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에 부자 아빠가 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새 옷을 입히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갈아입지 못해 꼬질꼬질한 옷을 벗고 제법 귀티 나고 멋 있는 새 옷을 입은 아이의 모습에 화색이 돈다.
쌍용차의 얘기다. 인도 자본 마힌드라&마힌드라를 새 주인을 맞은 쌍용차에 활기가 넘친다.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재기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재기의 신호탄 코란도 C를 쏘아올린 후 체어맨 H와 체어맨 W를 잇따라 내놨다. 아직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판매량도 쑥쑥 올라오고 있다.
오늘 탈 차는 체어맨 W. 급한 대로 새 옷을 사 입은 건 코란도 C다. 체어맨에겐 리폼한 옷이 주어졌다. 풀 체인지 아닌 마이너체인지라는 얘기다. 굳이 따지자면 새 옷이 아니라 깨끗하게 빨고 헤진데 기워서 깔끔하게 만든 ‘새 옷같은 옷’ 즉 마이너 체인지다. 엔진과 변속기는 그대로다. 디자인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로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세로형으로 바꾼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다. 그나마 CW 600은 가로형 그릴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도 새롭게 보인다. 쌍용차의 분위기가 바뀐 덕이다.
차의 길이가 5,135mm에 폭이 1,895mm에 달한다. 5m를 훌쩍 넘는 거구다. 초대형 세단이라 할 만 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코가 삐죽 나온다. 하지만 시각적인 느낌은 그렇게까지 커 보이지 않는다. 구형보다 35mm 길어졌고 10mm 높아졌다. 휠베이스는 그대로다.
체어맨은 보수적인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대형 세단 시장에서 경쟁 모델로 꼽히는 에쿠스의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거북해하는 이들이 대안으로 택할만한 디자인이다.
쌍용차 디자인은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디자인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쌍용차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때맞춰 옷 갈아입을 처지가 아니었다. 새 차 사고 나서 몇 개월 후면 연식 변경모델이나 부분변경모델에 밀려 구형이 돼버리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쌍용차는 한 번 사면 오래도록 새차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차를 사는 입장에선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헤드램프는 부드러운 곡선과 정직한 직선을 잘 버무려 배치했다. 엘이디를 보조등으로 쓰고 있다. 헤드램프의 윤곽은 벤츠 S 클래스를 닮았다. 수직으로 배치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당당하다. 리어 램프는 L자 형태로 꺾이는 형상이다. 밝고 환하다. 보닛 위의 엠블럼은 나쁘지 않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모습이다. 초대형 세단의 위엄을 강조하기 위한 소품이다.
인테리어는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난다. 시트와 도어패널을 휘감는 가죽, 그리고 천정을 덮어버린 스웨이드 가죽, 핸들을 비롯해 인테리어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한 나무 등이 일관된 고급스러움을 드러낸다. 오감만족.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게다가 최고급으로 정평이 난 하만카돈의 오디오를 통해 귀까지 호사를 누린다. 감성품질 수준이 최고다.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고급스러움이다.
그 뿐 아니다. 다양한 편의장치가 운전을 편하고 즐겁게 해준다. 패들 시프트 버튼이 핸들에 있다. 계기판은 잘 정돈돼 있어 한 눈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내비게이션 모니터 역시 밝고 환하다. 탈취 기능이 있는 공조장치에 시트에선 찬바람이 나오고 안마기능까지 있다.
차 높이도 조절가능하다. 버튼으로 차의 높이를 10mm 낮출 수 있다. 속도에 따라 스스로 차체의 높이가 변하기도 한다. 승차감과 주행안정성을 높여주는 요소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있다. 앞차와의 차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 기능이다. 요즘 최고급세단에 없어서는 안 될 인기 품목이 어김없이 적용됐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다.
뒷좌석 오너석에도 편의장치가 집중됐다. 개별 모니터가 있고, 전동식 시트는 안마기능이 내장됐다. 헤드레스트까지 소파처럼 푹신하게 만들어져 이동 중 휴식을 최대한 보장한다.쌍용차가 이 정도 수준으로 차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대견스럽다.
체어맨은 대한민국 1%를 외치며 최고급 세단으로서의 자부심을 내세우는 차다. 쌍용차의 자존심이다. 내수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현대차에 맞서서 대형세단 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지켜온 체어맨이다. 한때는 에쿠스보다 더 많이 팔리기도 했던 화려했던 시절도 있었다. 폭우가 오락가락하는 날 잠깐 개인 틈을 타 시승에 나섰다.
V8 5000의 엔진 최고출력은 306 마력. 엔진 배기량에 비해 넉넉하다곤 할 수 없지만 2톤 무게의 차를 끌고가는 데 넘치는 힘임은 분명하다. 억지스럽지 않은 강한 힘이 부드럽게 발휘되는 게 독일 프리미엄 세단에 견줘 뒤지지 않는다. 밟으면 터지는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차의 반응은 부드럽다. 촐싹거리고 까불거리는 경박함이 아니라 무게감 있는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반응이 조금 늦다. 스포츠 모드로 서스펜션을 세팅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승차감을 조금 더 배려한 세팅. 쇼퍼 드리븐 카인만큼 펀투 드라이브 보다는 승차감이 이 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조용했다. 확실히 조용했다. NVH에 많은 투자를 했음을 말해주는 조용함이다. 흡음재, 차음재를 사용해 소음의 실내 유입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유리도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썼다. 덕분에 조용한 실내를 확보했다. 고속주행을 해도 바람소리는 들리지만 노면 잡소리나 엔진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듯 한 수준이다. 멀리서 들리는, 꿈결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한 느낌을 주는 엔진 소리다.
급출발을 하면 바퀴가 살짝 슬립하고 ESP가 개입한다. 저속에서 폭발적인 가속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지 모른다. 힘 있게 속도를 올려가지만 폭발적이지는 않아서다. 하지만 고속에서의 가속감은 놀랄만했다. 속도를 높이면 가속감이 더뎌지는게 일반적인데 시승차는 끝이 살아 있다. 좀처럼 가속감이 줄지 않았다. 심지어 시속 200km를 넘겨도 가속페달엔 여유가 있었고 탄력 있는 가속이 가능했다. 고속에서 훨씬 강한 면모를 보이는 파워드레인이다.
재미있는 것은 7단 변속기. 시속 100km에서 겨우 1,500rpm에 머문다. 놀라운 안정감이다. 덕분에 승차감, 정숙성도 좋아진다. 킥타운 상태로 가속을 이어가면서 시속 200km를 넘기는 데 이 때 변속기는 4단이다. 7단 변속기가 4단에서 최고속도를 내는 것이다. 5단에서 최고속도를 내면 효율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은 기존 크루즈 컨트롤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방식. 앞차와의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달린다. 하지만 완전 정지는 안 된다. 차간거리를 유지하며 달리다가 속도가 현저하게 낮아지면 마법이 풀리듯 스르르 풀린다. 차간거리는 5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아 갑자기 거리가 좁혀지면 경고음과 함께 속도를 줄인다. 같은 극을 밀어내는 자석처럼 속도를 줄인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부주의로 인한 접촉사고를 막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너무 믿으면 안된다. 운전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아직은 차가 하는 게 아니다. ACC는 안전운전의 보조장치 정도로 인식하는 게 좋겠다.
엔진소리는 매우 정숙한 편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느낌이다. 뒷좌석에 앉아 시트에 몸을 맡기면 졸음이 쏟아질 것 같다. 그만큼 편안하다. 시트는 여유 있게 몸을 받쳐준다. 꽉 조이는 시트가 아니어서 편하다. 뒷좌석 오너 시트는 소파처럼 편하다.
핸들은 묵직한 느낌이다. 특히 저속 이동 중에 그 느낌이 크다. 조작이 어렵지는 않지만 차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중후한 기분을 핸들이 전한다. 시승차는 후륜구동이다. CW600과 CW700엔 사륜구동인 4트로닉을 적용하지만 V8 5000엔 후륜구동 밖에 없다. 사륜구동이 좀 더 안정감이 있겠지만 뒤에서 안정감 있게 밀고 가는 후륜구동도 놀라운 정도의 안정감을 보였다.
타이어의 로드 홀딩은 만족스럽다. 저속은 물론 빠른 속도에서도 도로와의 밀착감이 높다. 운전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코너에서도 무리 없이 차체를 지탱하며 공략해 나간다.
수동 기능을 갖춘 변속레버엔 토글스위치가 있다. 엄지 손가락으로 터치하면서 수동 변속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핑커 시프트인 셈이다. 전투기 조종간에 기원을 둔 장치로 운전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판매가격 9,260만원. 리무진 모델은 1억 690만원에 이른다. 최고급 프레스티지 세단이라는 자존심을 담은 가격이다.
체어맨 W는 쌍용차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미 느꼈던 바지만 새삼스럽다. 완성도 높은 프리미엄 고급세단을 쌍용차가 만들었다. 코리언 프레스티지 세단의 모범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칭찬해도 아깝지 않다. 이처럼 수준 높은 완성도가 부디 아랫급 차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연비는 부담스럽다. 7.3km/L다. 공차중량 1960kg에 5.0 리터인 엔진을 보면 수긍 못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우려된다. 실제 운전자가 경험하는 연비는 이 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체어맨에는 스타트& 스톱 시스템이나 에너지 회생제동 시스템 같은 첨단 연비 대책은 빠져 있다. 앞으로 기대를 해본다. 패들 시프트 역할을 하는 버튼 위치는 잘못됐다. 핸들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이를 조작하려면 핸들을 아래로 좁게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핸들을 잡으면 차를 정상적으로 운전하기 힘들다. 버튼을 핸들 중앙부 위로 올려야 한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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