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전쟁이 폐허 위에서 미군에서 불하받은 시발 자동차를 만들면서 시작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세계 5, 6위를 넘볼 만큼 성장했다. 유럽의 200년 자동차 역사를 불과 50여년만에 따라잡은 기적과도 같은 일을 우리가 해냈다. 짧은 시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앞선 이들을 따라잡은 압축고도성장의 결과다.

하지만 돌아보면 양적 팽창일 뿐이다.자동차를 많이 만들어 파는 데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동차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살찌우는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짧은 시간에 앞선 이들을 따라 잡으려는 이에게 이것 저것 다 챙길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우선 순위에 따라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더 집중해야하는 입장에서 자동차 문화는 사치스러운 개념일 수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자동차 산업과 자동차 문화가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언밸런스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자동차 산업이 세계 5위를 넘보지만 제대로된 자동차 박물관은 없는 나라다. 고작 하나 용인에 있는 자동차박물관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수장고 수준일 뿐이다. 자동차 경주는 20여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안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경주장도 국제공인 경주장이 겨우 하나 세워졌고 그 마저도 많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국제 경기에는 제대로 명함도 못 내밀고 있는 실정. 이러고도 우리가 자동차대국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자동차 문화는 우리에게 더 이상 사치스러운 개념이 아니다. 그 반대다.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다. 자동차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자동차를 신분 과시용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차를 타느냐를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하는 것이다. 경차타고 호텔가면 제대로 대접받기 힘든 나라가 우리나라다. 총리가 자가운전을 하고, 장관이 경차를 타는 모습을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유럽과 미국등 자동차 역사가 오랜 나라에서는 다양한 자동차 문화가 존재한다. 200년의 자동차 역사를 자랑하는 그들인만큼 그들의 일상과 어우러진 자동차 문화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과 함께 한다. 어려서부터 자동차와 친숙하게 지내는 만큼 간단한 차 수리는 스스로 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공임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오래된 골동품 같은 차를 스스로 고쳐가며 타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게 유럽이다.

자동차 문화를 리드하는 잡지의 존재도 남다르다. 유럽에는 백여년의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자동차 잡지가 여럿 있다. 국내 메이커를 포함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 잡지가 선정하는 이런저런 상을 받았다는 게 뉴스가 된다. 아직 한국에선 그 경지에 오른 전문 언론이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언론의 탓도 크다. 하지만 자동차 전문 언론이 제대로 성장하고 숨쉬기 힘든 구조는 큰 문제다. 자동차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데 있어서 전문 언론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동차 경주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들은 자동차 경주에 대해 매우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 자동차 경주의 역사가 곧 자동차 발전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각 브랜드 마다 레이싱에 관련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조용한 차, 부드러운 차가 고전한다. 사람들이 자동차의 역동적인 면을 좋아해서 부드럽고 조용한 차는 외면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차를 겨루는가하면 가장 적은 양의 연료로 가장 멀리가는 차를 가리는 경기를 하기도 하고, 서킷 경기를 여는 한편으로는 오프로드 경기에 목숨을 거는 이들도 있다. 나이 지긋한 귀족들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클래식카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자동차 문화의 폭이 넓은 가운데에서 자동차 산업이 성장해온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래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참여하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다. 양적으로는 한국이 어느 정도 선두권에 자리잡았다고 하지만 질적인 수준으로 본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한국의 자동차 산업도 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양적 성장에 걸맞는 질적 성장의 모습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정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행히 우리 한국도 50여년의 자동차 역사가 있다. 유럽, 미국에 비해 짧지만 결고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이다. 지금 70-80대의 어르신들은 대부분 40~50대 이후에 자신의 첫 자가용을 가진 세대다. 40~50대도 결혼을 전후로 자가용을 가졌다. 지금의 20대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자가용에 익숙한 세대다. 다 큰 다음에 ‘내 차’를 가진 이들과 어렸을 때부터 ‘마이카’를 접한 세대와는 차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차 문화도 앞으로는 훨씬 다양하고 폭과 깊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거져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사회, 그리고 자동차 메이커가 자동차 문화를 만들고 키우는데 나서야 한다. 제대로된 자동차 박물관을 세우면 많은 어린이들이 그 박물관에서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 그 꿈을 키우면 자란 아이들이 다시 자동차 회사에 입사해 꿈꿔온 자동차를 만들고 그 차는 다시 역사가 되어 박물관에 전시되는 순환 구조가 지금의 유럽 사회다.

이제 우리도 그런 길을 가야 한다. 어린이와 청년들에 투자하고, 자동차 경주에도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오직 앞만보고 빨리 달리던 시대는 그 시대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이제는 조금 넓게, 조금 깊게 살피고 고민하며 움직여야 하는 시대다. 과거 50년이 ‘속성’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숙성’의 시대여야 한다. 숙성의 시대를 지내며 자동차 문화가 활짝 꽃 피우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