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모두가 깜짝 놀랄 신기록을 깨볼 참이었다. 기준은 단 하나 연비다. 토요타가 제공하는 하이브리드차를 타고 최고의 승자를 가리는 토요타 하이브리드 연비 배틀. 기자에겐 캠리 하이브리드가 배정됐다. 차를 받자마자 우선 한 일은 스페어 타이어 먼저 빼 놓았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심야보다 새벽을 택했다. 한낮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밤보다, 밤사이 그나마 기온이 내려간 새벽이 좋은 연비를 만들기 좋고 운전하기에도 훨씬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통량이 적어 운전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아침 5시 반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엔진은 재워둔 채 EV 모드로 소리 없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심야 골목길에서 조용히 움직이기엔 역시 EV 모드가 제격이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던 밤이지만 새벽은 그나마 좀 나았다. 에어컨은 끄고 대신 차창을 열고 달리기로 했다. 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제법 시원했다. 라디오도 켜고 모든 전기장치들을 정상적으로 작동시켰다.

토요일 새벽 강북강변도로는 한산했다. 교통흐름에 폐를 끼치지 않고도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기에 딱 좋은 환경. 자유로를 거쳐 판문점을 왕복하는 코스를 택했다. 도로의 고저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평소 시승을 자주 다녀 코스를 훤하게 꿰뚫고 있는 곳이다.
평균 연비는 0km에서 시작해 반포대교 북단에서 강북강변도로에 올라설 때 이미 9km/L를 넘기고 있었다. 강북강변도로에 올라서면서 작전은 시작됐다. 작전은 오로지 하나 시속 60km 정속주행이다.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했다. 물론 때에 따라 70km를 넘기기도 했지만 대체로 60km/h에 맞췄다. 가속페달에서 완전히 발을 떼고 달렸다.
평균 연비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20km/L를 넘기더니 파주 출판도시를 지날 때쯤엔 28km/L를 넘겼다.

파워 모니터를 통해 동력 배분상황과 매 분당 연비를 살펴본 결과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즉 3-4분 EV 주행, 2분 엔진가동의 패턴이었다. EV 모드로 달릴 때엔 연비가 30km/L를 넘겼고 엔진이 돌아갈 때에는 7-8km/l에서 15km/l까지 변화를 보였다. 이를 해석해보면 하이브리드의 배터리에 전력이 차면 EV모드로 달리고 전력을 다 쓰고 배터리 잔량이 없으면 엔진을 가동해 차를 움직이는 한편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결국 배터리 전기에 의지해 차가 움직이는 셈이다. 엔진은 배터리 충전에 주로 이용되는 셈. 따지고 보면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가 이런 방식이다. 차는 전기로 움직이고 엔진은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것. 캠리 하이브리드도 따지고 보면 이와 다르지 않았다. 결국 캠리 하이브리드도 전기차나 마찬가지인 셈. 너무 나갔나?

어쨌든 왕복 140km 가량을 달려 집으로 복귀한 시간은 오전 9시경이었다. 다행히 휴가철에 낀 주말이라 출근 차량들이 많지 않았다. 기록은 32.5km/L. 평균 주행속도 43km였다. 캠리 기준으로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여기서 멈출걸.

욕심이 났다. 14주차까지 배틀이 진행되는 동안 캠리 하이브리드의 최고기록은 33.5km/L. 딱 1km/L의 차이다. 이왕이면 최고기록을 내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시간은 충분했다.

욕심은 기어이 다시 차를 끌고 길을 나서게 만들었다. 그날 밤 11시였다. 코스는 전과 동. 그때 참아야 했다. 2차 도전은 연비 1km/L를 개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는 길이었다.

2차 시도에선 내리막길에서 배터리 충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크루즈컨트롤 대신 직접 발을 이용해 가속페달을 조절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연비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 32.5km/L였던 최종연비가 강북강변도로에 올라설 때까지 29km/L 아래로 쳐지고 말았다. 악재는 겹쳤다. 새벽에 뻥 뚫렸던 강북강변도로가 정체였던 것. 토요일 밤 시간, 강북강변도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시속 60km 조차 내기 힘들었다. 연비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욕심이 화를 부르고 있었다.

다행히 마포대교쯤에 이르러 교통은 원활해졌고 곧 도로는 한산했다. 60~70km/h 사이로 도로를 탔다. 속도계보다는 rpm 게이지에 해당하는 파워게이지를 보면서 EV 모드를 우선해서 달렸다. 바늘이 올라가지 않게, 가급적 EV 모드 불이 켜지게 신경을 집중했다.

모니터를 분석해보니 3분 EV주행후 2분 엔진 가동이던 패턴이 4분 혹은 최대 5분까지 EV로 주행하고 2~3분 엔진이 가동하는 패턴으로 바뀌고 있었다. 연비도 다시 좋아지고 있었다. 26~27km/L까지 빠졌던 연비는 다시 29km/L를 지나 30km/L 고비를 넘어서고 있었다. 판문점에서는 다시 31km/L를 찍을 수 있었다. 이때 이미 최고기록은 물 건너갔음을 절감했다. 한계 속도까지 다다른 상태에서 연비를 추가로 더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평균연비를 개선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된다.

31km/L를 다시 찍은 연비는 이후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29와 31km/L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지루한 행보를 이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계속 달릴수록 연비를 개선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2차 도전에는 나서지 말 것을.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었다.

같은 코스를 돌아 새벽 1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최종 연비는 31.5km/L. 1km/L를 따라잡겠다고 욕심내서 길을 나섰는데 오히려 1km/L를 까먹고 말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전체 순위도 3위로 밀렸다. 늘 후회는 늦은 법이다. 그나마 큰 무리 없이 주행하면서 공인연비 23.6km/L보다 훨씬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욕심을 버린 경쟁자들 덕분에 그나마 주 장원의 영광을 안을 수는 있었다.

11월엔 연말 결선이다. 제대로 한 번 붙어봐야겠다는 투지가 다시 온몸을 휘감는다. 욕심내다가 후회한 지 며칠 만에 다시 전의를 불태우며 욕심을 내고 있다. 악플러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악플을 미리 달아 놓는다.

아 못 말리는 이 인간아.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