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1.6리터 수퍼카, 푸조 RCZ

새끈한 차 한 대가 프랑스에서 바다 건너 한국에 왔다. 작년 가을 푸조가 한국에 선보인 프리미엄 쿠페 RCZ이다. RCZ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2007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였다. 양산차가 아닌 컨셉트카로 태어났던 이 차가 드디어 양산차로 탈바꿈을 하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꿈속의 차가 현실에 ‘짠’하고 나타난 것이다. 프랑스의 아름다움이 묻어있는 차다. 미적 감각이 유난히 뛰어난 프랑스다. 아마 프랑스 메이커가 아니었다면 RCZ은 그냥 컨셉트카로 끝나지 않았을까. 컨셉트카로 만드는 것과 양산차로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컨셉트카엔 제한이 없다.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지우듯 보여주기 위한 쇼카로 한번 만들었다가 끝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산차는 다르다. 까탈스러운 배기가스 규정은 물론, 차의 구석구석을 규정하는 다양한 기준과 사람의 목숨을 담보하는 안전규정 등 지켜야할 것들이 많고 무엇보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어야하는 만큼 마른수건도 다시 짜며 ‘원가’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컨셉트카로 태어난 RCZ이 이런 까다로운 관문들을 모두 거쳐 양산차로 만들어졌고 다시 시승차로 우리 앞에 서 있다.

푸조 RCZ은 뒤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지붕과 리어 윈도로 이어지는 부분이 두 개의 아치를 이루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른바 ‘더블 버블’로 부르는 부분. 마치 수퍼카 처럼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더블 버블이 이어지는 뒤창 아래로는 액티브 스포일러가 적용됐다. 차의 속도에 따라 스포일러가 자동으로 작동되기도 하고 버튼을 이용해 수동으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RCZ은 쿠페다. 쿠페의 속성상 ‘편의성’ 보다는 ‘아름다움’이 조금 더 중요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폼 나게 타는 게 중요한 차라는 말이다. 고개를 조금 더 숙여 차를 타고, 실내는 좁을 뿐 아니라 시트를 완전히 누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은 두 명 밖에 탈 수 없어도, 그래도 이 차를 타는 것은 ‘폼’나기 때문.

푸조의 새로운 앰블렘이 눈길을 끈다. 단순해진 모습이다. 복싱하는 새끼 사자 닮았다.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RCZ은 작다. 비율을 보면 넓고 낮다. 길이 4,270mm로 작은 편이고, 너비는 1,845mm로 넓은 비례다. 높이는 고작 1,360mm에 불과하다. 운전석에 들어가려면 허리를 숙여야 한다. 운전석도 낮다. 달리는 데 최적화된 몸이다. 사이드 미러는 람보르기니나 페라리처럼 돌출시켰다.

푸조의 유머인가. 엔진은 의외로 작다. 수퍼카 닮은 외모를 보면 적어도 3.0 이상 엔진은 써야할 것 같은데 고작 1.6 리터 가솔린 엔진을 올려놨다. 현대차 아반떼와 같은 급의 엔진이다. RCZ의 엔진 출력은 156마력. GDI 방식을 적용한 아반떼 141마력보다 월등히 세다. 대신 연비는 아반떼가 좋다. 타보고 알았지만 RCZ의 엔진은 1.6 같지 않은 파워풀한 성능을 보인다.

버킷 스타일의 시트는 허벅지에서 엉덩이, 허리, 목과 머리를 한 묶음으로 지탱하는 일체형 시트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센터페시아는 어딘지 허전하다. 트립모니터가 센터페시아 상단에 자리 잡고 공조 스위치와 오디오 스위치 사이사이로 간단한 수납공간이 두 곳이나 마련됐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아날로그 시계가 배치됐다.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소품이다. 아날로그 시계는 프리미엄 럭셔리 세단의 종결자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시계 하나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다. 벤츠 S 클래스, 벤틀리, 마세라티 등에서 아날로그 시계를 만날 수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자동차만큼 사치스러운 게 바로 시계임을 아는 이들은 안다. 대시보드는 가죽으로 마감했다. 플라스틱 보다 훨씬 촉감이 좋다.

푸조는 실시간 연비를 확인할 수 있어 좋다. 현재 연료잔량으로 갈 수 있는 거리, 평균 연비, 평균 속도 등을 리얼타임으로 볼 수 있어 경제운전을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다만 트립미터가 센터페시아 위로 분리되어 있어 시선이 분산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벨트라인은 어깨보다 낮게 내려와 있다. 하지만 차창이 넓은 느낌은 아니다. 원형 루프라인이 폭스바겐 비틀 같다. 확 트인 느낌이라기보다 필요한 시야를 확보한 가운데 아늑한 느낌이다. 운전석 위치가 중앙에 있다 보니 흔들림에 강하다. 벙커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 혹은 야구모자를 쓴 느낌과 비슷했다. 2인승 쿠페다. 하지만 뒷좌석도 마련돼 있다. 정해진 시트 넓이와 앞뒤 거리 등 정해진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정식 시트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트다. 뒷좌석은 사람이 타기보다 애완동물을 태우거나 가방을 넣어두는 넓은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면 된다. 트렁크 용량은 384리터.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760리터까지 넓게 쓸 수 있다. 트렁크에는 스페어타이어 대신 펑크 리페어 키트가 준비됐다. 펑크가 나면 임시 조치할 수 있는 기구들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펑크 키트조차 없어도 좋겠다. 전화하면 10분 만에 달려와 필요한 조치들을 해주는 데 굳이 스페어타이어 등을 싣고 다닐 이유는 없지 않을까.

돌리기가 조금 무거운 핸들은 2.7 회전한다. 핸들 아래쪽을 직선으로 자른 D자 형태의 핸들이다. 아우디 TT의 핸들과 비슷하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엔진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배기량이 작은 것을 속이지는 못한다. 가늘다. 하지만 매우 특색 있는 엔진 소리다. 시승할수록 엔진 소리의 매력은 커졌다. 디자인과 더불어 이 차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바로 가속할 때의 엔진 소리다. 파워풀하다기보다 있는 힘을 잘 끌어낸다는 느낌이다. 작은 엔진이지만 가속감은 살아있다. 시속 160 전후까지도 힘 있게 뻗어간다. 바람소리도 적당히 실내로 파고든다. 200km/h도 어렵지 않게 돌파한다. 그리 시끄럽지도 않고 불안감도 덜하다. 무리 없이 무난하게 고속주행을 할 수 있다. 엔진은 물론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따라주지 않으면 이 처럼 작은 차가 안정적인 고속주행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으면 비상등이 빠르게 작동한다. 보통의 깜빡임보다 유난스럽게, 혹은 방정맞게 빨리 깜빡이며 비상상황임을 전한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2,000을 조금 넘는다. 배기량이 작은 만큼 엔진 회전을 조금 더 높여 필요한 힘을 얻는다. 시속 100km를 유지하면서 각단의 rpm을 체크했다. 5단 2,700, 4단 3,700, 3단 5,000 rpm을 각각 마크한다. 정지후 출발하면서 가속 포인트를 살폈다. 가속은 6,000rpm을 지나서 일어났다. 시속 40, 80, 125, 165, 195km에서 각각 시프트 업이 일어났다. 156마력의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시속 150km 전후까지는 빠르게, 그 이상의 속도에서는 꾸준하게 속도를 높였다. 190km/h를 넘기면서는 가속이 더디다. 엔진은 연비보다 성능에 포커스를 뒀다. 공차중량 1,350kg의 차체를 힘 있게 끌고 가지만 연비는 12.1km/l 수준으로 배기량에 비하면 우수하다고 하기는 힘든 수준이다. 특히 연비가 우수하다는 이미지를 가진 푸조여서 훨씬 높아진 기대치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푸조의 날카로운 조향성능은 여전히 맛깔스럽게 살아있다. 핸들의 움직임에 차체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차체 길이가 짧아 조향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도 부담이 없다. 서스펜션과 타이어 등이 어우러져 노면을 잘 움켜쥐면서 춤을 추듯 부드럽고 우아하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자태가 아름답다. 더욱 기대되는 건 6단 수동 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이 올해 추가된다는 것. 같은 배기량에 수동변속기를 달아 200마력의 힘을 내는 ‘더 강한 RCZ’이 라인업에 추가된다는 사실이다. 기대가 크다. 국내 시장에서 존재를 감춘 수동변속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벌서부터 가슴이 설렌다.

시승에 앞서 수퍼카 같은 외모에 1.6 리터의 작은 엔진이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생긴 것 같지 않게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우였다. 1.6 리터 엔진을 달고도 잘 달렸다.아주 재미있는 차다. 야무진 1.6 엔진으로 수퍼카 처럼 생긴 외모를 잘 커버하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맛볼 수 있는 차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가격이 걸린다. 5,610만원은 아무래도 비싸다. 아름다운 쿠페지만 1.6 리터 엔진을 얹은 엔트리급 수입차의 가격으로는 부담스럽다. ‘푸조’가 그동안 비교적 가격경쟁력이 높은 브랜드였다는 점도 이 차의 가격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우선은 환율문제가 크다. 유로당 1,500원을 넘는 환율의 압박이 큰 것. 게다가 푸조는 한국에 직판하지 않고 한불모터스가 수입 판매를 맡고 있다. 가격 인상 요인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다른 직판사들에 비해 크지 않다는 말이다. 3,000만 원대는 욕심이라고 하더라도 4,000만원대 쯤에서 이 차를 만났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AUTO LAB메이커가 발표한 이 차의 제로백 타임은 8.4초. 계측기를 달고 직접 측정한 제로백 타임도 8.41초였다. 출발해서 135.75m를 지나는 시점에 시속 100km를 넘겼다. 배기량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능이다. 3.0 엔진을 얹은 신형 그랜저와 비슷한 빠르기다. 하지만 끈기는 떨어졌다. 시속 190km 도달 시간은 39.43초, 시속 200km에 도달하기까지는 61.10초가 걸렸다. 속도가 높을수록 가속력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동성능은 우수했다. 시속 100km에서 급제동한 뒤 완전 정지하기까지 3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제동시간 2.84초, 제동거리는 38.86m. 브레이크의 성능에 더해 차가 무겁지 않아 제법 빠르게 멈춰 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원길이×너비×높이(mm) 4,270×1,845×1,360엔진 형식 : 직렬4기통 16밸브배기량(cc): 1,598최고출력(마력/rpm): 156/5,800최대토크(kg.m/rpm): 24.5/1,400~4,500트랜스미션: 자동6단구동방식: FF서스펜션(전): 맥퍼슨 스트럿서스펜션(후): 크로스멤버타이어: 235/40R190→ 100km/h(초): 8.1연비(km/l): 12.8CO2 배출량(g/km): 183승차정원(명): 2가격(만원) 5,610

사진 / 이승용 www.cameraeyes.co.kr 박인범 (LIZ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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