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온 짠순이 며느리와 독일서 온 자린고비 시누이가 한판 대결을 펼쳤다. 오동통한 맏며느리 같은 푸조 508 악티브 e하이브리드는 연비가 지상최대의 미덕이다. 차의 모든 부분이 연비에 포커싱 돼 있다. 날씬한 미스를 닮은 폭스바겐 CC 블루모션도 연비에 중요한 가치를 두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전부를 포기하진 않았다. 한 방울의 에너지도 아끼고 쥐어 짜내는 CC는 자린고비임이 분명하지만 달리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비가 화두다. 50~60년대의 무지막지한 크기와 출력 경쟁 시대를 지나 몇 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며 ‘효율’ ‘연비’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연비 좋은 차를 만들지 못하는 자동차 메이커로서의 존재가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비가 전부일순 없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어서다.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기호품,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장난감, 신분을 보여주는 사치품 등 자동차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연비 이외에도 멋있는 스타일, 잘 달리는 성능, 조용하고 아늑한 실내, 호화로운 옵션 등의 조합이 필수다.
폭스바겐과 푸조는 연비에 관한한 탁월한 두각을 나타내는 브랜드다. 국내에 디젤 엔진 바람을 몰고 온 당사자로해도 과언은 아니다. 푸조는 국내 첫 승용디젤차 시대를 열었고, 폭스바겐은 디젤 엔진차들로 국내 라인업을 구축하고 단숨에 국내 수입차 시장 선두권으로 발돋움했다. 두 회사의 최신 모델 CC 블루모션과 508 악티브 eHDi 를 함께 살펴본다.
스타일508은 오동통 살이 오른 모습, CC는 늘씬하게 빠진 쿠페 라인을 강조한다. 508이 부잣집 맏며느리의 모습이라면 CC는 맏며느리의 시누이쯤 되는 모습이다.
508은 607의 뒤를 이어 나온 푸조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정통 세단의 비례를 따라 보닛, 캐빈룸, 트렁크로 정확하게 3분되는 구조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적용한 16인치 타이어가 조금 작아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중형 세단의 아우라를 풍기기에 손색없다. 뒷모습은 사자발톱을 응용해 LED 램프로 멋을 냈다. 밤에 리어램프를 보면 유니크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CC는 쿠페 스타일이다. 4도어쿠페를 지향하며 세단과 쿠페를 섞은 디자인을 선보인다. 긴 보닛을 이루며 지붕으로 넘어간 선은 트렁크와 범퍼를 짧게 마무리했다. 롱 노즈, 쇼트 테일 이다. 지붕에서 트렁크 끝 선까지 거의 일직선을 이룬다. 쿠페 스타일을 적용한 결과다. 하지만 4도어를 적용해 세단의 실용성도 포기하지 않았다.
CC가 508보다 10mm 길고 5mm 넓다. 높이는 508이 40mm 높다. CC가 길지만 큰 차이 없는 동등한 수준의 크기라고 보면 된다. CC는 길지만 쿠페 스타일을 적용한 결과 CC가 뒷좌석 공간이 508보다 좁다. 휠베이스는 508이 2,815mm로 CC보다 107mm 길다. 508이 앞 뒤 타이어를 좀 더 멀리 배치해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휠베이스가 길면 주행안정감 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CC는 차 높이가 낮아 그만큼 무게중심이 낮아 안정감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두 차 모두 장단점이 있는 체격조건을 가진 것.
친환경 기술508 악티브 eHDi는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표방한다. 디젤엔진에 간단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접목시켜 효율을 극대화 시킨 모델. 중형 크기지만 엔진 배기량은 1.6리터에 불과하다. 작은 차에 큰 엔진을 단 차들은 많지만 이처럼 큰 크기에 작은 엔진을 얹은 경우는 드물다. 특히 유럽 브랜드에선 그렇다. 푸조의 과감한 결단이 돋보인다. 한국에선 소비자들이 선호할 수 있는 구성이다. 내실보다 형식을 중요하는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엔진 배기량과 상관없이 큰 차를 좋아하는 게 한국 시장의 특성이다. 여기에 푸조가 자랑하는 변속기 MCP를 장착했다. 1.6 엔진과 MCP의 조화는 이미 푸조의 다른 차종에서 검증된 바 있다. 푸조는 여기에 마이크로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추가해 믿을 수 없는 연비 22.1km/L를 실현했다. 중소형차도 아닌 중형세단의 몸집을 한 차가 이 정도 연비를 보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비에 관한 한 폭스바겐 역시 고수중의 고수다. 폭스바겐의 연비 기술은 블루모션으로 집약된다. 각 부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며 전체적인 연비를 끌어올리는 종합적인 기술 개념. 블루모션의 기본은 TDI 디젤엔진+DSG 변속기의 조합이다. 여기에 스타트 스톱 시스템, 에너지 회생 시스템 등을 더해 전체적인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것. CC에는 이 같은 폭스바겐의 기술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기술이다.
성능
두 차를 몰고 직접 시승을 시작했다. 508은 핸들 왼편에 엔진 스타트 버튼이 있다. CC의 시동키는 ‘푸시&고’ 방식이다. 키를 넣고 가볍게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공회전 상태에서 얌전한 반응은 두 차 모두 비슷한 수준이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508은 느긋하게 움직이고 CC는 조금 더 강한 움직임을 보인다. 508과 CC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508은 112마력이다. 이 힘으로 중형 크기의 세단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만큼, 조금 부족한 파워다. CC는 170마력이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힘 있게 움직이는데 부족한 힘도 아니다. 저스트 파워라 할 수 있다.
변속기의 특성도 차이가 크다. 푸조의 MCP 변속기는 가속과 변속시에 심한 지체현상을 보인다. 출발할 때 탄력을 받기 위한 시간이 길고, 다시 변속 순간에 지체현상을 보이며 시프트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가속테스트 그래프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가속 도중 중간중간에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구간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수동변속기를 기본으로 한 MCP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다.
CC는 7단 DSG다. 더블 클러치 방식의 변속기는 변속 타이밍이 0.02초에 불과하다. 번개 같은 속도다. 변속시간이 빠른 것은 연비와 성능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결이다. 클러치가 떨어졌다 다시 붙은 사이에 새어나가는 동력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두 개의 클러치를 사용함에도 변속기 자체의 무게는 24kg가량 줄었다. 우수한 연비를 확보한데서 만족하지 않고 성능까지 욕심을 낸 것이다.
가속성능508과 CC의 가속성능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508은 느렸고 CC는 빨랐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CC는 8.49초, 508은 12.89초다. CC는 출발해서 141.21m를 달려 시속 100km를 기록했지만 508은 무려 480.04m를 달릴 후에 시속 100km에 다다랐다. 가속 성능 그래프는 두 차의 가속성능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연비 508의 공인 연비는 22.6km/L다. 4.8m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크기를 가진 중형세단의 연비로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당연히 국내 시판중인 중형차중 최고 연비를 자랑한다. 1등급 기준 15km/L를 큰 차이로 넘는 최고수준의 연비다. 폭스바겐 CC도 17.1km/L의 연비를 보이지만 508에 견주면 무려 5.5km/L의 차이가 난다. 1리터의 연료로 5.5km를 더 달리는 것이다. 물론 폭스바겐에는 22.2km/L의 우수한 연비를 자랑하는 제타 1.6 블루모션이 있다. 508은 중형급이면서 준중형급인 제타 블루모션보다도 우수한 연비를 확보했다.
푸조 508의 선택은 ‘연비’였다. 성능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연비를 택해 집중한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이 결국 푸조로 하여금 MCP를 택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가속이 이뤄지는 순간에 주춤거리는 지체현상은 생각하기에 따라 심각한 결함이 될 수도 있는 사항이다. 특히나 드라이빙을 즐기고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변속기다. 하지만 푸조는 이를 택했다. ‘오로지 연비’를 택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푸조가 이처럼 연비에 집착한 것은 유럽의 자동차 세금제도에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연비와 이산화탄소배출량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고 있어 갈수록 성능보다는 연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폭스바겐의 선택은 조금 다르다. 연비 향상이 무시할 수 없는 과제지만 그 앞에 성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따른다. 연비와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지를 잘 반영한 것이 DSG다. 무게를 줄인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적용해 연비도 성능도 개선한 것. 508을 타고 나서 CC를 타면 쭉쭉 뻗어가는 가속력이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진다.
두 회사가 공통으로 택한 아이템중 하나는 스톱&고 시스템. 차가 멈추면 엔진 시동이 꺼져 연료 낭비를 막는 장치다. 스톱&고 시스템은 푸조 508이 조금 더 정교하게 작동한다. 508은 한 번 멈춰 시동이 꺼진 뒤 1~2m 정도만 움직여 다시 멈춰도 대부분 시동이 스르르 꺼진다. CC는 같은 경우에 두 번째 멈출 때 시동이 꺼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시동이 꺼져도 두 차 모두 에어컨은 이상 없이 작동을 한다. 시동이 꺼진 채 에어컨을 오래 켜두고 있으면 중간에 엔진 스스로 작동을 한다.
508과 CC는 타이어도 다르다. 508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215/60R16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 타이어를 달았다. 좁고 편평비가 높은 16인치 타이어로 타이어의 구름저항이 적어 연료를 덜 소모하는 타이어다. CC는 235/45R17 사이즈의 타이어를 택했다. 타이어만큼은 연비에 연연하지 않고 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한 것. CC의 타이어는 셀프 실링 모빌리티 타이어다. 펑크가 나도 스스로 그 틈새를 메워주는 기능이 있는 기특한 타이어. 따라서 스페어타이어가 필요 없다. 이는 508 역시 마찬가지다. 스페어타이어를 생략하고 펑크가 났을 때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간단한 컴프레서와 응급키트를 트렁크에 넣고 대신 스페어타이어는 생략했다.
디자인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결국 차의 성격을 완성한다. 508은 며느리고 CC는 시누이다. 부잣집에 시집온 프랑스 맏며느리는 어떻게든 아낄 궁리에 여념이 없다. 덜 쓰고 덜먹고 한 푼이라도 아껴 시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독일 시누이 CC는 좀 다르다. 깍쟁이 아가씨지만 가끔 기분 낼 줄도 안다. 올케와 마찬가지로 덜 쓰고 덜 먹으며 아끼기는 하지만 야무진 맛은 조금 부족하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온전히 포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엔 아끼지만 즐길 땐 재미있게 즐기는, 아직은 집안 살림을 하지 않는 아가씨다.
판매가격508은 4,290만원이다. 유럽산 중형세단, 게다가 하이브리드링 차를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름신을 내리게 할지 모른다.
CC는 5,190만원이다. 508 보다 900만원 비싸다. 508이 한-EU 관세 인하분이 적용돼 가격을 낮게 책정했다고는 하지만 가격 차이는 큰 편이다. 폭스바겐이 관세인하분을 적용해 가격을 내려도 508과의 가격 차이는 여전히 클 것이다. 하지만 폭스바겐에는 제타 1.6 블루모션도 있다. 1.6 TDI 엔진을 얹어 22.2km/L의 연비를 보이는 준중형급차다. 굳이 중형세단이 아니어도 좋다면 508과 같은 배기량에 비슷한 성능을 보이며 가격은 훨씬 싼 3,190만 원짜리 제타 블루모션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다. 폭스바겐으로서는 스페어 카드를 한 장 더 쥔 셈이다.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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