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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낮에 만든 차를 원한다

밤을 새 보았는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일한다는 것은 열정이다. 시험공부를 위해,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납기를 맞추기 위해, 원고 마감을 위해,혹은 술마시며, 클럽에서밤을 새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다.

기자는 젊었을 때 몇 개월씩 낮에 자고 밤을 꼬박 새는 일을 했었다. 군대에서였다. 중동부 전선, 강원도 철원 대성산 앞의 GOP 철책선이었다.밤 새 경계를 서고 아침이 되면 초소에서 철수해 아침 챙겨먹고 기절하듯 쓰러져 자면 오후에 일어나서 작업하고 훈련하고 쉬다가 해 지기 전에 다시 초소에 투입돼 밤새 경계를 서는 일의 무한 반복이었다. 무릎 관절통, 소화불량, 불면증, 무력감 등을 달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아주 가끔 밤을 샌다. 약속한 원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마감을 앞두고 꼬박 밤을 새곤 한다. 밤 새 일을 하고 동쪽 하늘이 밝아올 때,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열심히 살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뿌듯함이다.

하지만 밤을 새고 난 뒤 제 컨디션을 찾으려면 며칠이 지나야 한다. 머리는 멍하고, 피곤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아 한 나절이면 끝낼 일을 하루가 다 지나도 마무리하지 못해 다음날로 미룬다. 흐트러진 생체리듬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에 대한 열정, 미래에 대한 희망,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 등으로 잠을 포기하고 일을 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아름다운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밤새 일하는 것이 일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매일 밤, 잠을 못자고 일해야 한다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밤잠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한다면. 매일 밤,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건 결코 아름다움도, 열정도 아니다. 벗어나고 싶은 고단한 삶일 뿐이다.

자동차 업계를 일순간에 위기로 몰아갔던 유성기업 사태의 본질은 바로 밤샘 근무, 즉 야간근로의 문제였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일 하는 것을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만 일하게 하자는 것. 줄어든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 보전 문제가 부차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본질은 야간근로를 없애자는 것이 노조의 요구였다.

사측은 당연히 난색을 표했다. 완성차 업체들이 시행한 후에 검토할 문제라는 것. 줄어드는 생산량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사를 떠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밤샘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제품의 품질문제다. 제품 품질 측면에서 본다면 정상적인 작업환경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더 신뢰성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상적인 생체리듬을 가진 근로자가 만든 제품과, 밤샘근무로 생체리듬이 깨진 근로자가 만든 제품 중에서 고르라면 문제는 보다 명확해진다. 아마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낮에 만든 제품을 더 신뢰하지 않을까. 하지만 완성차의 절반쯤은 야간근무조가 만들어낸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불안한 부분이다. 골라서 차를 살 수 있다면 나는 낮에 만든 차를 사고 싶다.

자동차 선진국을 살펴보면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야간 근무를 하는 경우에도 매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근로 시간, 교대 조건, 교대 전후의 휴식시간, 정기적인 건강검진 등의 가이드라인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이런 가이드라인을 도입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야간근로는 없애는 게 좋다. 근로자를 위해서도 소비자를 위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업주를 위해서도 그렇다.

파키스탄의 어린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축구공을 만드는 것만 야만이 아니다. 자야할 시간에 졸린 눈 비비며 생산라인에 투입되는 근로자들 역시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011년, G20 정상회의를 열었고, 이미 96년 OECD에 가입한 이후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이다. 이제 야간근로를 없는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할 시점이다. 밤새도록.

<사진은 한 완성차 업체의 조립라인>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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