효 공간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뒷좌석에 앉아도 무릎 공간이 넉넉하고 트렁크에는 골프백 4개가 들어간다. 어코드는 과감히 길이를 줄여 중형세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켰다. 크기를 키우다보면 소형이 중형이 되고 중형이 대형이 되게 마련이다. 과욕을 억제하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절제가 돋보인다.

세단의 공식에 충실한 단정한 모습이다. 혼다에서 처음으로 LED 램프를 도입했고 익스테리어 디자인도 많이 변했다. 칼 같은 주름 두 개가 위 아래로 배치된 측면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게 꾸몄다. 손에 잡히는 핸들의 느낌이 좋다. 핸들 뿐 아니다. 손끝이 느끼는 감각은 매우 좋다. 변속레버와 각종 버튼들, 그리고 터치식 내비게이션 모니터까지 촉감이 좋다. 내비게이션은 아이나비 맵을 탑재한 현대모비스 제품을 쓴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사용하기 편하다. 핸들에 붙은 버튼은 햅틱 스타일이다. 하지만 손동작을 인식하는 스마트한 기능은 없다. 그냥 버튼처럼 눌러서 작동한다.

적당히 고급스러운 가죽시트는 몸에 잘 맞는다. 특히 어깨와 허리의 밀착감이 좋다. 몸에 잘 맞는 슈트를 입은 느낌이다. 차가 회전할 때 시트와 몸의 밀착감이 높아 몸이 느끼는 안정감이 높다. 시트가 운전자의 몸을 잘 잡아주면 차의 안정감도 높아진다.

스타트 버튼을 빨간색으로 만든 게 눈길을 끈다. 반대편 핸들 왼쪽에는 초록색 버튼이 또 하나 있다. 엔진 변속기 등이 연비 위주로 반응하는 에코버튼이다. 패들 시프트는 없고 변속레버는 스텝트로닉이 아닌 일자형이다. 수동변속을 하려면 주행 상태에 맞춰 D, S, L 레인지를 이용해야한다.

기자가 시승한 2.4 EXL 모델은 직렬 4기통 2.4 DOHC i-VTEC 직분사 엔진에 무단변속기를 적용했다. 최고출력 188마력, 최대토크 25.0kg•m의 동력 성능을 갖췄다. 공차중량 1,52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8.05kg. 중형 패밀리세단으로 적당한 체격과 체력을 갖췄다.

시승코스는 경주를 출발해 호미곶까지 왕복하는 길이다. 국도와 고속도로가 섞인 길로 어코드를 느끼기에 좋은 코스다.

어코드에는 혼다가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구현하기 위해 만든 ‘어스 드림(Earth dream)’ 테크놀로지가 적용됐다. 성능과 연비를 최적화시킨 혼다의 기술을 말한다.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직분사 방식의 엔진, 무게를 줄인 서스펜션, 기어비를 넓힌 무단변속기 등이 조화를 이뤄 성능을 높이고 연비는 개선했다.

무단변속기는 부드러운 가속감을 만든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속도를 높일 때 변속층격이 없다. 부드럽게 속도를 높인다. 힘 있게 차체를 끌고가는 가속감도 만족스럽다.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한계속도까지 치고나가는 힘이 인상적이다. 부드럽지만 파워풀하다.

앞 서스펜션은 기존 더블위시본에서 스트럿 방식으로 교체하면서 약 15.2kg 무게를 줄였다. 스프링 아랫부분에서 무게를 줄이면 감량효과가 훨씬 크다. 다른 부분에서 무게를 줄이는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차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데에는 더블위시본이 더 우수하다는 것이 상식.

어코드 2.4의 복합 연비는 12.5km/L로 3등급에 해당한다. 가솔린 엔진으로 배기량에 비해 우수한 연비다. 2.4리터라는 배기량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일차들이 꾸준한 다운사이징을 통해 엔진 배기량을 낮춰온 탓에 여기에 익숙한 이들에겐 일본차들의 배기량이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편안한 속도로 시내를 벗어난 뒤 속도를 올렸다. 시속 120km를 넘기는데도 실내는 조용한 편이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ANC)이 소음을 상쇄시켜 조용한 실내를 유지해 준다. 차가 주행할 때 실내로 유입되는 소리를 잡는 음파를 발생시켜 소리로 소리를 잡는 기술이다. 또한 차체의 하부를 언더커버로 덮어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도 많이 걸러낸다. 덕분에 일상주행속도는 물론 이 보다 조금 더 높은 속도에서도 편안하고 조용한 승차감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시멘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잡소리까지 완전히 제어하지는 못한다. 속도를 더 올려 최고속에 이르면 바람소리가 커진다.

제법 날카로운 핸들링도 인상적이다. 최대 2.7 회전하는 핸들은 조작량에 비해 큰 반응을 이끌어낸다. 코너를 타고 넘는 즐거움이 크다. 중형 패밀리세단이지만 원한다면 스포츠세단으로서의 면모도 확실하게 보여준다.

시속 100km, D레인지에서 rpm은 1800을 유지한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변속레버를 S로 옮기면 3000, 다시 L로 내리면 4,000rpm까지 올라간다. 저단기어인 L에서 100km/h를 마크하는 게 놀랍다. 높은 속도에서 강력한 엔진 브레이크 효과를 누릴 수 있다.

2.4에는 없지만 3.5 모델에 레인 워치 시스템이 있다. 사이드미러에 카메라를 달아 센터페시아의 모니터에 영상을 보여주는 것. 사이드미러보다 넓게 오른쪽 뒤의 영상을 보여줘 사각지대를 없앴다. 볼보의 BLIS 보다 진화한 기술이다. 카메라를 배치해 영상으로 뒷부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향후 사이드미러 자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이드미러가 없는 차가 가능해진다는 것. 법규상 사이드미러를 강제하고 있어 당장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언제든지 카메라가 사이드미러를 대체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혼다가 어코드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 모두의 관심이었다. 닛산은 알티마를 출시하면서 캠리와 동일한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한 혼다의 마지막 한 수가 절묘하다. 2.4 모델을 두 가지 트림으로 구분해 가격을 책정했다. 2.4 EX를 3,250만원, 2.4EXL을 3,490만원으로 결정한 것. 캠리와 알티마는 2.5 모델이 3,350만원이다. 혼다는 주력모델로 기대하는 2.4 EXL을 140만원 비싸게 책정하는 대신 경쟁모델보다 100만원 저렴한 2.4XE를 배치해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을 해소시키고 있다. 신의 한 수까지는 아니어도 절묘한 수를 찾은 셈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화면터치 방식의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멀다. 화면을 터치하려면 시트에서 몸을 세워 앞으로 숙여야 한다. 불편하지만 마땅히 대안은 없다. 내비게이션 위치를 조절할 수도 없고 터치를 포기할 수도 없다.
일자형 변속레버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패들시프트를 적용하거나 수동변속기능을 포함하는 스텝트로닉 방식을 적용하면 조금 더 재미있게 운전할 수 있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