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의 밀리언 셀러 캠리가 왔다. 신년벽두부터 거물급 모델의 출시로 시장은 술렁이고 있다. 토요타를 대표하는 중형세단 캠리는 오랜 역사와 함께 탄탄한 상품성으로 무장한 밀리언 셀러다. 83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한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1,400만대 이상 팔린 차다.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을 가진, 그래서 파괴력이 큰 거물이다.
업계는 긴장 속에서 이 차를 주시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는 물론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산차 업체들 역시 캠리의 등장을 주목하는 중이다. 수입차지만 국산차와도 직접 경쟁에 나설 차이기 때문이다. 통한의 리콜 사태,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 등의 여파로 부진의 늪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토요타가 절치부심 칼을 갈며 만들어낸 새 모델이어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새 차를 내놓은 토요타도, 이를 지켜보는 경쟁사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장에는 벌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토요타는 겸손했다. 토요타 자동차의 사장인 토요타 아키오는 서울에서 열린 신차발표회에서 “대대적인 반격보다는 토요타의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로 각오를 밝혔다.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기보다 고객만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충실하겠다는 의미다.
7세대로 진화한 캠리는 디테일로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다. ‘103개의 디테일’을 캐치플레이즈로 내걸고 차의 구석구석이 소비자의 눈 높이에 맞춰 강화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18일 신차발표회에 이어 19일 부산에서 열린 시승회에서 캠리를 만났다. 미국 시장에서 최고급 모델로 투입되는 2.5 가솔린 XLE와 하이브리드 XLE 두 개 차종이 한국에 투입됐다. 까다롭고 깐깐한 한국 소비자들의 눈 높이에 맞춰 최고급 모델로 판매차종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무난함은 중형세단의 운명이다. 캠리는 이 운명에 순응하고 있다. 디자인부터 그랬다. 오래 전부터 봐왔던 모습처럼 익숙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새 얼굴이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조금 둔해 보였던 이전 이미지는 간데 없고 날렵한 모습이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형차로서 딱 좋은 디자인이다. 단조롭기 쉬운 무난한 디자인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은 선이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가 만들어내는 선이 살아 있다. 뒷 모습에서도 트렁크 리드의 엣지와 리어 램프 주변으로 강한 라인이 형성됐다. 양옆 모서리에 배치한 안개등, 차창을 감싸는 은색 라인, 측면 보디 아래에 힘을 주는 라인들이 전체적인 디자인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
이전 모델에 비해 길이는 10mm 줄었지만 실내 크기는 오히려 더 여유롭다. 특히 뒷좌석 탑승자의 무릎 공간은 15mm 늘었다. 실내 거주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캠리에는 에어로 다이내믹 핀을 새로 적용했다. 사이드 미러와 리어 램프에 조그만 핀 하나를 더해 차체 측면의 공기흐름을 잡아준다. 이 핀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차체를 좌우에서 잡아주는 힘이 생기는 것. 그만큼 주행중 차체의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F1 기술에서 응용 발전시켰다고 한다.
인테리어는 단정하고 고급스럽다. 투톤으로 구성된 실내와 밝은 가죽시트가 잘 어울린다. 인테리어 재질은 호화롭지 않지만 대시보드에 스티치를 넣는 등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아이보리 컬러의 밝은 가죽 시트는 실내를 화사하게 만든다. 얼룩이 쉽게 탄다는 단점은 반대로 얼룩을 쉽게 볼 수 있어 잘 닦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더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트는 몸을 잘 받쳐준다. 엉덩이는 물론 허리까지 시트가 잡아준다.
도어 패널과 변속레버 아래로 컵홀더가 있고 센터 콘솔도 넉넉한 용량을 갖췄다. 줌 렌즈를 장착한 DSLR 카메라도 넣을 수 있는 크기다. 글로브 박스도 넓다. 소지품을 넣어둘 공간은 충분하다.
실내 마무리는 야무지게 했다. 앞 창과 만나는 지붕 끝선을 보면 안다. 눈에는 안보이는 이 부분을 보면 차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분 마무리가 잘 돼 있으면 다른 곳은 보지 않아도 된다. 캠리가 그랬다. 일부 수입 중형 세단중에서는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의 틈새에 단면이 거칠게 노출되는 등 허접한 마무리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내비게이션은 토요타가 LG 전자와 함께 개발했다는 한국형 내비게이션이다. 속도제한 안내는 물론 건물에 입주해 있는 점포까지도 안내해준다. 한국시장에 쏟은 정성을 보여주는 내비게이션이다. 삼성전자와는 토요타 운전자 전용 프래그램인 ‘토요타 커뮤니케이터’를 만들었다. 주행중의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다. 토요타는 이 프로그램이 내장된 갤럭시 탭을 캠리 초기 구매자에게 제공키로 했다.
하이브리드 모델에 먼저 올랐다. 시동키를 눌러도 차는 미동도 없다. 스위치를 켠 것일뿐 엔진은 아직 돌지 않는다. 브레이크 페달을 떼면 EV모드로 유령처럼 움직인다. 실내는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옆 사람 숨소리가 들리고, 핸들에서 손이 미끄러지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극단적인 조용함이 사소한 소리 하나 하나를 부각시킨다.
하이브리드 모델에는 무단변속기를 올렸다. 변속 쇼크없이 고속까지 치고 올라간다. 두 개의 모터와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EV 모드로 상당한 거리를 움직일 수 있다. 시스템 자체의 무게가 무거워지기는 하지만 차의 전체적인 효율에는 이 같은 방식이 더 좋다는 게 14년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만들어온 토요타의 판단이다.핸들은 2.9회전한다. 승차감과 주행안정성을 두루 감안한 무난한 세팅이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엔진 소리가 살아난다. 제법 사나운 소리도 낸다. 빠른 가속, 날카로운 핸들링을 기대하면 안된다. 중형세단, 게다가 하이브리드 모델이 아닌가. 부드러운 가속, 편안한 승차감이 미덕인 차다.
급출발을 해도 휠스핀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쓸데없이 힘이 새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신호 대기를 위해 차가 멈추면 실내는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엔진이 완전히 정지하면서 모든 소리가 일시에 멈추는 것. 이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탈 때에는 때로 부담스러울 수 있는 조용함이다. 이 때문에 하이브리드 차를 탈 때에는 좋은 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색한 침묵을 없애야하기 때문이다. 캠리에는 JBL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5.1채널, 10개의 스피커가 묵직한 저음부터 소프라노의 하이톤까지 잘 살려낸다. 짱짱한 음직이 귀에 착착 감긴다.
브레이크는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초기의 느낌이 그렇다. 그 단계가 지난 뒤에야 제동감이 온다. 물론 급제동을 할 때에는 처음부터 강한 제동력을 느낄 수 있다. 브레이크를 통해 에너지를 다시 만들어내는 회생제동장치의 느낌이다. 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직전에 들리는 모터 소리는 지하철에서 많이 들어본 소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처음 타보는 이들에게는 생소한 느낌일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하이브리드의 생명은 연비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23.6km/L의 미친 연비를 자랑한다.
가솔린 엔진 차로 갈아탔다. 소리가 다르다. 볼륨감 있는 엔진 소리가 반갑다. ‘차’를 탔다는 느낌이 든다. 엔진소리는 거칠지 않았다. 속도를 높이면 듣기 좋은 정도의 힘 있는 엔진 사운드가 울려퍼진다. 튜닝을 거쳐 듣기 좋게 마무리 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 엔진 소리를 키우면 제법 파워풀한 소리가 터진다. 독일차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소리다. 차의 흔들림은 안정적이다. 노면 충격을 잘 흡수했고, 과속방지턱 등을 지날 때도 흔들림이 크지 않다. 충격을 받고 난 후의 잔진동도 거의 없다. 중형세단으로서 우수한 수준의 승차감을 보여준다.
속도를 높여 시속 140km 전후로 달렸다. 의외로 바람소리가 크지 않았다. 제법 바람이 부는 날씨였음에도 실내에서는 풍절음이 약했다. 차의 흔들림이 덜하고 바람소리도 크지 않아 체감속도는 낮았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풋 브레이크 방식의 주차 브레이크를 살폈다. 토요타로서는 통한의 리콜 사태를 불러왔던 곳이다. 바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페달들이 자리했다. 매트가 페달 사이에 끼어도 작동하는 데 문제없을 정도다. 물론 바닥 매트도 잘 고정이 됐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았을 때 브레이크가 우선 작동하도록하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도 잘 작동했다.
시속 100km에 rpm을 고정하고 정속주행했다. rpm은 2000에 못미쳤다. 시속 120km에서 2,000rpm을 보이기도 했다. 엔진이 성능보다는 연비와 승차감에 맞춰 편안하게 세팅됐다는 느낌이다. 6단 자동변속기와 최고출력 181마력 엔진의 궁합은 훌륭했다. 일상주행에서 부드러웠고 고속에선 필요한 만큼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급출발할 때에는 휠스핀이 일어났다. 하이드브리드 모델과 달리 휠 스핀은 확연했다. 어느 정도의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려했던 것일까.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의 개입 시점을 조금 늦췄다.
캠리 가솔린 엔진의 연비는 12.8km/L. 배기량 2.5 리터의 중형세단으로 우수한 수준이다.
캠리는 모두 10개의 에어백을 기본장착했다. 운전석 조수석 에어백, 무릎 에어백, 사이드 에어백, 에어커튼, 후석 사이드 에어백 등으로 무장해 탑승객을 보호한다. 후방 추돌시를 대비해 승객의 몸이 시트로 깊숙하게 파묻히도록 설계한 경추손상 방지 시트도 적용됐다. 캠리의 안전장치에서 돋보이는 건 스스로의 안전 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까지 한다는 것. 소형차와 충돌했을 때 상대차에 충격전달을 최소화하는 충격분산 흡수구조를 갖췄다. 약자를 배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쥬인 셈이다.
무난함. 캠리의 운전석에서 내리면서 떠오른 단어다. 중형 패밀리 세단으로서 이만큼 무난한 차가 또 있을까. 익숙한 디자인, 편안한 승차감, 필요한 만큼의 성능을 보여주는 힘, 그리고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가격까지. 캠리는 무난했다.
스포츠카에 무난하다는 말은 욕이지만 중형 세단에 무난하다는 말은 가장 좋은 칭찬이다. 무난함은 이 세그먼트의 세단이 가져야할 가장 큰 미덕이니까.
7세대 캠리가 보여주는 것은 수준 높은 무난함이다. 차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전과 다른, 한 단계 더 높아지고 성숙한 무난함을 갖췄다. 딱 하나, 이게 강점이라고 집어낼 수 없지만 디자인 성능 가격 안전성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그래서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분에 신경 썼음을 말하는 ‘103개의 디테일’은 결국 ‘수준 높은 무난함’이라 할 수 있겠다.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일은 거의 없다. 대신 구석구석, 하나 하나 살펴보고 경험할 때마다 흐믓한 미소를 짓게되는, 캠리는 그런 차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와이퍼는 수동으로 작동된다. 레인센서를 적용해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문제라기보다는 아쉬운 부분이다. 연비 표시도 2012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표기가 아닌 이전 방식이다. 새로운 표시 방식을 따랐더라면 고객만족을 위한다는 토요타의 진정성이 더욱 돋보였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