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그 사람을 말한다. 타고 다니는 차를 보면 그 사람의 경제적 지위, 취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신분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집과 자동차만큼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소재는 없다. 움직일 수 없는 집과 달리 자동차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시로 노출되는 움직이는 재산이다. 그 사람의 집은 볼 수 없지만 쉽게 볼 수 있는 자동차를 통해 그 사람을 분석하는 일은 가능해진다.

이를 잘 말해주는 광고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얼마 전에 내보냈던 그랜저 TV 광고다. 카피는 이렇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그 메시지에 동의하든 안하든, 자동차의 의미를 잘 전달해주는 광고다. 현대차는 아마도 ‘성공의 상징’으로 그랜저를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겐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그랜저를 타고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이를 측은하게 볼지도 모른다. 억대의 자동차를 주저 없이 구매하는 그들에게 그랜저는 그저 그런 차중 하나일 뿐이어서다.

수입차 시장이 난리다.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6월말 현재 한국 수입차 시장은 전년 동기대비 20.5%의 성장률을 보였다. 불과 반년 만에 6만대 넘게 팔아치운 결과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성장하는 수입차 시장의 열매를 따먹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독일 브랜드다.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포르쉐가 그들. 폭스바겐을 제외하면 모두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타가 공인하는 브랜드들이다. 독일 메이커가 1~6월 판매한 자동차는 모두 4만 78대로 전체 시장의 64.4%를 차지하고 있다. 석대 중 두 대가 독일차인 셈이다. 유럽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대중 브랜드인 폭스바겐을 빼면 3만2,324대로 시장점유율은 51.9%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팔린 수입차 두 대중 한 대가 독일산 프리미엄 자동차인 것. 여기에 렉서스, 재규어 랜드로버 정도가 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인정받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시장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대중 브랜드를 압도하고 있다. 대중 브랜드들이 탄탄하게 밑바탕을 이루고 프리미엄 시장이 그 위에 얹어지는 형태가 아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탄탄하게 시장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고 대중 브랜드가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역피라미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호황을 누리는 한국의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프리미엄 세단의 대명사인 벤츠 S 클래스는 지난해 한국에서만 2,321대를 팔았다. 전 세계 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BMW7시리즈도 상황은 비슷하다. 폭스바겐 페이톤은 독일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각 브랜드의 해외 본사에서도 한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디터 체체 다임러그룹회장 조차도 한국 시장을 두고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안목이 높은 시장”이라고 언급했다. 올해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한국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에서 벤츠를 7만대까지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들이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왜 프리미엄 자동차를 좋아할까. 몇 가지 분석이 있다.

한국시장은 수입 대중브랜드에게는 대단히 힘든 시장이다. 현대기아차가 있기 때문이다. 높은 품질과 우수한 성능, 합리적인 가격으로 무장한 현대기아차는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눈을 한껏 높여놓았다. 어지간한 수입차들은 가격만 높을 뿐 현대기아차의 동급 경쟁모델대비 우수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 현대차는 해외의 유수한 경쟁사들로부터도 “싸고 품질 좋은 차”로 호평 받는다. 그런 현대기아차가 버티고 있는 한국에서 중저가 수입차들의 입지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현대기아차가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장구조도 따지고 보면 프리미엄 수입차를 키우는 요소다. 소비자들이 현대기아차 이외의 다른 차를 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 좀 더 고급차를 타고 싶은 대차수요자들이 마땅히 택할 수 있는 국산차가 없다는 것. 한국지엠의 알페온이나 르노삼성차의 SM7 정도가 현대기아차 이외의 고급차인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프리미엄 수입차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의 경우 토요타가 1위 업체로 내수시장 선두이긴 하지만 닛산 혼다 스바루 미쓰비시 스즈키 등 탄탄한 업체들이 시장을 나눠갖고 있어 굳이 수입차를 사지 않아도 택할 수 있는 일본 차들이 많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10%로 정점을 찍은 뒤 7-8% 선에서 머물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내수시장은 다수의 강력한 일본 메이커들이 수입차 시장의 확장을 저지하는 형국이다. 역으로 해석하면 현대기아차의 시장 독과점이 수입차, 특히 프리미엄 수입차 시장을 키우는 원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시장 구조만으로 보면 한국은 강력한 자국 브랜드 피아트가 존재하는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피아트의 시장점유율은 한때 45%였지만 2011년에는 29.4%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에서 수입차 시장의 점유율은 70.3%. 수입차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 개의 자국 브랜드만으로는 시장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탈리아의 피아트가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프리미엄 브랜드의 장점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임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대중 브랜드, 특히 현대기아차에서 찾기 힘든 요소들이 있다.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통해 소비자와 교감하고 그들의 신뢰를 받아온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자산은 한국차들이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 오랜 시간을 두고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는 메이커의 가장 소중한 자신이다.

앞선 기술과 다양한 라인업도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강점이다. 세계 시장에서 잘나간다는 현대기아차에는 아직 컨버터블 모델이 없다. 고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제대로 된 스포츠카도 없다. 오랜 시간을 두고 F1, WRC, 르망 등의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를 무대로 활약하면 만들어온 스포츠카에는 제각각의 사연도 많다. 여기에 견줄만한 스포츠카는 아직 한국에 없다. 모터스포츠와 스포츠카가 중요한 것은 바로 고객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어서다. 모터스포츠를 통해 제대로 검증받은 스포츠카는 수많은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으며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데 단단히 한몫을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스토리’도 중요한 요소다. 브랜드의 탄생, 개발, 도전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런저런 스토리들은 때로 고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신화’로 각색되면서 차원이 다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각광받는 이유는 ‘과시욕’이다. 자동차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것.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찾을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욕심은 조금 더 강하다. 앞서 얘기한 그랜저 광고는 그런 면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과연 그랜저가 프리미엄 세단인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리겠지만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고 싶은 입장에선 “말없이 보여주는 것” 만으로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한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토요타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에서 고급차를 타는 소비자들의 특성을 분석하는 과정에도 “친구와 이웃들에게 고급차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읽어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프리미엄 자동차를 구매한다는 것.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를 탐으로써 자신을 과시하고 성공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비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프리미엄 브랜드가 유난히 잘 팔리는 이유도 ‘과시욕’에서 찾을 수 있다. 비싼 차일수록 그런 효과는 크다. 벤츠 S 클래스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자동차들이 한국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