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86이 한국에 왔다. 일본의 대표 브랜드인 토요타가 새로 선보이는 스포츠카다. 스포츠카의 맥이 끊겼던 토요타가 야심적으로 내놓은 차다. 한국토요타가 지난 15일, 전남 영암 F1 서킷으로 기자들을 초청해 토요타 86 시승회를 열었다.

86은 일본의 유명한 만화 ‘이니셜 D’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선 유명한 만화다. 만화가 토요타 AE86을 주인공의 차로 등장시켰고 토요타가 다시 이 차를 새로운 스포츠카로 재탄생시켰다. 문화와 자동차 산업이 서로 어우러지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86은 시작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셈이다.

일본차인 만큼 ‘팔육’보다는 ‘하치로쿠’라는 발음이 더 현실감 있게 들린다. 이니셜 D가 유명한 일본과 한국에선 86으로 이름 지었지만 미국에선 토요타가 아닌 ‘사이언’ 브랜드로 ‘FR-S’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유럽에선 GT86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미국에선 86이라는 숫자에 ‘거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절 스트리트 86이 술집이 밀집한 지역이어서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어 이름을 변경했다는 설명이다. 유럽에선 토요타 셀리카가 워낙 유명해 셀리카 GT의 이미지를 차용해 86GT로 명명했다고 한다.

86의 개발자 테츠야 타다의 “부자들만을 위한 차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86의 뿌리가 되는 AE 86의 주인공은 두부를 배달하는 두부장수였다. 그런 면에서 토요타 86은 철학적 의미가 담긴 차다. 스포츠카는 사치인가. 비싸야 하는가. 화려한 전자장비, 높은 배기량, 고출력으로 무장해야만 하는가. 토요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비싸지 않아도, 화려한 전자장비를 달지 않아도, 배기량과 출력이 높지 않아도 훌륭한 스포츠카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토요타의 답이다. 토요타 86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스포츠카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토요타의 삐닥한 시선’이 만든 스포츠카가 바로 86이다. 86을 표현하는 이미지 로고는 드리프트를 할 때 사선으로, 즉 삐딱하게 달리는 타이어를 형상화 한 것이다. 기자에게는 토요타의 삐딱한 시선으로 보인다.

토요타는 이 차를 개발할 때 다른 차들과는 다른 방식을 적용했다. 모든 차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세 차례의 임원평가를 생략한 것이 한 예다. 대신 스포츠카를 타는 토요타 직원들의 평가를 거쳤다.

2도어 쿠페. 스포츠 카 다운 디자인이다. 아치를 이루는 지붕은 쿠페 스타일로 마감을 하면서 차의 앞뒤를 이어주고 있다. 차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파고다 루프’가 보인다. 전면 돌출된 부분을 낮춰 공기저항을 줄이는 계단형 지붕이다. 보닛에서 트렁크 리드까지 서핑보드 같은 라인이 보인다.

굴곡진 보닛은 단정하면서도 육감적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아니라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볼륨 있는 몸매다. 셔츠 밑으로 보이는 단정한 근육같은 느낌이다.

HID 헤드램프를 적용했고 범퍼 아래에 자리한 대형 그릴에는 ‘T 매시’ 타입을 적용했다. 박서 엔진을 장착한 만큼 당연히 후드는 낮다. 수평 대향 엔진의 피스톤을 형상화한 86 아이콘이 측면에 자리했다. 86의 로고 이미지는 드리프트를 할 때 사선으로 달리는 타이어를 형상화 한 것. 다이내믹한 로고다.

사이드 뷰는 토요타의 스포츠카 2000GT의 실루엣과 흡사하다. 토요타 스포츠카의 DNA가 이어지는 셈이다. 뒷모습은 사다리꼴 형상으로 만들어 안정감과 넓은 느낌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두 개의 배기구는 스포츠카의 강인함을 암시하고 있다. 배기구의 내경은 86mm.

인테리어는 적극적으로 운전자를 배려하고 있다. 스포츠 버킷 시트는 몸을 완전히 지지해준다. 과격한 코너에서 운전자의 자세는 매우 중요한데 버킷시트가 이를 해결해주고 있다. 엉덩이는 물론 옆구리와 어깨까지 감싸는 시트다.

시트포지션은 매우 낮은 편이다. “시트에 앉은 채로 담배를 비벼 끌 수 있도록 시트 포지션을 정했다”는 게 개발진의 얘기다.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365mm로 토요타의 핸들중 가장 작다. 또한 수직에 가깝게 핸들을 배치해 스포츠 드라이빙에 최적화했다.

시동버튼은 센터페시아 하단에 배치했다. 토요타 모델에서 시동 버튼이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룸미러는 거울을 감싸는 테두리를 없앴다. 전방 시야를 조금 더 넓게 확보하는데 유리한 구조다.

시동을 걸고 서킷 위로 올라섰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소리다. 소리가 살아있다. 토요타에서 이런 엔진 사운드를 만들었다는 게 경이롭다. 엔진 소리를 가능한 억제하는 토요타가 이 차에서는 ‘엔진 사운드 크리에이터’를 적용할 정도로 엔진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놀랍다.

가속페달을 누르면 튀어나가는 차체의 느낌과 엔진 사운드가 어우러지면서 ‘달린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살아난다. 차의 움직임과 소리에 몸이 즐겁게 반응한다. 차와 몸이 서서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속도를 조금 더 낸 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차가 흔들리면서 미끄러지는 순간 차체 자세제어장치, VSC가 개입했다. 출력이 제한되며 속도를 줄였고 미끄러짐이 멈추고 차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코너를 빠져나간다. 드리프트를 원한다면 VSC를 꺼야 한다.

배기량 2.0 자연흡기 엔진의 출력은 200마력. 스포츠카의 스펙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박서 엔진을 미드십에 적용해 서킷을 신나게 질주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스바루와 함께 개발한 박서엔진은 이 차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 스바루는 BRZ에 이 엔진을 사용한다. 가솔린 4기통 수평대향 박서 엔진은 놀랍게도 보어 스트로크가 86mm인 스퀘어 엔진이다. 86의 곳곳에 86이 숨어있는 셈이다. 마치 두꺼운 책같은 박서 엔진은 엔진룸 아래, 앞차축 안쪽에 프런트 미드십으로 배치했다. 차의 무게 중심을 확실하게 낮출 수 있는 구조다. 미드십 구조에 낮아진 무게 중심은 차의 주행안정감을 높여준다. 토요타는 여기에 D-4S 기술을 추가했다. 가솔린 직분사 시스템이다. 정확한 양의 연료를 실린더에 직접 분사해 연료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개선시켜준다.

작은 핸들은 공차중량 1,280kg(AT기준, MT는 1,240kg)의 차체를 야무지게 컨트롤하며 코너를 돌아나갔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향으로 딱 그만큼 반응한다. 슬라럼 코스를 빠져나갈 때에는 마치 차의 중심에 핀을 꽂아 놓은 것처럼 움직였다.

인상적인 것은 다운 시프트였다. 일반적으로 자동변속기에서 수동변속을 이용해 다운 시프트를 시도하면 제때 정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86은 확실한 다운 시트프를 구사할 수 있다. 물론 속도가 맞을 때의 얘기다. 속도가 맞지 않으면 다운시프트는 일어나지 않고 경고음이 대신 울린다.

브레이크는 아주 약간의 시차를 두고 반응한다. 차의 운동 특성을 감안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브레이킹 특성이다. 적응하고 나면 아무 문제없이 원하는 브레이킹 포인트를 잡을 수 있다.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아 속도를 높이며 가속감을 즐기고 레드존까지 rpm을 높이며 높은 하이톤의 엔진 사운드를 즐기는 맛은 바로 스포츠카를 타는 즐거움이다. 레드존은 7,500rpm부터 설정됐다.

영암 서킷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거리며 춤추듯 달리는 토요타 86은 일본 스포츠카의 부활을 알리고 있었다.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카로 손색이 없다. ‘대중적’이라는 수식어를 빼도 좋겠다. 그만큼 토요타 86은 차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즐겁고 신났다.

수동변속기 모델은 3,890만원, 자동변속기는 4,690만원이다. 이 가격에 제대로 된 수입 스포츠카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분명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토요타의 자료를 보면 86에 타르가 톱, 컨버터블 모델 등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카라면 그런 색다른 모델들이 라인업에 포진해 있는 게 당연한 일. 이제 86의 진화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남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4인승이지만 뒷좌석은 좁다. 2+2 시트로 봐야 한다. 뒷좌석은 어린이가 앉거나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잠깐 이용해야 하는 정도다. 결국 2인승으로 즐겨야 제격인 차다. 새로운 기준에 따른 연비는 11.6km/L로 3등급이다. km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50g. 스포츠카에 연비를 탓하는 건 무리지만 아무래도 연비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라 한번쯤 짚어볼 수밖에 없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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