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가 날을 세웠다. 한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심기일전,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섰다. 이번엔 렉서스 RX다. 마이너 체인지. 디자인 변경을 통해 더 샤프하고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1998년 렉서스 RX는 SUV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모델이다. 시간이 흐르며 2009년 3세대로 진화했고 이번 출시한 모델은 부분변경 모델에 해당한다.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로 제품 라인업을 구성했고 한국에는 우선 RX 350 수프림과 RX 350 이그제큐티브 모델이 출시됐다. 렉서스가 이 차를 처음 출시한 날, 인천 영종도에서 RX 350 이그제큐티브 모델을 타고 시승에 나섰다.
디자인 변경의 핵심은 스핀들 그릴. 렉서스 GS에서 이미 적용했던 그릴 디자인을 다시 RX로 옮겼다. 종이를 접어놓은 듯, 예리한 각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핀들그릴은 렉서스의 새로운 패밀리 룩으로 손색없는 디자인이다. 헤드램프 아래로는 LED 램프를 보석처럼 박아 넣었다. LED 램프는 주간 주행등이다. 화살촉 모양의 날 선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GS에서 가져온 게 또 하나 있다. 에어로 핀이다. 리어램프 측면에 자리해 공기의 흐름을 잡아주는 소임을 한다. 고속주행에서 차체의 흔들림을 억제하고 핸들링을 개선해 준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핀 하나지만 엄청난 공기의 저항을 마주하는 고속주행에서는 큰 역할을 한다. 작지만 큰 부분인 셈이다. 렉서스의 기능적인 인테리어는 RX 350에서도 돋보인다. 센터페시아 상단의 디스플레이 영역과 하단의 오퍼레이션 영역을 구분한 듀얼 레이아웃이 대표적이다. 마우스처럼 생긴 리모트 터치 컨트롤러도 있다. 2세대로 진화한 이 장치는 손가락으로 밀고 당기고 누르고 터치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8인치 내비게이션은 밝은 햇볕 아래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햇볕을 가릴 수 있도록 깊숙하게 배치한 덕분이다. 내비게이션은 렉서스가 개발한 한국형 내비를 썼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이그제큐티브 모델에 적용된다. 계기판을 볼 필요 없이 앞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차창에 정보가 표시된다. 운전자의 시선 처리를 단순화하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유용한 장치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렉서스는 시트 가죽에 세심한 배려를 했다. 이그제큐티브 모델에 적용된 세미 애널린 가죽 시트가 그렇다. 화학처리를 하지 않은 가죽을 사용해 촉감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조심스럽게 태닝을 했다한다. 뒷좌석 공간은 여유 있다. 바닥까지 평평해 주어진 공간의 활용성이 높다. 뒷좌석 가운데 앉아도 불편하지 않다.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휠은 2.8 회전에 머문다. SUV라면 조금 더 여유 있는 핸들링을 위해 넉넉한 조향비를 갖추게 마련이지만 RX350은 그보다는 조금 예민한 조향을 택했다.
시동을 걸고 도로 위로 올라가 영종도 일대를 달렸다. RX의 몸놀림은 가벼웠다. V6 3.5L 엔진은 277마력, 35.3kgm의 여유있는 파워를 토해낸다. 6단 자동변속기와 궁합을 맞추며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파워트레인의 변화는 없다. 이전 RX 350과 동일한 엔진과 변속기다.
렉서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전 RX보다 차체의 강성이 강해졌다. 고속에서, 코너에서, 노면 충격을 받아들일 때 차체 강성이 높으면 차체가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든다. 탑승객의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로 줄어든다.
렉서스 RX 350은 여전히 부드럽다. 도로 위를 달리는 느낌은 물론, 노면 충격을 받아들일 때도 여유 있고 부드럽다. 타이트하게 몰아치는 힘, 단단한 하체의 느낌이 아니다. 부드럽고 조용하게 속도를 높이고, 충격 흡수는 여유 있고 소프트 하다. 차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말랑함이 아니다. 차체의 스팟 용접 부분을 확대해 뒷바퀴로 전해오는 쇼크를 잘 흡수시킨다는 설명이다. 서스펜션 설정과는 별도로 안정감 있는 주행과 편안한 승차감을 동시에 배려했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출발이 부드럽다. 액티브 토크 컨트롤에 사륜구동시스템이 더해져 출발과 가속, 고속주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주행과정에 마디가 없다.급출발을 시도했다. 살짝 휠스핀이 발생하고 바로 트랙션 컨트롤이 개입했다. 역동적인 파워는 잘 컨트롤되고 있었다.
사륜구동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주행상태에선 앞바퀴 굴림으로 달린다. 도로가 미끄럽거나 커브가 나타나면 비로소 사륜구동이 작동한다. 필요할 때 사륜구동이 작동하는 만큼 운전자는 편안하게 드라이빙을 즐기면 된다. 4WD 록 버튼은 험로에서 쓰임새가 많다. 산길 등에서 저속 사륜구동으로 움직일 때 강한 힘을 내며 움직일 뿐 아니라 장애물을 건너거나 탈출할 때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일반도로에선 거의 쓸 일이 없다. 이 버튼을 눌러 록을 작동시켜도 속도가 빨라지면 자동으로 해제된다. SUV치고는 경쾌한 가속이다. 속도를 높이는데 부담이 없다. 가속페달을 밟아 재촉하는 대로 차체는 따라왔다. 엔진소리는 잘 다듬어졌다. 방음, 차음장치들을 거쳐 들리는 엔진소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고속주행에 접어들면 엔진소리를 잦아들고 바람소리가 훨씬 더 커진다.
6단 자동변속기는 각단에서의 허용 폭이 크다. 수동 모드를 택하고 2단에서 지긋이 가속을 이어가면 시속 100km까지도 변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3단 시속 100km에서 시프트다운을 시도하면 변속이 안된다. 80km/h까지 속도를 떨어트려야 2단으로 기어를 내릴 수 있다. 코너에서는 조금 과하게 핸들링을 해도 불안한 느낌이 덜하다. 부드럽게 느껴지는 서스펜션이지만 이처럼 강한 흔들림이 있을 때에는 단단하게 차체를 받쳐준다. 여기에 사륜구동시스템, 높은 차체강성 등이 호응해 차의 안정감을 총체적으로 보완해준다.
모델 변경을 하면서 가격은 오히려 싸졌다. 이그제큐디브 모델은 7,300만원으로 590만원이 내렸다. 수프림 모델은 6,550만원이다. 종전대비 무려 940만원이 인하된 가격. 어떻게든 고객들에게 다가서려는 렉서스의 의지가 읽혀지는 가격이다.혹은 렉서스의 위기감이 만들어낸 가격일지 모른다. 리콜, 대지진 등으로 큰 타격을 받은 일본차의 맏형 토요타 렉서스가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지가 이 같은 가격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위기는 기회다. 메이커에게도 그렇고 소비자에게도 그렇다.
국산차의 대표선수 현대기아차는 거듭해서 가격을 올리며 수입차에 다가서고, 수입차는 이처럼 가격을 하향조정하면서 고객들에 다가서고 있다. 국산차와 수입차가 직접 가격대결하는 양상에 까지 이르고 있다. 누가 웃을까. 궁금해진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렉서스가 밝히는 RX350의 연비는 9.1km/L. 하지만 새로운 연비기준에 의한 표기가 아니다. 이전 표기방식대로 연비를 밝혔다. 이전 그대로의 연비다. 아쉬운 부분이다. 연비 자체보다도 이를 대하는 렉서스의 태도가 그렇다. 좀 더 솔직하게 새로운 기준에 따른 연비를 밝혔어야 했다. 5월이 다 가는 시점에 차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기준을 고집하는 건 렉서스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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