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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포르쉐에 취하다

제주도에서 포르쉐에 취했다.

11월의 제주는 가장 아름다울 때다. 바다 건너 ‘육지’에는 단풍이 사라지고 하나 둘 나무들이 헐벗고 겨울을 맞이할 때 제주는 이제부터 가을의 진면목을 보인다. 한라산의 색은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형형색색의 단풍이화려하다.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포르쉐의 행렬을 보는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본다.

박스터 S, 카이맨S, 911 카레라 S, 911 카레라 4S, 911 터보 S 카브리올레, 그리고 파나메라 터보가 꼬리를 물고 한라산 자락을 휘감아 돌고 제주 바다를 희롱했다. 산은 단풍에 바다는 바람에 잔뜩 취해 있었다. 파나메라를 제외하면 모두가 911 모델들이다. 포르쉐의 정수다. 누가 뭐래도 포르쉐는 스포츠카다. 그래서 911이야말로 진정한 포르쉐다. 파나메라도, 카이엔도 결국엔 911에서 비롯된 DNA를 물려받고 태어난 차들이다.

지금 왜 911인가를 물을 필요는 없다. ‘그냥’ 탔다. 차를 타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차를 탈 때도 있는 법. 올 가을 제주에서의 포르쉐 시승회가 그랬다. 뜬금없이 기자들 불러 911 앞에 세우고 “편하게 타시라”는 말 한마디 던질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노리는 그 무엇이 있을 터. “굳이 대라면 카이엔과 파나메라가 너무 잘 팔려서 이젠 911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준비한 행사라 했다.

포르쉐의 역발상이다. 신차가 아닌 ‘묵은 차’로 시승회를 준비한다는 건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포르쉐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포르쉐의 DNA는 이런 역발상, 혹은 남과 다름 일지도 모른다. 에어로다이내믹을 말하며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웻지 스타일을 많은 차들이 선호하지만 포르쉐는 반대로 간다. 웅크린 개구리처럼 앞이 높고 뒤가 낮은 독특하면서도 유니크한 디자인이 포르쉐다.

수평대향 엔진, 미드십 혹은 리어 엔진을 고집하는 것도 남다른 포르쉐의 스타일이다. 키를 왼쪽에 두는 것도, 론치 스타트라는 생소한 출발 방법도, 포르쉐에서만 맛볼 수 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은 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불통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거다. 그것도 부자들이. 수입차 업체들 중에서는 포르쉐 판매 대수만큼만 팔아도 좋겠다는 중저가 브랜드들이 있을 정도다. 싸고 무난한 차들보다 비싸고 고집불통에 게다가 때로 불편하기조차한 포르쉐가 더 팔리는 건 진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미쓰비시나 스바루, 캐딜락 보다도 포르쉐가 더 많이 팔릴 수 있느냐는 말이다.

짐작컨대 두루뭉실한 무난함보다 성격 분명한 개성에 많은 이들이 엄지 손가락 치켜 세우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튀어도, 조금 비싸도, 조금 거칠어도 그래도 포르쉐는 사람의 마음을 앗아가는 묘한 매력이있다.

사내들을 미치게 만드는 건 차종을 불문하고 어느 차에서나 볼 수 있는 포르쉐의 빵빵한 엉덩이다. 리어 휠 하우스를 감싸며 볼륨감 있게 올록볼록 나오고 들어간 라인을 뒤에서 바라다보면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다. 괜히 그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대본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질 것 만 같은, 섹시한 엉덩이다.

서귀포에서 성판악으로 오르는 5.16 도로는 단풍으로 절정이었다. 나란히 대형을 이루고 달리는 포르쉐의 행렬은 그 굽이 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카레라 S는 강한 후륜구동의 맛을 냈고, 카레라 4S는 코너에서 과한 동작에도 한 치 밀림 없는 안정된 발놀림이 좋다. 카이맨과 박스터는 미드십 스포츠카의 정석대로 코너를 돌아 나간다. 가장 안정적인 코너링을 보이는 차다. 911 터보의 카리스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노면에 더 달라붙어 움직이는 몸짓 하나하나에 강함이 묻어있다.쭉 뻗은 직선로에서의 가속은 상쾌했다. 차창을 열어 서울에서 묻혀온 찌든 때를 다 날려버리는 상쾌함이란…….

엔진의 거친 숨소리조차 사랑스러운 포르쉐다. 수동변속으로 엔진회전수를 높이면 시끄러운, 하지만 매력적인 소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소리다. 타이어를 통해 쉴 새 없이 전해오는 쇼크는 단단한 서스펜션이 별 거 아닌 듯 걸러낸다. 단단한 움직임 탓에 몸이 고되지만 스포츠카는 바로 그 맛에 타는 거다.

여섯 대의 포르쉐를 앞에 두고 하나를 고르라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그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잔인하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이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제주=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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