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엑센트다. 현대차가 베르나 후속으로 출시한 소형차 이름을 엑센트로 정하고 지난 11월 2일 기자들에게 선보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94년 처음 출시한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이름을 현대차가 다시 꺼내 들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엑센트는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베르나의 미국 이름이 엑센트다. 결국 엑센트의 부활이 아니라, 국내외에서 달리 부르던 이름을 통일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11월 2일, 현대차가 변산으로 기자들을 불러모아 엑센트 시승회를 진행했다. 변산반도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와 새만금 방파제의 쭉 뻗은 도로를 달리며 새로 나온 차의 참 맛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갓 낳은 아기는 엄마 품으로 가지만, 막 만들어진 새 차는 새 주인을 찾아 바쁜 걸음을 움직여야 한다. 막 탄생한 새 차 운전석에 앉아 시승을 즐겼다.
큰 게 미덕인 것은 소형차도 마찬가지다. 엑센트는 베르나보다 길고 낮아졌다. 길이 4,370mm, 높이 1,455mm다.
노치백 세단이지만 소형차답게 톡톡 튀는 디자인이다. 강한 캐릭터 라인들이 집중된 앞모습은 현대차의 패밀리룩으로 자리잡은 헥사고날 디자인이 적용됐다. 그 양옆으로 헤드램프가 마치 부릅뜬을 치켜올린 것처럼 자리잡았다. 옆모습도 간단치는 않다. 헤드램프에서 출발한 라인은 C 필러와 만나고, 리어램프에서 출발한 라인은 앞 휀더와 만나며 두 개의 강한 캐릭터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보디 아래를 지나는 또 하나의 라인. 중대형차라면 과잉일 것같은 라인들이지만 소형차라서 어울린다.
호화로운 실내다. 소형차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고급스럽다. 편의장치도 많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6개의 에어백을 기본장착한다는 사실. 소형차임에도 전 모델에 운전석 조수석 에어백과 사이드 에어백, 커튼 에어백을 기본으로 집어넣었다. 엑티브 헤드레스트도 마찬가지다. 안전에 관한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음성인식 블루투스 핸즈프리, 폴딩타입 무선 도어잠금장치, 슈퍼비전 클러스터, 버튼 시동 스마트 키,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하이패스 시스템, 후방 디스플레이 룸미러, 앞좌석 열선 시트, 인텔리전트 DMB 내비게이션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편의장치들이 있다. 소형차에 이렇게까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아끼지 않고 집어넣었다. 좋기는 한데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도대체 얼마를 받으려고 이러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시승을 진행할 때만해도 가격은 미정이었다.
엑센트는 1.6GDi와 1.4MPI 모델 두 종류로 나왔다. 보디 스타일은 노치백 세단. 내년 상반기에 디젤엔진 추가하면서 해치백 보디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소형차라면 해치백이 더 어울린다. 작고 경쾌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노치백 스타일의 작은 차에는 초등학생 꼬마가 정장을 차려입은 듯한 어색함이 있다. 이전 베르나가 그랬다. 신형 엑센트에서는 노치백이어도 그런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시동을 걸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단체로 줄을 지어 달리는 시승이라 밋밋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속도를 충분히 내볼 수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의 시원하게 뻗은 직선로 덕분이다. 시속 80km 정도에서 조용했다. 조근조근 속삭여도 잘 들릴 정도다. 차는 작지만 141마력의 GDI 엔진은 결코 작지 않다. 아반떼와 같은 6단 자동변속기와 1.6GDI 엔진을 사용하면서 무게는 약 70kg정도 가볍다. 같은 힘에 몸무게가 가벼우니 그만큼 발걸음이 가볍다. 실제 성능은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변산반도의 해안길을 달리는 오르막길에서 탁월함을 느꼈다. 거침이 없다. 그렇다고 엔진 rpm이 올라가며 호흡이 가쁜 것도 아니다. 조용히 부드럽게 오르막을 달린다. 힘이 받쳐줘서 가능한 일이다. 6단 자동변속기는 수동 변속기능을 가졌다. 리터당 16.7km를 가는 연비다. 1등급. 소형차의 덕목을 제대로 갖췄다. GDI 엔진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힘을 힘대로, 연비는 연비대로 우수하다.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은 셈이다. 현대차가 개발을 마쳤다는 더블 클러치까지 가세한다면 연비와 성능은 더욱 업그레이드 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의 독주가 그칠줄 모르고 이어지는 셈이다.
핸들링, 즉 조향성능은 승차감과 성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다. 정확하게 반응했다. 핸들은 한쪽 끝에서 3회전하면 다른쪽으로 완전히 감긴다. 승차감과 성능 사이의 중간지대를 잘 택했다. 노말한 수준이다.
국도변 노면이 고르지 않은 길에서 충격이 계속 올라오는 길이지만 서스펜셔은 진동을 잘 잡는다. 자잘한 진동, 충격이 있지만 잔진동이 계속 이어지는 불쾌한 반응은 아니다. 특히 가속 방지턱을 지날 때 2차 진동 없이 한 번에 쇼크를 흡수한다.
엔진을 3000rpm 정도로 올려도 그리 시끄럽지 않다. 90km/h 전후의 속도에서 지붕위로 가볍게 넘어가는 바람소리 정도가 들린다.
94년 엑센트가 생각난다. 컬러풀하고 가벼웠던 차다. 어찌나 가벼웠는지 코너링을 조금 세게 하면 서스펜션이 힘을 받지 못하고 통통 튀었던 기억이 안다. 지금의 엑센트는 그때와는 천양지차다. 확실히 다르다. 안정감, 무게감이 있다. 소형차라고는 하지만 준중형차 아반떼와 같은 힘을 가졌고 안정감도 뛰어나다.
새만금 방조제 위로 올라섰다. 바닷바람이 강했다. 방파제 위에 올라선 차는 바다 위를 달려온 바람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침없는 바람은 사정없이 작은 차를 몰아쳤다. 속도를 높이면 측면을 때리는 바람에 발걸음이 휘청인다. 횡풍을 타는 것. 바람이 세기도 했거니와 차 옆면이 두터운 스타일이라 바람을 제대로 받는다. 바람 많은 날에는 빨리 안달리는 게 좋겠다.
시속 100km에서 2000rom 정확하게 마크한다. 거침없지만 고속에선 가속이 더뎌지는 감이 있다. 시속 170km을 넘기면 가속이 힘들지만 계기판 상으로 시속 200km를 넘보는 속도까지 달릴 수 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렸다. 50km에서 3단, 80km에서 3단, 130km에서 4단으로 각각 시프트 업된다. D 모드에서 시속 100km를 달리면 2000rpm을 마크한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기어 단수를 낮췄다. 5단 2800rpm, 4단 3500rpm을 각각 보인다.
놀라운 것은 변속쇼크다. 힘있게 치고 나가는 데 변속쇼크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부드럽게 힘있게 치고 나간다. 부드러운 가속은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엔진이나 타이어, 노면 잡소리는 실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소형차 치고는 NVH 대책이 확실한 편이다.
작은 차여서 운전하기 편했다. 코너에서도 직선로에서도 부담없이 차를 움직일 수 있다. 차가 작고 핸들링이 정직한 덕이다. 컨트롤하기 쉽다. 시속 150km를 넘는 고속주행인데도 엔진은 힘들어하지 않는다. 부드럽다. 5000rpm으로 치고 올라가도 엔진 반응은 여유롭다.
현대차가 자랑하는 엑티브 에코 기능이 이 차에도 있다. 경제운전을 돕는 기능이다, 계기판에 녹색등이 들어오게만 운전하면 지갑이 얇아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최적의 연비로 운전하면서 기름값을 아낄 수 있어서다. 전동식 선루프는 원터치 동작이 된다. 편하다. 계속 누르지 않아서 좋다. 워셔액 노즐도 보닛 위로 노출되지 않고 그 안으로 숨겼다. 보기에도 좋고 바람소리도 덜 난다. 워셔액은 스프레이 타입으로 안개처럼 분사돼서 잘 닦인다. 스마트 키는 완전 방전된 상태에서도 작동되도록 만들었다.
변속레버는 손에 쏙 들어온다. 그 맛이 참 좋다. 감성품질의 영역인데 현대차가 이 부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 다행스럽다. 세심하게 구석구석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계측기로 측정한 엑센트의 제로백은 10.34초. 가속거리는 173.59m다. 시속 100km에서의 제동거리는 44.28m, 제동시간은 3.15초,가 걸렸다.
제동할 때 ABS가 작동되는데 이때 운전자의 기분은 매우 흡족하다. 두드득 거리며 거칠게 작동하는 페달의 느낌이 오히려 차를 신뢰하게 해준다.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반응이어서다. 차가 가벼워 제동은 부담없다. 현대차는 20대 남성을 이 차의 상징적인 타깃으로 삼았다. ‘가이스 라이센스’ 즉 젊음의 특권이 이 차의 컨셉트다. 그렇다고 여성은 사지 말란 법 없다. 여성에게도 아주 잘 어울릴 차다.
이 차의 판매가격은 신차 발표회가 끝난 뒤 며칠 후에 결정됐다. 자동변속기를 포함해서 1,289만원부터다. 가장 비싼 모델은 1,536만원. 여기에 VDC, 내비게이션, ECM 룸미러, 선루프 등의 옵션들을 더하면 1700만원이 넘는다. 비싸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차에 달린 여러 장비와 기술들을 감안해야 한다.
현대차가 작심하고 이 차를 만든 듯 하다. 소형차에 과한 성능 및 편의장치 등이 이를 말한다. 엑센트의 경쟁차종은 다른 소형차가 아니다. 준중형차들이 긴장해야 하는 대목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신차 발표를 하면서 가격은 미정이라고 했다. 놀라운 배짱이다. 이 차를 학수고대하는 소비자들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민이 깊었던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선 안된다.
VDC를 켜고 급가속하면 차가 움직이기 싫은 듯 멈칫하고 난 뒤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박자 이상 시간을 잡아먹는다. 차의 흔들림도 크다. 유쾌하지 않은 반응이다. 디자인은 좋지만 개념은 어렵다. 플루이딕 스컬프쳐, 슬릭 온 다이내믹 이라는 개념은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설명을 들어도 알듯말듯하다. 어려운 개념이겠지만 쉽게 풀어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다. 소비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