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시장의 변방이었던 미니밴 시장이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 토요타가 시에나를 앞세워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수입 미니밴 시장은 그동안 대다수 브랜드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다. 캐러밴으로 미니밴 신화를 일궈냈던 크라이슬러만이 그랜드 보이저로 미니밴 시장을 지켜왔을 뿐이다.

수입차들이 이 시장을 외면했던 것은 미니밴의 상용차 이미지가 걸림돌이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고급’ 이미지가 중요한 수입차에 미니밴의 ‘상용차’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에 섣불리 먼저 뛰어들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먼저 들어온 크라이슬러 그랜드보이저가 고군분투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일종의 터부처럼 자리했던 미니밴 시장에 토요타가 뛰어들면서 주목을 받게 된 것.

미니밴은 소형버스다. 7~11인승 정도로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이동하는데 유용한 자동차다. 그래서 성능보다 안정감, 승차감이 중요한 요소다. 빨리 힘 있게 달리는 것보다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조용하게 움직이는 게 미덕인 차다.

토요타는 시에나를 리무진으로 부르고 있다. 그만큼 고급스럽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미니버스의 이미지가 강한, 그래서 덜 고급스러워 보이는 미니밴이라는 이름대신 최고급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리무진’이라고 대놓고 부르는 것. 직접 시에나를 만나보기 전에는 너무 속보이는 작전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시에나의 실내에 들어오는 순간 고급스럽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밝은 색 가죽시트와 나무를 이용한 장식이 그렇기도 했지만 항공기 1등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2열 시트를 보는 순간 리무진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분한 공간에 두 개의 시트만 배치하고 발받침까지 있는 시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고급이었다. 실내 공간을 더 넓게 쓰기 위해선 2열 시트를 접거나, 아예 2열 시트를 떼어낼 수 있다. 3열 시트는 전동으로 접고 펼 수 있다.

센터페시아 윗부분에는 작은 모니터가 있다. 후진할 때 뒷모습을 보여주는 모니터다. 계기판은 심플해서 보기 편하다. 6단 자동변속기를 조절하는 변속레버는 센터페시아 위쪽으로 바짝 올라와 있다. 수동변속도 가능하다.

공차중량은 2톤이 넘어간다. 3.5 리터 가솔린 엔진은 266마력의 힘을 낸다. 마력당 무게비가 7.8kg. 패밀리 세단 수준의 파워다.

차의 덩치가 있어서 무겁지 않을까하는 건 기우다. 가볍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경쾌하게 반응한다. 핸들도 부드럽게 움직여 차를 다루는 데 부담이 없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출발 할 때 살짝 슬립한다. 차의 성능을 체크하기 위해 부득이 급출발을 해 봤지만 실제 미니밴을 운전할 때 휠이 슬립할 정도로 급출발하면 탑승객들에게 몰매 맞는다. 부드럽게 천천히, 여유 있게 운전하는 게 미니밴 운전의 포인트다. 핸들이 3.5회전하는 것도 승차감에 조금 더 방점을 찍은 여유 있는 세팅이다.

출발할 때에는 조금 더디지만 이내 빠른 속도를 되찾는다. 시속 70-80km에서의 가속감이나 시속 170km에서의 가속감이 크게 다르지 않다. 편안하지만 힘 있게 밀고가는 놀라운 가속이다.

시속 100km에서 1800 정도의 알피엠을 마크한다. 잔잔하다. 이 속도에서 A 필러를 넘어가는 바람소리도 평온하다.

직선로에서 빠르게 가속을 시도했다. 엔진의 강한 구동력이 차체를 빠르게 끌고 달렸다. 엔진이 차를 끌고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차의 반응도 다이내믹하다. 시속 150km에서 바람소리는 크지 않다. 의외다. 충분히 조용하고 편안했다. 저속구간에서는 물론 속도를 올리고 난 후에도 가속감이 살아 있다. 미니밴으로 만족스러운 가속감이다. 시속 170까지 어렵지 않게 속도를 올린다. 가벼운 몸놀림이다. 직선로에서는 세단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시속 180km도 어렵지 않게 터치한다. 이 속도에서도 가속페달이 남는다. 덩치 크고 굼뜬 미니밴이 아니다. 힘세고 편안한 리무진이다. 경쾌하고 가볍다.

세단보다지상고가 훨씬 높다. 흔들림, 코너링이 부담스러운 체격 조건인 것. 지상고가 낮은 세단이라면 코너에서 공격적으로 차를 다룰 수 있지만 미니밴으로 그렇게 운전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미니밴은 스포츠카가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는 버스라는 생각을 잊어선 안된다. 조금 타이트한 코너를 시속 50-60km 정도로 편안하게 운행할 수 있었다. 물론 속도를 더 높일 수는 있지만 의미 없는 짓이다.

말랑한 서스펜션은 과속방지턱을 무난하게 치고 나간다. 조금 흔들리지만 잔진동이 크지 않아 금세 마무리된다. 연비는 9.4km/L로 엔진 배기량과 차의 무게 등을 감안하면 수긍할만한 수준이다.

성능 위주로 두 차를 살펴봤지만 미니밴에서 성능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성능보다 편안한 승차감, 운전자의 재미보다 탑승객의 안락함, 엔터테인먼트 등이 훨씬 더 중요한 차종이다. 그런 면에서 토요타 시에나는 충분히 매력 있는 미니밴이다.

시에나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내심 반기는 브랜드들이 있다. 혼다가 그렇다. 오딧세이를 비롯해 경쟁력 있는 미니밴 모델들을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다. 시에나가 투입돼 미니밴 시장이 활기를 띄어 장이 서면 혼다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랜드보이저를 판매하고 있는 크라이슬러 역시 시에나의 등장이 반갑다. 당분간 미니밴 시장은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함께 판을 키워가야 한다. 경쟁자라기 보다는 동반자로 봐야하지 않을까.

시에나의 판매가격은 3.5가 4,990만원, 2.7이 4,290만원이다. 럭셔리한 구성에 합리적인 가격이라 할 수 있다. 크고 여유있는, 그리고 편안한 실내를 원하는 고소득층이라면 욕심낼만한 차다. 기업체 의전용으로도 좋겠다. 시에나가 숨어 있는 수입 미니밴 시장을 어느 정도나 파고들지 이제부터 지켜볼 차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아뿔싸. 지붕 마무리를 놓쳤다. 지붕과 앞유리가 만나는 부분에넓은 틈이 있다.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 눈에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지만 차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숨겨진 포인트다. 천하의 토요타가 틈새 마무리를 못할리는 없다. 안했다고 본다.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마무리하는 자세가 아쉽다. 미니밴이 아니라 리무진이라는 주장과도 맞지 않는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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