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는 이제 도시로 갔다. 세단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 보며 미끈하게 빠진 SUV들은 이제 오프로드가 아니라 도심을 누비고 있다. SUV들이 줄지어 도시로 떠난 자리, 오프로드를 누비는 정통 SUV를 자처하는 차들은 이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미쓰비시 파제로다. 현대차가 갤로퍼로 한 때 큰 재미를 봤다. 미쓰비시의 기술제공을 받아 현대정공이 갤로퍼를 만들어 팔았다. 현대차의 SUV 기술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그 차 파제로를 타고 시승길에 올랐다.

4,900mm에 이르는 길이, 1.8m를 넘는 너비, 여기에 1.9m의 키를 가졌다. 큰 사이즈다. 정면에서 보면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긴 톨 보이 스타일이어서 안정감 있는 외형은 아니다. 박스 스타일의 헤드램프, 라디에이터 그릴에 자리한 엠블럼이 정면을 구성한다. SUV의 전형이다. 기교를 부리기 보다 투박하지만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보닛과 객실로 이뤄진 투 박스 스타일. 단순한 측면 보디라인, 사이드 스템이 눈에 들어온다. 단정한 모습이다. 지붕과 이어지는 스포일러, 투명한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그리고 리어 게이트에 메달린 스페어 타이어 등이 주요 포인트다.

인테리어에서도 화려한 기교나 억지스러움보다 단순, 소박한 모습이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블랙톤으로 마무리했다. 내비게이션은 없다. 센터페시아에는 외기 온도 오디오 등의 정보표시창, 오디오 시스템 버튼이 있다. 12개의 스피커가 실내에 있다. 풍부한 음량이 귀를 즐겁게 해준다.
변속레버 옆에 자리한 또 하나의 레버가 반갑다. 많은 SUV에서 사라져 버린 레버다. 차의 구동방식을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역할을 하는 부변속기, 트랜스퍼레버다. 트랜스퍼 레버의 존재는 이 차가 풀타임 4WD가 아니라 파트타임 4WD라는 얘기다. 평소엔 뒷바퀴 굴림, 필요하면 사륜구동으로 전환하고 로, 하이, 디퍼렌셜 록 기능 등 상황에 맞춰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차는 물론 오프로드 주행 방법 등을 제대로 알아야 다룰 수 있는 장치다.
2H-4H 간에는 주행중 전환이 가능하다. 디퍼렌셜, 트랜스퍼 락을 하기 위해선 정지해야한다.

3개의 다이아몬드로 구성된 미쓰비시 앰블럼이 핸들 가운데 자리했고 그 너머에 계기판이 있다. 계기판 중앙에는 구동방식이 표시된다. 실내는 충분히 넓다. 여유롭다. 사륜구동차지만 뒷 좌석 바닥 공간을 가로지르는 센터 터널도 없다. 평평한 바닥을 가졌다. 실내 공간활용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뒷시트는 접어 누이거나 여러 형태로 조합할 수 있다. 인테리어 마무리는 야무진 편이다. 인테리어의 지붕 마무리는 훌륭하다. 앞 유리창과 만나는 부분의 밀착감이 높다. 최고 수준이다. 손가락이 파고들 틈새가 없다. 다른 차와 비교해도 우수하다. 인테리어 단차, 촉감, 구성상태 등도 수준 이상이다.

파워트레인은 3.2 디젤엔진 + 5단 변속기 조합이다. 200마력의 힘을 5단변속기가 조절한다. 엔진소리가 제법 난다.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차다. 스타일이 그렇고 리어에 스페어 타이어를 바깥에 거치하는 것도 그렇다. 요즘 그런 차 거의 없다. 짚차로 부르는 SUV를 타고 거친 도로를 달리기를 즐겼던 이들이 파제로를 보면 아련한 과거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파제로는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파제로는 미쓰비시의 화려했던 시절을 대변하는 모델이다. 파리 다카 랠리에서 10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명차다. 지금도 명차인가에 대해선 대답하기 힘들지만 한시대를 풍미하며 최고의 SUV로 인정받았던 차임은 분명하다. 보면 볼수록 파제로는 오프로드용이다. 여러 면에서 그렇다. 리어락, 트랜스퍼레버. 여유 있는 핸들, 심지어 운전석의 손잡이까지. 오프로드를 염두에둔 선택들이다.

시동을 걸어 도로 위에 올라서면 엔진 소리가 제법 들어온다. 시속 140-150km 까지 엔진소리가 바람소리를 이긴다. 그 이상에서 바람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3.2 디젤이 내는 파워풀한 엔진소리는 나쁘지 않다. 정직하게 디젤의 숨을 내뱉는다. 가속페달에 킥다운버튼은 없다. 걸림 없이 끝까지 간다.
트렌스퍼 레버의 디퍼렌셜 락은 앞뒤 혹은 좌우의 회전차이를 잡아주는 기능이다. 구동력이 한 바퀴로만 전해지는 것을 막아 좌우 혹은 앞뒤의 구동력을 일체화시켜 헛도는 바퀴 반대편으로도 구동력을 전달해주는 기계적인 장치다. 이 같은 기능이 있다는 건 이 차가 야전용이라는 말이다.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해 시속 100km에 맞춘뒤 rpm을 체크했다. D와 수동 5다에서 2000rpm이다. 4단 2600, 3단 3800rpm을 마크한다.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하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놓아도 크루즈 컨트롤은 꺼지지 않는다. 정해진 속도에 이르면 다시 작동한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크루즈 컨ㅌ롤이 해제된다. 브레이크를 심하게 밟으면 ABS가 작동하는 게 페달을 통해 전해진다.

높다. 시트 포지션이 높아 차창이 끝단이 가슴 아래 명치 부분까지 내려온다.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개방성이 돋보인다. 시트는 느슨하다. 몸을 꽉 잡는 편이 아니라 여유 있게 받쳐준다. 오프로드를 염두에 둔다면 당연한 세팅이다. 타이트한 시트는 오프로드에선 최악이 된다. 여유 있게 흔들거리며 몸을 받쳐주는 게 좋다.

4H로 달리면 코너에서도 불안이 덜하다. 높은 차체의 약점을 사륜구동이 훌륭하게 커버해준다. 안정감 있게 코너를 진입하고 탈출한다. 높이를 생각하면 불안한데 실제 코너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안정감이 느껴진다. 이 차를 타면서 세단같은 편안함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차가 높아서 요철을 지날 때 흔들림 이 크다.
핸들을 감아보면 3.7 회전한다. 대단히 큰 조향비다. 보통 3회전하는 데 3.7 회전이면 최대한 이다. 오프로드를 감안한 것이다. 여유 있게 조작하기 위해 조향비를 크게 가져가는 것. 큰차를 오프로드에서 타이트하게 조작하면 무척 힘들게 된다. 차의 크기와 주행환경을 감안한 최적의 세팅이다. 오프로드를 달리는 강인한 면모를 여러곳에서 보인다.

액티브 스타빌리티 컨트롤이 있다. 전자식 주행안정장치다. 주행하는 동안 차체의 안정을 위해 전자장비가 개입하는 것.
온로드 주행에서 충분히 훌륭한 모습이다. 가속감이 뛰어나진 않지만 200마력의 힘은 추월가속이 무리없다. 2톤이 넘는 거구가 고속주행을 거침없이 해낸다.
의외로 고속에서 바람소리는 크기에 비해 작다. 제법 심한 바람소리가 들려야 할 것 같은 크기인데 생각보다 바람소리가 작다.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으면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5단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4단이 최고속도를 커버한다.

오프로드에 차를 올렸다. 울퉁불퉁한 길을 리듬을 타면서 움직인다. 자잘한 충격이 전해지지만 즐길만하다. 거칠게 도로를 제압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파제로는 역시 오프로더다.

디퍼렌셜 락을 하면 타이트코너 브레이킹현상을 주의해야한다. 코너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칫 거리는 것. 디퍼렌셜이 ‘락’ 상태에서는 바퀴의 좌우 회전차이가 제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심한 코너를 돌 때 심하면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날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돌아나가야 한다.
요즘 이런 차 흔치 않다. 도심지향의 얌전한 SUV들이 주류를 이룬다. 부변속기 없이 풀타임으로 차가 알아서 조치한다. 운전자가 할 일은 없다. 편하지만 재미없다. 운전자가 직접 조작하고 핸들링과 페달링의 민감함을 즐길 수 있는 차는 드물다. 오프로드를 제대로 달리고 싶다면, 거친 길에 향수를 가진 이라면 파제로가 정답중 하나다.

11.7km/L의 연비는 배기량을 감안하면 무난한 수준이다. 판매가격은 6,490마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키는 무성의하게 만들었다. 키 홀 역시 마찬가지다. 격이 떨어진다. 디테일에 신경 더 써야한다. 시대의 흐름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없어 불편하다. 험로를 달릴 때 더 필요한 게 지도다. 리어게이트는 도로 반대편으로 열린다. 불편할 뿐 아니라 때로 위험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차를 팔려면 한국 상황에 맞는 차로 만들어야 한다.

오종훈

y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