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데스밸리의 여간첩 ‘브렌다 프리디’

브렌다 프리디는 미국 데스밸리를 무대로 자동차 스파이샷을 전문으로 찍어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포토그래퍼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에 걸쳐 자리한 데스벨리는 지구상 최악의 환경을 가진 곳 중 하나다. 여름철 기온이 섭씨 49도를 넘나들고 최고기온이 57도까지 치솟았던 기록이 있다. 이처럼 높은 기온에 연평균 강수량은 59mm에 불과한 사막지대다. 데스밸리는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바다 표면보다도 80m 이상 더 내려간 곳. 생명이살아남기 힘든, 그래서 이름조차 죽음의 계곡이다.

이 같은 가혹한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는 데스밸리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적의 자동차 시험 장소로 꼽힌다. 다른 곳에서 멀쩡하던 차들도 데스밸리에 들어서면 엔진이 과열되고 대시보드의 내장재가 열 때문에 변형돼 우그러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가장 더운 이 곳에서 자동차가 아무 탈 없이 운행한다면 적어도 더위에 관한 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스파이샷은 자동차 언론에서 가장 큰 관심과 인기를 끄는 장르다. 스파이샷이 게재되면 클릭수나 잡지의 판매부수가 급증한다. 곧 출시할 차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탓이다. 소비자들에게 가까운 시일 안에 출시할 차의 실체가 스파이샷을 통해 가장 먼저 알려지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개발자들의 애환도 있다. 차가 출시될 때까지 최고의 보안을 유지해야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신차 관련 정보는 당연히 최고의 기업 비밀로 취급된다.

스파이샷을 찍어야 하는 이는 이처럼 소비자들의 알권리와 기업 비밀이 맞부딪히는 곳에서 활약하는 스파이인 셈이다. 긴장감이 넘치고 때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데스밸리에 출몰하던 테스트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11월에 라스베가스에서 브렌다 프리디를 만났다. 전세계적으로 스파이샷을 전문으로 찍는 기자는 약 20명 내외다. 북미지역에선 4명 정도가 활약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브렌다다.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브렌다 프리디는 40대 중반의 아줌마였다. 선한 얼굴에 활짝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그녀의 얼굴은 ‘스파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인사를 나누며 전해받은 명함 뒷면에는 각국 언어로 ‘스파이’라는 단어를 적어놓았다. 한글로는 ‘간첩’이라고 썼었는데 그 의미와 뉘앙스를 알고난 뒤 한글 ‘간첩’은 뺏다고 한다.

어떻게 그녀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우연이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기도 했고 결혼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직업은 아니었고 보석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피닉스에 살던 92년 어느 날 귀가하는 중 동네식료품점에 프로토타입이 주차되어 있는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94년 출시될 포드 머스탱이었다. 그 다음날 오토모빌 매거진에 연락을 했고 92년 11월호 표지에 내 사진이 실렸다. 게다가 이 사진을 찍은 후 일주일동안 우연히 4대의 포드 프로토타입을 더 찍을 수 있었다”

얼떨결에 찍은 몇 장의 사진으로 그녀의 삶은 뒤바뀐다. 당시 피닉스 인근 지역은 미국 메이커들의 테스트카들이 즐겨 이용하던 코스였다. 그 일 이후 여러 잡지사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고 영국 잡지사 한곳에서 데스밸리에서의 스파이샷을 의뢰해오면서 그녀의 일이 시작됐다.

스파이샷을 찍는 일이지만 나름대로의 업무윤리가 있다. 그녀는 절대로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위장막을 벗기거나 들춰봐선 안되고 차문을 여는 행위도 금물이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테스트중인 미국산 풀사이즈 픽업트럭을 만난 적이 있었다. 엔진룸을 보고싶었지만 남의 차를 손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차된 곳 바닥에 부동액을 조금 뿌려두었다. 차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후 나타난 엔지니어에게 ‘뭔가 새고 있는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보닛을 열고 차 안에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그 틈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무용담을 이야기 할 때 그녀는 환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되기도 하고 활짝 웃으며 스파이샷을 찍을 당시를 회상했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현대차에 대한 코멘트도 빼먹지 않았다.

“데스밸리에서 만나는 테스트 엔지니어들중에서는 현대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최고다. 그들은 나를 만나면 물이나 음료수가 부족하지 않은지, 괜찮은지 꼭 물어본다. 다른 브랜드의 엔지니어들은 그렇지 않다. 지난 여름에 길가에 차를 세웠다가 모래에 빠져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이있었다. 한 브랜드 엔지니어가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더니 창문을내리고는 ‘오. 브렌다? 하하’ 하고 고소하다는 듯 웃더니 그냥 가버렸다”

이미 그녀는 데스밸리의 스파이로 테스트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그녀를 만나는 건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막에서 만나는 테스트드라이버들에게 간단한 기념품으로 고무로 만든 팔찌를 전해준다. 거기에는 “주의, 스파이 출몰지역 사진촬영 금지, 예외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은 요즘은 어떤 기념품을 나눠주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때로 테스트 드라이버들은 내 차의 번호판을 적어가기도 한다. 경찰에 신고할 것처럼 하여 겁을 주려는 것인데 나는 매년 번호판을 바꾼다. 지금번호판은 독일어로 여성 스파이를 뜻하는 SPIONIN인데 독일에서 온 드라이버들이 내 차 번호판을 적으려고 차 뒤로 갔다가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현장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유머인 셈이다. 엔지니어들의 반응도 재미있다.

“한번은 GM의 프로토타입을 찍었는데 엔지니어 한명의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적이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그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막대기 끝에 붙여서 푯말처럼 만들어서실험차에 싣고다니다가 나를 보면 그걸 들어서 자기 얼굴을 가리곤 했다”

그래도 현장은 늘 험하고 위험하다. 사진을 찍는 순간 엔지니어가 카메라를 붙들고 실랑이를 버리다다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었다. 테스트카가 그녀 앞으로 그대로돌진해 함께 있던 아들이 다칠뻔한 일도 있었다. 돌이 날아오기도 하고 사진을 찍던 중 차 문이 열리며 부딪히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로드테스트를 나서는 엔지니어나 드라이버들중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재미있게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캐논 50D다. 여기에 이미 단종된 35-350mm 줌렌즈를 장착해 쓴다. 사용환경이 가혹해 오래 사용하기 힘들어 너무 비싸지 않은 카메라를 자주 바꾼다고. 흔히 똑딱이라고 부르는 소형 카메라도 사용한다. 회전식 뷰파인더를 가진 경우 낮은 각도에서 하체를 찍기에도 편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즈음 그녀는 탑기어코리아를 언급했다.

“얼마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정리한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탑기어 코리아에 출연하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탑기어코리아를 봤는데 한국어를 모르기때문에 진행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너무나 즐겁고 신나보였다. 그때부터 탑기어 코리아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로 그녀는 테스트 드라이버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기도 한다. 주제는 스파이샷을 피하는 방법. 아이러니다.

그녀가 말하는 스파이샷 피하는 법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위장막을 치지 않는 것이. 얼룩말처럼 차를 칠하는 경우 당연히 프로토타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시선을 끌게 된다. 차명을 가리는 경우도있는데 이런 것도 마찬가지다. 그냥 평범해보이도록 내버려두어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블렌다가 데스밸리에서 찍은 기아자동차 쏘울 스파이샷>

라스베가스=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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