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인상을 하지 말던가, 할인판매를 하지 말던가.

영업사원들에게 ‘정가 판매’를 강조하는 현대기아차가 ‘할인판매’에 나섰다. 11월 판매 조건을 크게 낮춘 것. 영업사원들에게 정가판매를 요구하는 회사가 할인판매를 시도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위와 영업사원들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연말에 접어드는 11월 판매 조건을 크게 완화했다. 수입차 고객에게는 제네시스와 에쿠스를 100만원 깎아준다. 그랜저와 베라크루즈는 30만원, 스타렉스를 제외한 나머지 전 차종에 대해서는 20만원을 할인해 준다. 사실상 할인에 해당하는 차량구입 지원금액도 차종에 따라 더 늘렸다.

기아차는 11월 전 차종 출고고객에게 10만원의 유류비를 지원해준다. 여기에 K5하이브리드, 쏘렌트R 구입고객은 50만원을 추가로 할인받는다. 2012년형 K7 시판을 기념해 이달 출고 고객이 현대카드M으로 하이패스를 결제시 1년간 최대 36만원의 통행료를 지원해 준다. 삼성 3D 스마트TV을 주거나 100만원을 할인해 주고, 5년 내 기아차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100만원 할인 쿠폰도 증정한다. 사실상 할인 판매에 나선 것이다.

현대기아차 스스로 ‘정가 판매’를 외치면서 공공연하게 가격 할인을 일상화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는 이처럼 가격을 할인해주지만 영업사원들은 단돈 10만원이라도 할인해주다가 걸리면 가차없는 경고와 징계를 각오해야 한다. 영업사원들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다. 회사가 할인판매에 나설 수 있는 것처럼 영업사원들 역시 판매가격에 대한 재량권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매의 주체로서 자동차 메이커와 영업사원은 동등하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며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회사는 그렇게 하는데 영업사원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좀 더 싼 가격에 차를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다.

현대기아차의 이같은 고자세는 독점이나 다름없는 시장점유율에 힘을 얻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지난 10월 시장 점유율은 82.8%. 올들어 10월까지의 누적 점유율도 80.2%에 달한다. 나머지 20%가 채 안되는 시장을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가 나누는 상황이다.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차를 출시할 때에는 200-300만원씩 가격을 인상하고, 판매가 저조한 제품들은 다시 할인에 나서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대기아차의 최근 신차 가격을 보면 놀랍다. 겂없이 올린다.9월에 출시된 현대차의 신형 i30는 120만원에서 최고 200만원이 인상됐고 지난 9월28일 출시한 기아 신형 프라이드도 시판가격을 종전에 비해 최고 200만원 인상했다. 이같은 인상폭은 올 초 출시한 현대자동차의 준대형차 신형 그랜저HG의 220만원 인상과 비슷한 수준으로, 소형급에서는 사상 초유의 인상폭이다. 지난 8월 출시한 중형웨건 i40 역시 시판가격이 준대형급 세단과 맞먹는 3천만원에 육박할 만큼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기아차 역시 준대형급 K7 2012년형 모델을 내놓으면서 차값을 최고 100만원 가량 인상했다. 기아차는 2012년형 모델을 내놓으면서 2.4럭셔리모델은 시판가격을 110만원 가량 인하하는 대신, 주력인 3.0모델은 럭셔리 40만원, 프레스티지는 70만원을, LPI모델은 100만원을 각각 인상했다.

현대기아차는 이처럼 신차 가격은 겁 없이 올리면서 판매가 저조한 차종을 선심쓰듯 할인해주면서가격인상과 할인판매라는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펴고 있다. 할인판매할 여력이 있다면 가격 인상을 자제해야하는 것이고,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면 할인판매를 최소화해야 한다. 영업사원들에게도 추가 할인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 회사간, 영업사원간 경쟁을 통해 소비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현대기아차의 정가정책이 호응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노동의 문제다. 왼쪽 타이어를 장착하는 정규직과 오른쪽 타이어를 장착하는 비정규직은 같은 노동을 제공하지만 받는 임금은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노동에 다른 임금을 지급하는 회사가 같은 제품을 같은 가격에 팔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정가정책이 지지를 받으려면 회사가 먼저 정가를 지불해야 한다. 정가를 외면하면서 정가를 외치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7bd4e9f6af627c41dcd5ed19e7d4e65c.jpg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