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하고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의 무한반복인 것 같은 삶이지만 세상은 하루하루 변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곧 펼쳐질 전기차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국에선 2013년부터 전기차가 일반에 시판된다. 이미 관공서를 중심으로 전기차가 일부 보급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전기차를 접하게 되면 변화의 물결은 좀 더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한국토요타의 프리우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V)를 제주에서 시승했다. 미국 시판용 모델을 들여와 시험주행에 나서는 자동차다. 아직 국내 시판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팔지 않겠다는 말도 없다. 상황을 보면서 투입할 모델이다.

프리우스 PHV는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에서 한 단계 더 나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에 플러그인 즉, 충전 기능을 더해 전기차에 한 발 더 다가선 차종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이용해 차를 충전해 움직일 수 있는 차다.

1회 충전으로 26.4km까지는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전기차로 움직일 수 있다. 도심에서의 출퇴근, 혹은 가정주부가 사용하는 용도라면 전기로만 운행 가능한 수준. 물론 배터리가 바닥난 이후에는 다시 하이브리드 모드로 엔진과 모터를 이용해 운행할 수 있어 장거리 운행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 배터리와 연료를 완충하면 프리우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1,0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다고 한다.

시동을 건다는 표현은 전기차에선 ‘스위치를 켰다’로 바뀌어야 한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계기판에 ready’ 표시가 뜰 뿐 아무 변화가 없다. 전원이 연결되고 달릴 준비가 됐다는 의미다.

센터페시아는 기울어진 상태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운전석과 조수석을 구분 짓는 경계를 이룬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버튼들을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도 손에 쏙 들어온다. 쥐는 맛이 좋다.
인테리어는 고급스럽지 않다. 직물 시트를 적용한 것만 봐도 고급보다는 ‘실용’에 더 중심을 둔 인테리어다. 큼직한 컵홀더, 이중으로 열리는 글로브박스, 센터페시아 아래의 수납공간 등 자질구레한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룸미러로 보는 후방시야는 어색하다. 룸미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이 있다. 어색하지만 후방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어서 적응하면 나아진다.
옆창의 숄더라인은 많이 내려와 있다. 시원한 차창 너머로 보이는 제주도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뒷좌석 바닥은 평평하다. 여유 있는 공간을 더 넓게 쓸 수있다.

시승 전에 이미 배터리가 완충된 상태여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조용히 미끄러져 나간다. 바람처럼, 유령처럼 스르륵 움직이는 느낌이 신선하다. 내일을 향해 소리 없이 달리는 느낌이다. 실내는 적막강산. 속도가 조금 오르면 타이어 구르는 소리 정도만 들릴 뿐이다.
조용한 실내는 탑승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차의 움직임, 흔들림과는 상관없이 소리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차원이 다른 승차감을 맛볼 수 있다.
파워 모드를 이용하면 엔진 파워로 움직일 수 있다. 주행 모드는 EV, HV, 파워 모두 세 가지다.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을 땐 EV 모드로 움직이면 좋다. 기름은 안쓰고 전기로만 움직이는 것. 하지만 20여km를 달린 뒤에는 EV 모드는 불가능해진다. 대신 하이브리드 모드를 택하면 배터리 충전비율이 높을 때 간간이 전기차 모드로 주행할 수 있다. 파워 모드는 엔진이 메인 파워 역할을 하고 모터가 이를 보조하는 형태다. 힘 있게 움직일 수 있는 대신 돈이 든다. 가솔린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계기판은 센터페시아 상단 프런트 윈드실드 아래 길게 배치됐다. 조수석 탑승객도 계기판의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깐깐한 아내를 태우고 달린다면 “살살 달려”라는 잔소리를 듣기 쉽다. 돈 아끼라는 소리다. 계기판에는 주행모드, 속도, 연료량, 배터리 잔량, 변속기 위치, 현재 사용 중인 동력의 종류, 에너지의 양, 동력의 흐름, 연비 효율 등이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진다. rpm은 없다. 하이브리드로 넘어가면서 엔진회전수를 말해주는 rpm 게이지는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 버렸다.
프리우스 PHV는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와 외견상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물론 인테리어까지 차이가 없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라는 표기가 몇 군데 있고 좌우로 연료주입구와 전기 충전기가 달려있는 것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핸들은 3.8 회전한다. 차 크기에 비하면 여유 있는 스티어링휠이다. 조금 더 타이트해도 좋겠지만 친환경, 효율에 중점을 둔 차의 성격에는 맞는 세팅이다.

변속레버는 조이스틱 닮았다. 프리우스 PHV에는 무단변속기가 장착됐다. 저속에서 고속까지 변속충격 없이 부드럽게 속도를 높여나간다. 프리우스에 사용되는 무단변속기는 전기 신호로 작동하는 모터와 유성기어로 구성된다. 벨트를 이용하는 CVT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 프리우스가 시판중인 미국에서 지난 5년간 단 한 차례도 모터 교환 사례가 없다고 토요타는 전했다.

직렬 4기통 1.8 리터 엔진은 98마력, 전기모터는 80마력이 더해져 시스템 총출력은 134마력이다. 일본 기준으로 메이커 발표 공식 연비는 61km/L. 하지만 이는 주행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매일 20km 내외만 주행하면서 충전을 하면 가솔린은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다. 리터당 61km가 아니라 무한대일 수 있는 것. 하지만 전기차로 달릴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장거리를 달린다면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연비는 안 좋아진다. 장거리를 많이 달린다면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한다. 물론 수준을 낮춘다고해도 다른 일반 차들과 비교하면 훨씬 우수한 연비다.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작동한다. 노즈 다이브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브레이크를 밟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모터소리도 함께 들린다. 제동력을 전기로 만드는 회생제동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소리가 말해준다.
전기차로 달릴 수 있는 최대 속도는 시속 100km.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가속을 할 때엔 전기차 특유의 강한 토크를 느낄 수 있다. 그저 돈만 아끼는 얌전한 자동차가 아니라 전기 모터의 강한 토크가 살아나면서 다이내믹한 모습도 살짝 보인다.

프리우스 PHV는 일생주행에 손색없는 모습을 보였다. 조용히 잘 달렸고 고속주행에선 조금 가벼운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프리우스 PHV의 가장 큰 매력은 집에서 충전할 수 있다는 것. 배터리가 완전 방전된다 해도 가솔린 엔진으로 달릴 수 있으니 급속충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크게 불편할 건 없다. 게다가 90분 완전 충전하는데 비용이 단돈 200원이라는 건 대단한 매력이다. 200원으로 26km를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가변적이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전기차용 전기의 가격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진제로 운영되는 전기가격 체계에서 전기차용 전력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또한 전기차에 부과하는 자동차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수요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필요한 전기를 만들기 위해 발전소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만큼 큰 틀에서 보면 전기차의 환경오염은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화력발전 대신 원자력 발전 시설을 늘리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졌는가. 이처럼 전기차 시대는 우리 사회의 틀을 바꾸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전기차의 시대는 코앞에 바짝 다가오는데 이와 관련한 정책은 아직 갈피는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한 정부 정책이 윤곽을 드러낼 때 비로소 전기차의 실질적인 효용가치가 확정될 것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등장은 사실상 전기차의 등장을 의미한다. 집에서 충전하고 소리 없이 골목길을 움직이는 전기차의 등장은 사람들의 삶의 패턴을 바꿔 놓을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은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에 전기차 충전용 코드가 생겨날 것이고 주유소의 매출이 줄어들 것이고, 전기차가 늘어나는 만큼 전기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또한 달리는 전기차는 달리보면 움직이는 에너지 창고가 된다.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전기차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토요타는 재산 상황에서 프리우스PHV의 전기를 가정용 전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전기차의 등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궁금해진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조금 더. 욕심이 난다. 전기차로 움직일 수 있는 거리를 조금 더 늘리면 좋겠다는 욕심. 안될 것 없다. 더 큰 배터리를 쓰면 된다. 하지만 그만큼 돈이 든다. 26km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택한 토요타의 전략적 결정인 셈이다. 배터리 기술이 관건이다.
디자인. 프리우스의 디자인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해치백 스타일의 원박스 스타일은 너무 무성의하고 거칠어 보인다. 좀 더 섬세하고 감성에 와 닿는 디자인이라면 훨씬 더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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