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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의 조용함 물려받은 토요타의 자객 ‘벤자’

‘렉서스’ 벤자로 착각했다. 조용해서다. 사뿐거리는 발걸음으로 미끄러지는 벤자는 적진을 파고드는 자객 닌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조용함’에 대해 최고 경지를 이룬 렉서스의 기술이 이제 토요타로 이전되고 있음을 벤자는 말해주고 있다. 렉서스 벤자여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조용했다. 3.5리터의 폐활량을 가진 토요타 벤자 리미티드를 타고 가을 속을 달렸다.

토요타는 “여태껏 보지못한 새로운 세그먼트”라고 했다. 세단과 SUV 사이 어디쯤이 벤자가 자리할 위치다. 왜건이라해도 좋겠다. 아무튼 생소한 스타일이다. 토요타가 북미시장 전용으로 만들었다는 모델이다.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한국이 처음 팔리는 시장이다. 한미 FTA이후 미국생산 모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토요타에서는 시에나, 캠리, 이후 세 번째로 들여오는 미국산 모델이다.

벤자의 익스테리어 디자인 과정에는 한국인 선임디자이너 이정우 씨가 참여했다. 그러고 보니 기자는 최근 한 달 사이에 해외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세명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벤자 디자이너 이정우, 디트로이트에서 쉐보레 디자인으로 근무하는 신가영, 푸조 208을 디자인한 신용욱 등이다. 한국의 디자인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흐믓하다.

일본 메이커 토요타가 미국 시장 전용으로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종의 디자인에 한국인이 참여했다는 건 이 차가 단순히 일본차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섞여 하나의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건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차, 미국차, 유럽차, 한국차로 단순히 국적을 가르는 일이 갈수록 의미없는 일임을 말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조화를 이룬 앞모습은 단정하다. 쫑긋 세운 귀처럼 솟아 있는 사이드미러가 차를 영민해 보이게 한다. 주간 주행등 역할을 하는 LED 램프를 비스듬히 세로로 배치해 라디에이터그릴과 보조를 맞췄다. 딱딱해 보이지 않으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전한다.

옆모습은 전고후저의 단정함이 포인트. 굳이 쿠페라인이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루프라인은 자연스럽게 뒤로 살짝 기울었다. 옆에서 보면 세단보다 차고와 최저지상고가 높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뒷모습을 보면 토요타 브랜드와 벤자라는 큰 이름표가 한가운데 자리했다. 기하학적 형상의 리어램프는 측면까지 파고들어 옆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했다.

생소한 모습이지만 곧 눈에 익을 디자인이다. 토요타의 디자인은 패밀리룩과 거리가 있다. 전시장에 가보면 각각의 모델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어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된 이미지가 없다는 말이다. 한밭대 구상 교수 같은 이는 “대중 브랜드에 패밀리룩은 큰 의미 없다”고 말한다. 그 차를 소유하는 개개인의 취향이 중요하지 차의 브랜드를 강조하는 패밀리룩은 프리미엄 브랜드에나 필요한 요소라는 것. 듣고 보면 그말도 맞는 듯하다.

실내는 제법 고급스럽다. 대시보드와 도어패널을 싸고 있는 플라스틱이 유감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안락하고 포근하다.
시트포지션은 세단보다 높다.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하다. 문을 열고 엉덩이를 갖다대면 바로 시트여서 타고 내리기도 편하고 자연스럽다. 센터 콘솔은 심청이가 빠져죽은 임당수처럼 깊고 넓다. 노트북 SLR 카메라가 함께 들어갈 정도다. 또한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어 물건들을 수납하기가 매우 편하다.
60:60 공간 구성이다. 운전자와 조수석 승객이 모두 60%의 공간을 차지하게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 가운데 공유하는 부분을 각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공간은 넉넉하다. 특히 뒷좌석은 여유 있다. 뒷 시트는 좌우로 분리돼서 등받이를 독립적으로 누일 수 있다. 물론 접어서 트렁크 공간을 넓힐 수도 있다. 버튼 한 번 조작으로 시트는 바로 접히다.
뒷시트는 앞시트보다 조금 높게 배치했다. 뒷좌석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지붕에는 글래스 루프를 배치해 뒷좌석에서 느끼는 개방감이 대단하다. 답답한 느낌이 없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용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 렉서스 세단에 버금가는 수준의 정숙성이다. 골목길을 빠져나갈 땐 엔진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미끄러진다. 자꾸 렉서스가 겹쳐 떠오른다.
조용함은 시종일관 이 차를 지배한다. 저속에서는 물론 고속주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상적인 부분은 고속주행에서의 바람소리다. 이 정도 속도라면 폭풍같은 바람소리가 실내로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벤자는 그렇지 않았다. 엔진 소리가 강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바람소리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차고가 높은 체형임에도 공기를 가르는 풍절음은 미약했다.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렉서스에서 익힌 방음대책 기술이 토요타로 이전되고 있음을 벤자가 말해주고 있다. 보디 패널 안쪽으로 방음재를 적재적소에 적용했고 차창에도 소음을 차단하는 시트를 더하는 등 ‘소리에 강한 토요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확히 3회전하는 핸들은 큰 편이다. 게다가 좌우 폭이 1,910mm에 달해 좁은 공간에서 움직일 때 핸들 돌리기가 조심스럽다. 운전석에 앉으면 넓은 차폭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벤자 3.5는 사륜구동시스템을 적용했다. 가변식 사륜구동으로 주행상태와 도로상태에 따라 앞뒤 구동력 배분을 달리하는 시스템이다. 사륜구동시스템은 차의 주행안정성에 큰 도움을 준다. 특히 겨울철 결빙구간에서 사륜구동은 최고의 안전성까지 확보한다.
도로 한쪽이 얼었을 때 후륜구동차는 중심을 잃고 팽이처럼 돌아버릴 위험이 크다. 앞바퀴굴림차는 조금 낫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구동바퀴중 하나가 헛돌면 50%의 구동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륜구동차는 훨씬 더 안전하다. 바퀴 하나가 구동력을 잃어도 나머지 세 개의 바퀴가 구동하고 있어서 중심을 잃을 위험이 크지 않다. 그래서 안전하다. 기후변화가 심할수록 사륜구동차의 진가는 빛을 발한다.

세단보다 높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벤자는 코너에서도 강했다. 좁은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는데 차체는 단단히 노면을 붙들고 돌아간다. 타이어 비명 소리도 없다. 기대보다 잘 돌았다. 액티브 토크 컨트롤 시스템이 더해진 사륜구동 시스템이 비결이다. 앞뒤 차축으로 전해지는 토크를 조절하며 코너를 부드럽게 돌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다.

3.5 엔진의 출력은 272마력으로 부족함이 없다. 35.1kgm의 토크도 여유롭다. 마음 먹고 가속페달을 밟아 몰아붙이면 저속에서 최고속 구간까지 거침없이 속도를 올린다. 편안하게 움직이는 게 어울리는 차지만 필요할 땐 강한 힘으로 거뜬히 고속주행을 수행하는 거친면도 돋보인다. 6단 자동변속기의 뒷받침도 좋다. 엔진의 힘을 부드럽고 효과적으로 변화시켜 타이어로 전해준다.
연비는 3.5 모델이 8.5km/L, 2.7은 9.9km.L다. 신연비 기준이다. 판매가격은 2.7 모델이 4,700만원, 3.5모델은 5,20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사이드미러에는 볼록 렌즈가 있어 사각지대를 비춰준다. 하지만 사이드미러와 볼록레즈에 비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이 한 번에 인식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봐야 제대로 인식된다. 볼록렌즈는 어디까지나 보조장치일 뿐이다. 고개를 직접 돌려 뒷부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좋다. 우측 차선 변경을 위해 고객를 돌려 뒤를 보면 순간적으로 초록색 차가 따라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좌측 뒤창에 붙어있는 연비표시 스티커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걸리는 탓이다. 스티커 위치를 조절하는 게 좋겠다.
센터페시아 위에 대시보드 안쪽에 자리한 별도의 정보표시장은 영어로 표기된다. 정보를 읽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운전자가 이를 세팅하기 위해 조작하려면 영어로 안내된다. 영어에 약한 사람은 불편하겠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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