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빨간색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녀석과 눈길을 마주하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첫 눈에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을 가진 차다. 벤츠 SLK 200 블루이피션시.
96년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인승 로드스터다. 그 즈음 시승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하드톱 로드스터를 타고 자유로를 질주 했었다. 버튼을 눌러 지붕을 열고 닫는 게 생소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작은 크기에 야무진 성능이 인상적인 차였다.
15년의 세월이 지났다. 2세대를 거친 SLK는 다시 3세대로 진화를 거듭했다.

2개의 시트를 가진 콤팩트 로드스터다. 보닛이 유난히 긴 롱 노즈 쇼트 데크 스타일로 한 눈에 봐도 스포츠카다. 누가 봐도 예사 세단이 아님을 안다. 게다가 새빨간 컬러다. 누구나 한번쯤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목말라하며 한껏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이라면 눈독을 들일만 하다. 분명한 건 나쁜 사람은 이 차 못 탄다. 이 차 타고 나쁜 짓도 못한다. 모든 이의 시선에 100% 노출되는 이 차, 도대체 숨어 있을 수 없는 디자인이다.

라디에이터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엠블럼이 “나는 벤츠다” 외치고 있다. 바로 그 위, 보닛 끝에도 벤츠 마크가 자리했다. 두 개의 엠블럼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다. 벤츠 위에 벤츠, ‘역전 앞’ 같은 꼴이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 아니 그게 맞겠다.
운전석 시트포지션은 무척 낮다. 시트에 앉은 채로 발을 디딜 수 있다. 오르내릴 때 조금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낮은 시트 포지션은 도로에 착 달라붙는 밀착감을 준다. 훨씬 다이내믹한 주행감을 느끼기에 최적의 포지션이다.

편안한 세단에 길들여진 운전자라면 이 차는 그냥 바라만 보는 게 좋다. 소리가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드톱이어서 소프트톱보다는 조용하다고 하지만 시속 80km에서도 노면 마찰음이 들리고 엔진 소리도 얌전하지 않다. 이런 소리를 노이즈가 아닌 사운드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이 차와 궁합이 맞는다.
차는 가볍다. 공차중량 1,520kg. 경량화의 비결은 알루미늄 보디에 있다. 자석을 대고 차체 여기저기에 붙여보지만 차체는 자석을 밀어낼 뿐이다. 이처럼 가벼운 차체를 끌고가는 1.8 기솔린 엔진의 출력은 184마력이다. 마력당 무게비 8.3kg이다. 숫자만으로 보면 큰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달려보면 다르다. 시속 100km을 7.0초에 끊는다. 엔진 소리는 예사스럽지 않다.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는 사운드다. 시내 주행할 때도 사운드가 크다. 디자인 뿐 아니라 사운드 역시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소리조차 존재감을 과시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킥다운 하면 힘 있는 소리가 실내로 파고든다. 6300부터 레드존이 시작된다. 레드존까지 치고 올라가는 맛이 짜릿하다. 밀고나가는 힘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엔진 배기량과 출력에 비해 실제 느끼는 힘과 속도감은 굉장하다. 물론 고속에서는 지붕을 닫아도 바람소리가 제법 들어온다.

크루즈 컨트롤을 100에 맞추면 1800rpm이다. 얌전하게 순항한다. 노면소음은 약간 들어온다.
7단 자동변속기는 3단부터 7단까지 100km/h를 커버한다. 속도를 끌어올렸다.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차체가 안정된다. 노면이 밀착하는 안정감 압권이다. 달리는 맛이 새롭다. 자동 7단 변속기가 엔진 성능을 120%로 증폭시킨다.
작은 차는 고속주행 안정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흔들림이 크기 때문이다. SLK는 그렇지 않다. 반대다. 고속에서 달릴 대 70-90에서보다 더 안정감을 느낀다. 심리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섀시 강성이 주는 안정감이다.

지붕을 열었다. 20초 만에 지붕이 열리고 쿠페가 컨버터블로 변신했다. 따가운 햇볕이 쏟아진다. 달리기 시작하면 시원한 바람이 열기를 식혀준다. 시트에는 목 부분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겨울에는 더운 바람이 쏟아진다. 에어 스카프 기능이다. 날씨에 관계없이 쾌적한 상태로 오픈 드라이빙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 옵션으로 에어 가이드를 택할 수도 있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잡아주는 장치다.

핸들은 2회전한다. 아주 예민한 타입이다. 조금 돌려도 크게 반응한다. 스포츠카에 제격이다. 날카로운 핸들링은 빠른 가속감과 더불어 스포츠카의 매력중하나다. 어떤 차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날카로움을 가졌다.
정지상태에서 급출발하면 살짝 휠 스핀과 동시에 튀어 나간다. 재미있는 것은 가속이 이어지면서 변속순간에 엔진 사운드가 숨을 쉬듯 아주 잠깐 음색이 변하는 것. 그 음색을 듣고 싶어 가감속을 자주 하게 된다. 노면쇼크는 잘 걸러져 시트로 전해지지 않는다.

바람소리는 다른 잡소리를 덮어버리는 장점이 있다. 펄럭이는 바람소리와 함께 달리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바로 오픈 드라이빙의 매력이다. 달리는 맛 하나는 끝내준다.
코너에서도 강했다. 낮은 차체, 긴 휠베이스, 컨티넨탈이 만든 17인치 타이어는 한쪽으로 쏠리는 횡가속력을 적절히 제어하며 코너를 빠져 나갔다. 옆구리를 잘 지지해주는 시트도 한 몫을 한다.
측면에서 봤을 때 운전석 포지션이 중앙에서 뒷 타이어 쪽으로 치우져 있어 핸들링 반응, 코너에서의 느낌이 색다르다. 후진은 부담이 없다. 차가 짧은데다 지붕을 열면 뒷 시야가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멋있게 잘 달렸다. 빠르게 달렸고 필요할 땐 주저 없이 가속한다. 작은 덩치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골잡이 메시를 닮았다. 쿠페와 카브리올레를 넘나드는 콤팩트 로드스터 SLK는 정말 매력덩어리다.
이 차의 판매가격은 6,750만원. 벤츠의 로드스터를 이 가격에 즐길 수 있다면 솔깃한 제안이 아닐까 싶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연비는 아쉽다. 11.6km/L로 3등급이다. 벤츠의 블루이피션시 기술이 적용됐다고는 하지만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 말고는 이렇다 할 연비 절감 기술이 없다.
수납공간도 마땅치 않다. 작은 소품은 그런대로 넣어둘 수 있지만 부피가 있는 가방은 실내에 넣어두기 힘들다. 2인승 로드스터라 어쩔 수 없지만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긴 보닛은 방향 전환할 때 조심스럽다. 주차할 때도 마찬가지다. 후진보다 전진이 더 신경 쓰인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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