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턴이 다운사이징을 감행했다. 2.0 엔진을 적용하고 가격도 크게 내려 중형 SUV 시장 진입을 알렸다. 전북 완주군 대둔산까지 왕복하는 1박2일 동안의 시승을 통해 렉스턴 RX4의 능력을 테스트했다.

쌍용차가 오랜만에 새 모델을 내놨다. 2.0 엔진을 장착한 렉스턴 RX4를 8월초에 출시했다. 렉스턴은 대형 SUV다. 지금까진 그랬다. “대한민국 1%”를 타깃으로 ‘고급’ ‘대형’의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그랬던 렉스턴이 이제 어깨에 힘을 빼고 자세도 한껏 낮춰 2.0 엔진을 얹은 모델을 내놨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행보다. 우선 다운 사이징이다. 시장의 방향은 이제 출력 대결에서 적절한 성능에 연비를 강화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무작정 강한 힘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효율’을 내세우는 것. BMW가 말하는 이피션트 다이내믹이나 벤츠의 블루 이피션시, 폭스바겐의 블루모션 모두 결국은 ‘효율’이 핵심 개념이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쌍용이 내놓은 차가 렉스턴 RX4다.

이 차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렉스턴의 중형화다. 지금까지 렉스턴은 대형 SUV 시장의 맹주였다. 하지만 대형 SUV 시장은 전체시장이 월 2,000대에 못미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싼타페, 쏘렌토가 포진한 중형 SUV 시장은 월 1만대를 넘볼 정도로 활황이다. 목 좋은 자리를 잡겠다는 것이다.

렉스턴 RX4를 타고 전북 대둔산을 향해 달렸다. 시승 기간은 1박2일. 차 타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정이 따로 없는 넉넉한 시승이었다.

시승차는 공장에서 막 뽑은 진짜 새차였다. 실내에 비닐도 채 벗기지 않은 말 그대로 새 차였다. 최고급 모델에 옵션을 다 장착한 노블리스 모델.

렉스턴을 정면에서 보면 껑충한 인상을 준다. 폭이 좁은 것은 아니지만 차가 높아서 그렇게 보인다. 도로 위를 달리는 많은 차들 틈에서 위로 솟아오른 생김새다. 국산 SUV중에서 가장 높은 차가 바로 렉스턴이다. 수입차중에선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1925mm로 가장 높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조금 더 고급스럽게 변했다. 사이드 가니시를 투톤으로 만들어 SUV의 활동성을 강조했고 두 개의 원형 파이프로 구성된 머플러 배기구는 우측으로 몰아서 배치했다. C 필러에는 방패 모양의 델타커버 앰블렘이 붙어 있다. 센터 페시아는 단순 명료하게 구성했다. 공조장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구성된 레이아웃이 조금 어색해 보인다. 좀 더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내비게이션은 생략됐다. 현명한 판단이다.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 뭔가를 빼야 한다면 고급 내비게이션이 우선 해당되는 품목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비게이션에 관한한 소비자가 메이커 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충분한 대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업체의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똑똑한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도 있다. 아니면 저렴한 거치형 내비게이션을 택하는 방법도 있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센터페시아는 허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차의 전체적인 상품 구성과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가장 먼저 내비게이션을 희생시키는 것이 맞다.

아마도 2.0 엔진을 얹은 렉스턴 모델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할 것이다. 2.0 엔진으로 이 차를 제대로 끌 수 있을까. 즉 엔진의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2.0 엔진의 최고출력은 148마력. 풀옵션에 사륜구동모델인 시승차의 공차중량은 1995kg. 2톤이다. 마력당 무게비를 계산해보면 1마력의 출력이 감당해야하는 이 차의 무게는 13.5kg에 이른다.

출력은 빠듯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여유있게 운전하면 무리없이 차를 다룰 수 있었다. 급가속을 하면 한 발짝, 두 발짝 발을 떼기는 힘들어하지만 가속을 시작하면 시속 100km 전후로 부담없이 속도를 올렸다. 사실 의외였다. 차가 힘이 없으면 타는 사람이나 차를 준 사람이나 피차 미안해지는데 어쩌나 하는 걱정은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차가 가속을 받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제법이다.

문제는 고속이었다.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놓고 가속페달을 아예 바닥에 붙인 채로 차를 괴롭혔다. “달려라 달려. 죽도록 달리자” 하는 마음으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마음으로 렉스턴 RX4를 다그쳤다. 120km/h를 넘기면서 힘겨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겨우 140km/h에 다다른 차는 더 이상 속도를 올릴 생각은 하지 않는 채 그 속도에서 억지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여기가 한계일까.

이 때 언듯 눈에 들어오는 게 적산 거리계. 이제 막 100여 km를 달린 말 ‘진짜 새차’였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 140km/h를 힘겨워하던 시승차는 시승하는 동안 길이 제대로 들었는지 이튿날 서울로 돌아올 때에는 시속 180km까지로 너끈히 달려주는 저력을 보였다. 148마력 엔진이 2톤의 무게를 이 정도로 끌어주는 건 기대 이상이다.

큰 덩치를 컨트롤해야하는 저스트 파워의 엔진임에도 소리는 조용했다. 내가 이만큼 힘든 일을 한다고 엥엥 거리며 귀찮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입 다물고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모습으로 조용조용 발걸음을 옮긴다.

렉스턴에는 CDPF 장치가 있다. Catalyzed Disel Particulate Filter의 머릿글자다. 배기가스 저감 시스템으로 디젤엔진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고온에서 태워 없애는 방식이다. 배기가스에 포함되는 미세먼지를 90%까지 줄여준다. 덕분에 클린디젤의 면모를 인정받아 친환경자동차로 분류돼 환경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E 트로닉 방식의 6단 자동변속기 변속레버는 마음에 든다. 수동모드에서 방정맞게 레버를 오르락 내리락 조작할 필요가 없다. 그냥 레버를 손에 쥔 채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와 닿는 조그만 팁 스위치를 위 아래로 조작하면 된다. 다이내믹한 운전을 점잖게 하는 맛이 새롭다. 기어 조작하는 것은 운전자 본인만 알 수 있고 옆에 앉은 사람도 눈치채기 힘들다.

핸들을 쥔 채로도 변속을 할 수 있다. 왼쪽에 시프트 다운, 오른쪽에 시프트 업 버튼이 자리하고 있어 편안하게 버튼을 누르면 변속이 이뤄진다.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프레임 방식으로 만든 차라는 것. 사다리꼴의 강철 뼈대 위에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차의 각 부분을 조립한 뒤 보디를 얹어 차를 만드는 전통적 방식이다. 시대는 프레임 방식을 이미 오래 전에 벗어나 모노코크 플랫폼을 사용하는 추세지만 쌍용차는 여전히 프레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 이 대목은 좀 아픈 얘기다. 쌍용차가 오랜 기간동안 R&D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 후유증으로 아직도 프레임 방식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프레임 방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모노코크가 연비와 승차감에는 유리하지만 차체 강성, 오프로드 주행, 충돌 안정성면에서는 프레임 방식이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프레임이 진동과 소음을 우선 차단해준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프레임 방식이 오래 전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장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잠깐 사진 촬영을 위해 오프로드에 올랐다. 풀타임 사륜구동인 시승차는 비온 뒤 미끄러운 오프로드를 찰지게 달렸다. 구동력을 잃지 않고 차체를 잘 이끌고 달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프로드 타이어를 끼우면 험로주행도 어울리겠다.

50-60km/h 속도로 달리다가 급하게 핸들을 돌리면 언더 스티어링이 일어난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다시 차 앞 부분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프로드 주행의 묘미는 이처럼 미끄러운 길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핸들링의 맛이다.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두 말 할 필요없다. 가격이다. 24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렉스턴 RX4의 가격은 최고급 풀옵션으로 무장해도 3,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대형 SUV임을 자처했던 렉스턴이다. 그랬던 렉스턴이 싼타페보다 싼 가격에 몸을 던졌다. 가격 싸다고 편의장치가 약한 건 아니다. 우드 스티어링 휠, LED 계기판, 2열 히팅 시트, 18인치 휠 등을 갖췄다.

쌍용이 중형 SUV 시장에 작심하고 렉스턴을 내보낸만큼 상품성과 가격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이 차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렉스턴의 장점은 또 있다. 10년이 한결같은 디자인이다. 실제로 렉스턴은 데뷔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큰 차이가 없다. 수시로 차에 변화를 주는 경재차와 달리 렉스턴은 좀처럼 디자인 변경을 하지 않아 새모델과 이전 모델 구분이 쉽지 않다. 오래된 렉스턴을 모는 운전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지금 새로 렉스턴을 사는 이들 중에서는 차가 자주 변하지 않아 오래 새차처럼 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종훈의 단도직입트렁크 바닥이 너무 높아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기 힘들다. 7인승인데 3열 시트를 접어 넣다보니 어쩔 수 없이 트렁크 바닥이 높게 솟아오른 것이어서 어느 정도 이해는 돼지만 그래도 어쨌든 무거운 짐을 트렁크에 싣기 위해서는 허리 힘을 좀 써야 한다. 불편하다.

시승 /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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