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에 에쿠스의 엔진을 얹어서 판다면 사람들이 지갑을 열까? 아니, 사고 말고는 떠나서 그런 상상을 하는 엔지니어가 있기는 할까? 엔지니어가 조른다고 덜컥 그런 차를 만들라고 허락할 회사는 또 있을까?
렉서스에는 있다. 렉서스 라인업 중에서 가장 아랫급인 차, IS에 5.0 리터 엔진을 얹은 괴물을 IS F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지난 10월에 한국 판매도 시작했다.
그를 만든 사람은 야구치 유키히코. 토요타가 고급 브랜드로 만든 렉서스 LS 세단의 처음 개발에 참여했고 IS F개발을 책임진 치프 엔지니어다. IS F를 말할 때에는 야구치 유키히코를 떼어내서 말하기 힘들다. 그가 꿈꿔온 차가 바로 IS F니까. “엔지니어로서 만들고 싶고, 타보고 싶은 차”를 구상했고 끈질긴 설득과 작업을 통해 실제로 그런 차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강원도 태백에는 10월 중순에 벌써 단풍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태백 서킷에서 IS F를 탔다. 마음껏 탈 수는 없었다. 주최 측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했고, 안전을 위해 헬멧까지 써야해서 어색했다. 하지만 IS F를 느끼는 데 그런 장애들은 문제되지 않았다. 강하고 짜릿했다.
길이 4660mm로 르노삼성의 SM3(4,620mm)보다 조금 긴 이 차에 423마력짜리 V8 5.0 엔진을 올릴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상상이야 누가 못할까마는 그 상상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이들은 또 뭔가. 렉서스 IS F는 의미심장한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했다.
당연히 IS F는 조용하지 않았다. 박력 있는 엔진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우리가 알던 렉서스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살아있는 차’다. 시끄러운 차가 아니다. 소리가 살아있다. 저속에서 중고속에서 각기 다른 음색을 통해 낸다. 조용함이 미덕인 렉서스에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재미있다.
이 차를 만든 사람. 앞서 언급했던 야구치 유키히코는 소리 전문가다. 처음부터 진동과 소음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다. 조용함의 극치를 이루는 LS세단의 진동과 소음을 담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같은 사람의 손끝에서 ‘조용한 차’와 ‘소리가 살아 있는 차’가 함께 만들어졌다. 이상할 건 없다. 소리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조용한 차도, 혹은 그 반대의 차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그는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야구치가 주목한 것은 보디다. 보디가 진동과 소음을 확장시키는, 이를테면 스피커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흡음재를 잔뜩 바르게 되면 조용해지지만 대신 무거워진다. 소리의 특성을 변화시키면 흡음재를 많이 쓰지 않고도 소리를 가라앉힐 수 있다. 보디 골격을 소리 특성에 맞춰 만들어 소리와 무게를 함께 잡을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IS F의 소리는 3단계로 구분된다. 저속시의 배기음. 고속 구간의 흡기음, 초고속 구간에서 들리는 순수한 엔진음 즉 메커니컬 사운드다. 여유 있게 소리를 느끼며 충분히 차를 느낄 시간은 아쉽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설명대로라면 굳이 계기판의 타코미터를 보지 않아도 엔진 소리만으로도 엔진회전 속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특징은 쇼크다. 8단 다이렉트 시프트 트랜스미션은 0.1초만에 변속을 완성한다. D 모드에서는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렉서스 다운’ 변속이 이뤄진다. 쇼크를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수동 변속모드인 M을 택하면 미처 다 걸러내지 못한 변속 쇼크가 운전자의 몸을 쿨렁 거리게 한다. 변속이 이뤄질 때마다 몸이 쇼크를 느껴야 하는 것.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스포츠카의 즉답성을 강조한 것이다. 조금 거칠지만 엑셀 조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빠른 가속을 몸이 직접 느끼게 일부러 쇼크를 줄이지 않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스포츠카의 야성이 살아있는 차다. 지킬과 하이드 같다고 할까. D모드에서는 얌전하고 부드러운 차가 M으로 세팅하면 거칠고 터프하게 변한다. 이 차가 진짜 렉서스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렉서스의 금기, 소리와 쇼크를 앞세워 멋진 반전을 이끌어낸 차가 바로 이 차다.
수동변속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계적인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변속기일 뿐 아니라 조금 더 거친 맛을 느끼기에도 수동변속기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길들여진 안정감, 편안함과 거리가 있는 차라면 6단 수동변속기 정도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메이커가 발표한 이 차의 제로백 타임은 4.8초. 최고출력 423마력에 공차중량은 1740kg이다. 마력당무게비 4.1kg. 대단한 효율을 가진 차라는 게 제원표 상의 수치만으로도 알 수 있다.
태백 서킷에서는 시속 200km에 조금 못 미치는 속도까지 가속할 수 있었다. 직선이 허락하면 시속 250km는 여유 있게, 욕심부려 가속을 하면 시속 300km를 넘볼 수 있는 차다. 작은 슈퍼카다.
이 차에 적용된 VDIM(Vehicle Dynamics Itegrated Management ; 차량 동력학 통합제어시스템)은 스포츠, 노멀, 오프 등 3개 모드로 작동한다. 각 모드에 따라 스티어링 휠, 브레이크, 주행 안정성, 트랙션 시스템 등이 주행 상황에 맞게 대응한다.
IS F는 서킷 주행을 염두에 두고 만든 차다. 개발과정에서 전세계 주요서킷을 돌며 테스트했다. 차 이름에 들어간 F는 후지 스피드웨이의 머리글자다. 서킷 주행을 위해 만들어진 고성능 세단이라는 특성은 차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공력특성을 높이기 위해 차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디자인했고, 브레이크도 차의 성능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게 고성능으로 제작했다.
IS F는 브렘보의 고성능 브레이크를 썼다. 앞에는 6개의 피스콘 캘리퍼가 장착된 14.2 인치 디스크, 뒤에는 두 개의 피스톤 캘리퍼가 장착된 13.6인치 디스크를 썼다. 고속에서도 확실한 제동력을 담보하는 브레이크다.
타이어와 서스펜션 역시 일반도로보다 훨씬 강한 횡G가 걸리는 상황에 대응해 제작됐다. 거칠게 다룰수록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차다. 19인치 단조 휠을 썼다. 가볍고 단단해 고성능을 거뜬히 감당해내는 휠이다.
실제로 이 차를 타고 태백 서킷의 코너에서 아예 차를 ‘던지듯이’ 강하게 운전해도 차는 미끄러짐 없이 단단하게 그립을 유지하며 자세를 잃지 않고 달렸다. 순간 가속은 물론 코너에서도 스포츠카 이상의 안정되면서도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다. 맹렬하게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트는 몸을 전체적으로 잡아줘 코너가 계속 이어지는 서킷주행에서 차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해줬다. 옆구리는 물론 어깨까지 잡아주는 시트여서 드라이버가 훨씬 더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조수석과 뒷좌석 시트도 버킷 타입으로 만들어 포근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운전자의 몸을 감싸줬다.
에어백은 모두 8개가 적용됐다. 충격흡수 고강성 차체구조에 더해 무릎 에어백을 포함하는 8개의 에어백이 차의 안전을 책임진다.
차는 작아서 다루기가 훨씬 쉽다. 고속주행으로 직진한 후 브레이크로 마무리를 할 때에도, 코너를 빠르게 공략할 때에도 작은 차제는 부담이 없어 좋았다. 게다가 후륜구동차여서 주향안정감이 우수했다. 덩치 큰 슈퍼카였다면 드라이버의 부담은 훨씬 클 것이다.
판매가격 8800만원. 슈퍼카라면 매력있는 가격이다.
무엇이 IS F를 만들었을까. 엔지니어의 꿈이 만들었다고 한다. 엔지니어는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자신들에겐 없는 것, 갖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꿈이다. 렉서스를 앞세워 유럽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따라잡았지만 그래도 부족했던 그 무엇이 IS F를 만드는 원동력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렉서스에선 절대 만들지 못할 것 같은, 혹은 만들지 않을 것 같은 차를 보란 듯이 만들어낸 토요타의 저력이 놀랍다. 멋진 반전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과 윈드실드 틈새 마무리가 거칠다. 거친 성능은 이 차의 매력이 될 수 있지만 거친 마무리는 지적사항이다. 렉서스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차라면 높은 수준의 마무리를 소비자들은 기대하게 마련이다.
주요 제원 및 중량
전장x전폭x전고
4,660mm x 1,815mm x 1,415mm
축거
2,730mm
윤거 (전/후)
1,560mm/1,520mm
공차중량
1,740kg
차량총중량
2,000kg
엔 진
형식
5.0 리터 V형 8기통 32밸브
배기량
4,969cc
최고 출력
423ps / 6,600rpm
최대 토크
51.5kg.m /5,200 rpm
정부공인 표준연비
8.4 km/ℓ (4등급)
샤시 및 구동계
서스펜션 (전/후)
더블 위시본 타입 / 멀티 링크 타입
브레이크 (전/후)
브렘보 벤틸레이티드 타공 디스크
최소 회전 반경
5.1 m
연료 탱크 용량
64 ℓ
구동방식
후륜구동
타이어 (전/후)
225/40R19, 255/35R19
가 격
8,800만원
시승 /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