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의 모르핀 처방은 성공할 것인가.
모르핀으로 중병에 걸린 환자의 통증을 없애주지만 근본적인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공장 생산량을 늘려 정상가동을 할 수는 있지만 기존 제품의 경쟁력 강화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곤 회장의 처방은 중환자에게 투여한 모르핀과 같다. 르노삼성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처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시피 곤 회장의 처방은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에 1,700억 원을 투자해 닛산 로그를 연 8만대씩 생산하겠다는 것. 이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글로벌 전략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미국 공장에 투자해서 생산할 물량을 한국으로 옮긴 것이다. 이에 따라 르노삼성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매년 8만대씩 닛산 로그를 생산하게 된다.
곤 회장의 처방으로 르노삼성 입장에선 큰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공장을 정상가동할 수 있게 돼서다. 생산량이 줄어 공장가동을 가끔씩 멈춰야 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안정적인 생산 물량을 보장 받는 것은 큰 도움이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내수시장 꼴찌로 전락할 만큼 심각한 내수부진이야말로 르노삼성차가 가장 큰 문제다. 여기에는 제품 라인업의 부족, 경재모델 대비 떨어지는 제품 경쟁력,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디자인, 날로 늘어가는 소비자 불만 등이 판매 부진을 불러오는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 하나하나에 대한 근본적이고 정밀한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문제 해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르노삼성차에 미래는 없다. 곤 회장의 처방은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가 말하는 1,700억 원은 오로지 로그 생산을 위해서 투자되는 돈이다. 내수 판매 모델을 위해 투자될 돈이 아니다.
모르핀을 맞은 후에는 근본 처방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모르핀 효과에 취해 당장의 위험에서 벗어났다며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르노삼성차가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번 조치로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놓은 만큼 르노삼성차가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후를 마주한 비상한 각오와 결연한 실행이 필요한 때다.
르노삼성차는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 내수 시장에 단단한 기반을 두고 있지 않으면 늘 바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추가된 닛산 로그의 생산물량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룹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다시 미국이나 다른 어느 나라의 공장으로 전환돼버릴 수도 있는 일시적인 물량이다. 내수시장 기반 없는 생산기지는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다.
어쩌면 르노삼성차는 이미 모르핀에 중독돼 있는지도 모른다. ‘삼성’이라는 브랜드 효과에 취해 내수시장 대응을 너무 안이하고 게으르게 한 결과가 오늘이다.
1,700억 원의 선물을 던지고 곤은 떠나갔다. 카를로스 곤이 SM5의 품질 개선과 마케팅을 고민할 수는 없는 일, 문제해결은 르노삼성차를 이끄는 프랑수와 프로보 사장의 몫이다. 당장 르노삼성차 생존의 조건인 ‘내수시장 회복’을 달성해야하는 문제다. 프랑수와 프로보 사장이 르노삼성차의 위기를 제대로 해결해낼 것인가는 지금부터 지켜봐야 한다. 지난해 9월 새로 부임한 40대의 그가 한국이라는 로컬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제대로 된 답안지를 만들어갈지 지켜봐야 한다.
다행히 그에게는 좋은 힌트가 있다. 이건희다. 삼성자동차를 만든 이건희 회장은 오로지 ‘최고의 품질’만을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은 적어도 삼성자동차와 관련해서는 경영자 이전에, 자동차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품질에 천착한 ‘카 가이’였다. ‘품질의 SM5’ 신화는 그래서 가능했다. 르노삼성차는 지금까지 그 이미지를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노삼성차의 명운을 쥔 프랑수와 프로보 사장이 자동차의 품질을 따지기보다 장부상의 숫자만을 파고드는 ‘빈 카운터’가 아니길 바란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