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가 자동차 산업의 최고 가치로 떠오르면서 자동차들이 재미가 없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연비의 압박에 큰 제한을 받고 있어서다. 살살 달리면서 연료를 최소한으로 태우며 리터당 주행거리를 늘려야 하는 게 지금 자동차들의 숙명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차들이 다 그렇다.

스포츠카를 표방하는 메이커들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커진다. 바로 포르쉐의 고민이었다. 달릴 것인가 말 것인가.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유럽에선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자동차 세금을 메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단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비와 직결된다. 연비가 좋으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든다.

스포츠카임을 포기하는 순간 포르쉐가 포르쉐일 수 없음을 잘 아는 포르쉐의 해답은 명쾌하다. 스포츠카의 영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그렇다고 연비 무시할 수는 없는 일. 포르쉐에 하이브리드 모델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이미 카이엔에 하이브리드 버전이 있고, 911 GT3로 하이브리드 레이싱카를 만들어 르망 24시 경주에도 출전하고 있다. 스포츠카에 하이브리드를 접목한 것이다.

이제 4도어 GT카 파나메라에도 하이브리드 버전이 출시됐다. 겉모습은 파나메라 그대로다. 5m에 육박하는 덩치지만 늘씬하게 잘 빠졌다. 키가 크고 몸매 죽이는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닮았다. 리어 게이트에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라는 표기와 양쪽 도어 앞에 ‘하이브리드’라는 레터링이 차이라면 차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운전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버튼을 마주한다. 처음 마주할 땐 당황스럽다. 이 많은 버튼을 어떻게 조절하고 작동할지 겁부터 난다. 하지만 원샷원킬 단 한 번에 원하는 기능을 작동시킨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가 기본 장착돼 서스펜션을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으로 세팅할 수 있다. 차의 단단함이 달라진다.

스포츠카로 달릴 땐 스포츠, 고속주행으로 성능의 끝을 확인하고 싶을 땐 스포츠 플러스, 편안한 세단이고 싶을 땐 컴포트를 택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기존 파나메라와 다를 게 없다. 똑 같다. 이 차는 하이브리드 카다. 엔진과 모터,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 여기에 하나 더. E 파워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활성화 시키면 전기모드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확장된다. 어지간하면 전기모드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가속반응이 조금 느려지고 엔진이 재 시동되는 시점도 늦춰진다. 전기의 힘 만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대략 2km. 주행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시속 85km까지 전기모드로 달릴 수 있다. 포르쉐가 숨소리도 내지않고 유령처럼 움직인다. 신기했다. 포르쉐 같지 않은 생소한 면모다.

시도 때도 없이 엔진이 멈춘다는 것도 재미있다. 사람의 심장이 멈추면 큰일이지만 자동차는 일부러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게 기술이다. 심장마비가 미덕인 셈. 달리는 탄력을 이용해 엔진을 멈춘 채로 차가 움직이는 일명 세일링 기능이다. 탄력을 받아 달리는 중에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이 멈춘다. 시속 100km로 움직이다가도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이 멈춘다. 차는 미끄러지며 여전히 잘 달린다. 시속 165km까지 세일링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세일링 할 때 차는 조용해진다. 약간의 윈드 노이즈, 타이어 소리 정도가 들려올 뿐이다. 극단적 조용함은 아니지만 스포츠카로서는 무척 얌전하고 편안한 실내다.

다시 가속페달을 작동시키면 엔진이 다시 작동하며 힘차게 속도를 높인다. 움직이는 중에 엔진이 멈추는 기능을 갖춘 브랜드는 현재까지 포르쉐가 유일하다.

하이브리드, 전기모드 등의 기능을 갖췄다고 연약한 모습을 상상한다면 오판이다. 포르쉐 배지를 달고 나오는 한 차종을 막론하고 스포츠카다.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 역시 마찬가지. 스포츠카나 하이브리드냐 방점이 어디에 있으냐 물을 때 당연히 스포츠카다. 포르쉐가 스포츠카임을 포기하는 순간 포르쉐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르쉐를 타고 얌전하게만 달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럴 거면 포르쉐를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어떤 차나 빨리 달릴 수는 있다. 문제는 빨리 달리는 중에 느끼는 안정감이다. 엔진과 모터를 합해 380마력의 출력, 59.1kgm의 토크는 상상을 뛰어넘는 힘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와 후륜구동 시스템이 더해졌다. 단단한 서스펜션에 강성이 높은 하체가 조화를 이루며 고속질주를 이어가는 중에도 차의 흔들림을 안정감 있게 잡아준다. 고속주행에서는 실제속도보다 체감속도가 훨씬 느리다.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면 rpm은 1400까지도 떨어진다. 그만큼 안정감이 있다는 의미다.

1단 4.92로 시작해 8단 0.69로 마무리되는 8단 변속기는 6단에서 1:1, 7, 8단이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된다. 변속 쇼크는 느끼기 힘들다. 오히려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으면 강한 가속쇼크가 온다. 시트에 강하게 파묻히는 느낌, 차가 밀고 나가는 기분이 좋다.

공차중량 1980kg. 운전자가 타고 연료를 채우면 2톤을 훌쩍 넘는 무게다. 하지만 무겁다는 느낌은 없다. 밟는 대로 치고나가는 가벼움은 곧 강한 힘을 말한다. 출력, 성능에 대한 부분은 기대 이상이다.

일상적인 주행영역에서 rpm은 2000을 넘길 일이 거의 없다. 일상주행에선 이 정도에서도 충분한 속도가 나온다. 무척 편안하다. 3000rpm 이상으로 출력을 높이면 탄력적이다. 출력의 차이는 몸이 먼저 느낀다.

단단하고 편안하지만 노면 쇼크를 걸러내는 반응은 스포츠카 그대로다. 단단하면서도 노면의 충격, 자잘한 쇼크를 훌륭하게 걸러내 거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승차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하드한 서스펜션 특성이다. 과한 핸들링을 해도 충분히 받쳐준다.

경이로운 전기차의 모습, 편안한 세단의 모습, 강한 스포츠카의 모습이 이 한 차에 어우러져 있다. 다중인격, 아니 ‘다중차격’이다. 바로 이 차의 매력이다.

스티어링 휠은 2.7 회전한다. 일반적인 수준인 3회전에 미치지 않는다. 작게 돌려도 크게 반응하는 민감한 조향비다.

이 차의 브레이크는 2개의 회로로 구성됐다. 앞 뒤 차축에 서로 다른 이중회로로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유사시를 대비한 안전장치다. 브레이크의 구성은 충실하다. 브레이크는 스포츠카의 기본이다. 앞에 6피스톤, 뒤에 4피스톤 캘리퍼를 적용했다. 브레이크 디스크의 직경은 앞이 360mm, 뒤가 330mm에 이른다.

운전석에서 내릴 때 차의 높이가 낮다는 걸 알게 된다. 차 높이 조절장치를 이용해 가장 낮게 하면 시트에 앉은 채로 발 바닥이 땅에 닿는다.

20인치 타이어를 적용한 이 차의 복합 연비는 14.1km/L, CO2 배출량은 km 당 167g이다. 포르쉐의 연비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판매가격 1억6,450만원으로 쉽게 넘볼 수 없는 가격이다. 그래도 부자는 많은가보다. 서울 시내를 다니다보면 카이엔은 물론 파나메라도 제법 눈에 뜨인다. 포르쉐가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포르쉐의 라인업을 관통하는 공통분모에 각각의 개성을 더해 이뤄내는 차종 조합을 보면 포르쉐는 짜임새 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브랜드임을 알 수 있다.

파나메라 S 하이브리드를 보며 이를 다시 느낀다. 4도어 GT에 하이브리드 조합을 더해 첨단 기술을 지향하는 방향성과 더불어 포르쉐의 존재 이유를 절대 망각하지 않는 차다. 가야할 곳과 지금 서 있는 곳을 두루 꿰고 있는 흔치 않은 브랜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변속레버는 조금 짧으면 더 좋았겠다. 운전석에 앉아 변속레버에 손을 얹으면 팔이 놓이는 각도가 어중간하다. 레버가 짧으면 좀 더 편한 자세로 잡을 수 있겠다.

룸미러를 통해 보는 후방 시야는 좁다. 쿠페 스타일로 지붕 뒤편이 마무리되면서 차창이 좁아진데다 뒷좌석 헤드레스트가 걸린다. 차체 구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큰 덩치는 좁은 길에서 부담스럽다. 넓은 실내공간을 얻은 대신 골목길, 좁은 주차장에서는 무척 조심스럽다. 파나메라의 운명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