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이다. 산이 불붙은 것처럼 붉은 계절, 경춘국도를 타고 시승을 나섰다. 르노삼성이 새로 내놓은 SM3 2.0을 타고서다. 이 차는 지난 4월 부산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이 차를 보는 순간, ‘크다’는 생각이 났다. 작고 귀여운 준중형을 기대하던 이들에게 우람한 덩치의 중형급 세단이 나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4620mm의 길이에 141마력의 힘을 내는 2.0 엔진을 얹었으니 이 차를 굳이 준중형의 범주에 묶어둘 필요는 없다. 중형이든 준중형이든 전천후로 경계를 넘나드는 리베로처럼 달리는 게 이 차의 운명이다. 가격은 1600만원부터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무조건 차는 커야 한다는 게 우리 정서였다. 엔진은 작아도 차체를 커야 했다. 중형차라고 하지만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은 1.8 엔진 모델이었을 만큼 허세가 심한 게 우리가 자동차를 대하는 태도다.
이제 조금씩 그런 부분이 변화되고 있음을 본다. 작은 차에 큰 엔진이 올라가고 있어서다. SM3에 2.0 엔진이 적용되고 i30에도 2.0 가솔린 엔진이 올라갔다. 많지는 않지만 차의 크기보다 엔진의 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현상이다.
물론 아직은 과도기다. SM3에서 보듯이 엔진을 키우면서도 크기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서도 BMW335i 처럼 작은 크기에 큰 엔진 배기량을 가진 차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물론 르노삼성이 SM3에 2.0 엔진을 올린 이유는 따로 있다. 경쟁모델인 아반떼와 포르테 때문이다. 1.6 직분사 엔진을 적용해 140마력의 힘을 내는 아반떼와 포르테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모델이 바로 SM3 2.0 이다. 직분사 엔진으로 대응이 안 되니 배기량을 늘려서 힘을 맞춘 것이다.
얌전한 디자인이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르노삼성차 답다. 전통 세단의 모습을 가졌다. 이 차를 보고 있으면 길고 얇다는 느낌이 든다.
계기판은 천장을 향해 많이 누여져 있다. 3개의 원으로 구성된 계기판은 중앙 속도계, 왼쪽 타코미터로 구성했다. 보기 쉽다.
센터 페시아는 공조 스위치와 오디오 스위치 공간을 나눠 기능적으로 분리했다. 도어 패널에는 은색 손잡이 장식을 넣어 밋밋함을 없앴다.
오히려 핸들은 밋밋하다. 아무 것도 없이 그냥 핸들뿐이다. 오디오 조절 등 기타 스위치는 핸들 우측 아래 따로 분리돼서 배치됐다.
시속 100에서 2000rpm을 가리킨다. 바람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시속 100km에서 이정도 소리는 당연하고 수긍이 갈만하다. 의외로 엔진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고 얌전한 엔진이다.
6단으로 표시되는 변속기는 수동 변속 모드를 가진 무단변속기다. 수동 모드로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며 1단서부터 변속 포인트를 체크했다. 시속 50km에서 2단, 80km/h에서 3단, 120km/h에서 4단, 160km/h에서 5단 변속이 일어난다.
속도를 시속 100km에 고정하고 변속 단수를 옮겼다. 6단 2,000rpm, 5단 3,000rpm, 4단 4,000rpm, 3단 5,000rpm으로 정확하게 1000 rpm씩 오르내린다.
가평에서 춘천으로 넘어가는 옛 경춘국도를 탔다. 살짝살짝 와인딩 로드가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낭만적인 길이다. 급출발하면 살짝 휠스핀이 일어난다. SM3는 가볍게 그 길을 달렸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데 무리가 없다. 무난하다. 운전자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속도를 올리는 데에도 그렇다. 141마력의 힘이 차체를 충분히 감당한다. 조향성능은 정직하다. 오버도 언더도 없이 정확한 스티어링이다. 게다가 가볍다.
엔진의 힘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카에서 느끼는 풍부한 파워는 아니다. 하지만 차체의 속도를 높여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꾸준한 가속이다. 힘은 몸을 잘 컨트롤한다. 부담을 주는 차가 아니다.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계측기를 달고 가속과 제동성능을 살펴봤다. 제로백은 10.76초가 베스트 기록이었다. 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했더니 3.61초 동안 47.75m를 더 가서 멈췄다.
인상적인 것은 얌전한 엔진이다. 시속 180km에서도 엔진 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얌전하다. 하지만 최대토크 19.8kg.m의 발생 시점이 3700rpm으로 다른 가솔린 엔진 보다 조금 이르다. 힘을 좀 더 일찍 느낄 수 있게 세팅한 것이다.
이 차에는 무단변속기를 장착했다. 가속하는데 변속 쇼크가 없고 부드러우며 연비에도 도움이 되는 요소다. 일부 운전자들이 무단변속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부드럽고 쇼크가 없어 운전하는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에는 장단점을 딱 잘라서 구분하기 힘든 면이 있다.
다이내믹하게 달리는 데 문제없다. 크기나 성격으로 볼 때 힘 있는 주행보다는 여유 있게 승차감 즐기는 패밀리세단의 모습이 더 어울리겠다.
준중형에 2.0 엔진을 얹어 알차진 모습이다. 여유 있는 힘까지 갖췄다. 주행도 편안하고 여유 있게 운전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를 즐기기보다는 패밀리 세단으로 잘 어울리는 차다. 경계를 넘나드는 리베로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무단 변속기인데 쇼크가 있다. 기어를 넣고 뺄 때, 즉 N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유쾌하지 않는 쇼크가 온다. 무단변속기인 만큼 이런 쇼크도 없었으면 좋겠다. 핸들 우측 아래에 뭉치로 자리한 버튼들은 핸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제대로 쓰려면 미리 용법을 공부하고 익혀서 보지 않고도 손가락을 움직여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운전 중에 눈으로 보면서 이를 조작하려했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엔진형식 : 가솔린 직렬4기통 MPI
최고출력 (마력/ rpm) : 141/6,000
최대토크 (kg.m/rpm) : 19.8/3,700
구동방식 : FF
트랜스미션 : 6단 CVT연비 (km/l) : 13.2
길이x너비x높이(mm) : 4,620×1,810×1,480
승차정원 (명) : 5
가격 : 1,660만~1,960만원
시승 / 글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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