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파사트가 드디어 출격을 알렸다. 작년 6월 판매를 중단한 파사트가 1년 여 만에 다시 시장에 등장했다. 시장은 긴장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대중 브랜드 폭스바겐이 내놓은 중형세단이 시장에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국산 중, 대형세단은 물론 수입차 동급 모델들까지 견제할 것으로 보여 관련 업계는 파사트 대응전략을 짜느라 부산한다.
지난 4월 부산모터쇼에서 모습을 드러낸 뒤 8월에는 쇼케이스를 통해 일반 고객들과의 만남을 진행하면서 시장에 긴장감을 높여온 모델이다.
파사트는 1973년 처음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 팔리는 모델은 6세대. 지금까지 1,500만대가 팔렸다. 39년간 매일 1,000대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다.

신형 파사트는 유럽형과 미국형 두 종류가 있다. 독일에서 생산되는 유럽형은 사이즈가 작고 비싸다. 미국형은 크고 싸다. 2.0 TDI 풀옵션의 경우 유럽형이 3만4,000유로, 미국형은 3만2,000달러로 약 1,500만 원가량 차이가 난다. 한국에는 미국형 파사트가 수입 판매된다.
유럽형보다 101mm나 긴 길이 4,870mm에 달하는 큰 사이즈에 저렴한 가격이 큰 매력이다. 2.0 TDI의 경우 국내 판매가격은 4,050만원으로 결정됐다.
한국 소비자들은 대체로 사이즈가 큰 차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폭스바겐으로선 한국 시장을 위한 최선의 모델을 택한 셈이다. 1년여의 공백을 지나고 등장한 신형 파사트를 타고 장단점을 따져봤다.

시승모델은 폭스바겐 신형 파사트 2.0 TDI. 서울 워커힐 호텔을 출발해 양평을 왕복하는 구간에서 시승을 진행했다.
단순한 디자인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앞, 옆, 뒤 모습이 단정하다. 의욕이 넘치는 화려함은 때로 차의 품위를 낮추는 역효과를 낸다. 절제가 중요한 이유다. 파사트의 디자인은 잘 절제된 라인이 훨씬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평범, 무난함 속에 라디에이터 그릴과 리어램프의 엣지 있는 라인이 디자인 포인트를 이루고 있다.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했던가.

옆에서 파사트를 보면 앞 뒤 오버행이 길다. 길이에 비해 휠베이스가 짧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긴 리어 오버행은 골프백 4개가 들어가는 대용량 트렁크를 가능하게 했다.
시트는 편안하다. 운전자의 몸을 잘 지지해준다. 시트 중앙부분을 스웨이드 가죽으로 덧대어 고급스럽게 보인다. 공간은 여유롭다. 뒷좌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도 공간이 남는다. 뒷좌석 가운데에는 센터터널이 높게 솟아 있다. 센터 터널이 없으면 더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시동을 걸자 굵고 낮은 디젤엔진의 숨소리가 번진다. 조금 큰 듯 한 핸들은 3.2회전하며 비교적 여유 있게 돌아간다. 핸들의 반발력이 약해 가볍게 돌릴 수 있다. 마음에 든다.
도로 위로 차를 올려 속도를 높여나갔다. 시속 100km가지 편안한 가속을 이어갔다. rpm은 1,800 수준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터보차저를 더한 직렬 4기통 2.0 디젤엔진에 6단 DSG 자동변속기가 짝을 이룬다. 최고출력 140마력이다. 1,750~2,500rpm에서 고르게 32.6kgm의 최대토크가 발휘된다.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터지는 최대토크는 디젤엔진의 장점. 메이커가 발표한 최대속도는 190km/h. 속도를 높일수록 가속감은 더뎌진다. 고속에서 힘 있는 가속은 쉽지 않았다.
고속에서도 바람소리는 크지 않았다. 의외다. 단조로운 스타일이지만 공기저항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있다.
엔진 소리는 얌전하다. 조근조근 속삭이듯 낮은 숨소리를 이어가는 정도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 사운드는 튀지 않는다. 그나마 속도를 높이면 엔진 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혀 사라져버린다.

고성능 세단보다는 패밀리세단에 어울리는 무난함을 택했다. 힘이 부족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쭉쭉 뻗는 가속감은 아니다. 대신 중형 세단에 어울리는 편안한 승차감은 돋보였다. 운전대를 넘기고 여유 있는 공간과 편안한 승차감에 취해 앉아 있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와인딩 로드를 거칠게 달렸다. 이어지는 코너를 타고 춤을 추듯 부드럽게 달렸다. 거칠게 다루면 차체가 길어 뒤가 조금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스포츠 세단이 아닌 이 차를 거칠게 다룰 일은 많지 않을 터.
노면 쇼크는 부드럽게 잘 타고 넘었다. 간간이 만나는 과속방지턱을 감속하지 않고 치고 나가도 충격은 크지 않았다.

무난함. 중형세단에겐 무시해선 안 되는 덕목이다. 많은 소비자들을 두루 만족시켜야 하는 중형세단이라면 강한 색깔을 드러내는 건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폭넓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평균 이상의 수준에서 만족시켜야 하는 게 중형세단의 운명이다. 그런 면에서 신형 파사트는 운명에 충실하고 있다.
신형 파사트는 아메리칸 세단의 맛이다. 꽉 짜이고 단단한, 고성능 유러피언 세단이라기보다 여유 있는 공간을 가진, 자동차 본연의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메리칸 세단에 가깝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미국산 파사트에게도 ‘오리지널 저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그 의미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 오리지널 저먼은 무슨 뜻인가. 독일 브랜드 폭스바겐이 만드는 차라는 의미라면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오리지널 저먼과는 거리가 있다. ‘독일 부품으로 독일 장인들이 독일에서 만드는 차’라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폭스바겐 뱃지를 달았다고 미국산 파사트를 오리지널 저먼이라 부른다면 중국산 파사트라고 오리지널 저먼이 아닐 이유가 없다.
미국산 파사트는 독일산 파사트와 많이 다르다. FTA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사용하는 부품들 대부분을 북미산으로 충당해야 한다. 차를 만드는 근로자들 역시 미국인들이다. 오리지널 저먼의 확대적용은 그 의미를, 그리고 그 말이 갖는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아메리칸 파사트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과 가격이다. 큰 차체, 넓은 공간, 그리고 4,050만원이라는 가격. 기존 모델보다 무려 480만원 싸졌다. 2.5 엔진을 얹은 가솔린 모델의 가격은 3,790만원이다. 그랜저급의 국산 대형세단은 물론 알티마, 어코드, 캠리 등 일본산 중형세단과의 경쟁도 예고하고 있다.

가격의 저렴해진 이유는 있다. 시트 마사지, 뒷좌석 공조시스템, 엔진 스탑 스타트 기능, 추돌방지 자동제어, 주차 센서, 리어뷰 카메라,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등이 아메리칸 파사트에는 없다. 유럽형에는 적용된 편의장치들이지만 미국형에선 생략된 장치들이다. 구형 파사트에는 제논 램프가 적용됐지만 신형 파사트는 할로겐 램프를 쓰고 있다.
엔진도 그렇다. 파사트에 적용되는 2.0 TDI 엔진은 CC에 적용되는 170마력짜리 2.0 TDI 엔진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더 좋은 2.0 엔진을 마다하고 왜 굳이 한급 아래 엔진을 적용했을까. 최선을 다해 만든 최고의 모델이라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갖추기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해 만든 제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플랜 B인 셈이다.

왜 그랬을까. 미국 시장을 봐야 한다. 유럽 최대 브랜드인 폭스바겐이지만 미국에선 아직 메이저 브랜드가 아니다. 고성능을 추구하기보다는 차의 기본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결과가 편의사양들을 많이 생략하고 가격을 낮춘 아메리칸 파사트다. 유럽형과 미국형 사이에서 폭스바겐코리아가 선택한 것은 미국형이다. 조금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파고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선택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뒷창은 절반만 열린다. 반만 열리는 차창이 답답하다. 변속레버 주위에 여러 기능들을 조작하기 위한 버튼들이 있어야할 자리는 비어있다. 버튼 위치만 있을 뿐 아무 버튼이 없다. 많은 기능들이 생략됐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간은 넓은데 뒷좌석에는 송풍구가 없다. 넓은 뒷좌석 냉방은 대시보드의 송풍구에 의지해야 한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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