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시대는 오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현대차가 만든 전기차 블루온을 탔다는 소식이 들린 지 며칠 뒤 현대기아차 연구소에서 같은 차를 탔다. 사방에 위장막을 씌운 차들이 바글대는 한 가운데에서 시승하는 기분은 묘했다. 앞으로 몇 년안에 시승할 차들이 이미 거기서는 빨빨 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블루온에 대한설명을 듣고 테스트 트랙에 올랐다. 키를 돌려 시동을 켰다. 아무 반응이 없다. 주행준비가 끝났다는 멘트 뿐 차는 아무 소리도 미동도 없다. 엔진이 없으니 소리도 진동도 사라진 것이다. 오랜 익숙함과의 이별이 부르는 잠시의 어색함을 뒤로 하고 가속페달을 힘줘 밟았다.

‘끼익’ 휠스핀을 일으키며 블루온은 냅다 튀어 나갔다. 오호라. 역시 이놈도 차구나. 가속페달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 밟으면 선다. 석유의 시대에서 전기의 시대로 건너가는 큰 변화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차는 차일 뿐이다.

엔진 소리는 당연히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자잘한 잡소리가 그 빈 자리를 채운다. 노면 소음, 타이어 소리, 바람소리 등등. 전기차라 조용할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했다. 흡 차음재를 많이 썼다고는 하지만 소리를 다 덮을 순 없었다.

4명을 태우고도 차는 가볍게 달렸다. 가속이 더디다는 느낌은 없다. 밟는 만큼, 밟는대로 달린다. 이 차의 최고속도라는 시속 130km도 금방 도달한다.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하면 오랫동안의 익숙함이 찾아든다. 소음과 진동. 엔진 소리 대신 여러 잡소리가, 엔진 진동 대신 차와 노면의 어우러지는 흔들림이 차를 차 답게 만들어준다.

변속레버는 D, E, L 모드가 있다. 드라이브, 이코노미, 로 모드로 이해하면 된다. 각 변속기간 주행감이 확연히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주행 상태인 D, 경제운전 모드인 E,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브레이크 효과를 크게 해 회생제동 에너지를 좀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한 게 L 모드다.

25%의 경사로에서 차를 정지 후 출발했다. 사람 넷을 태우고도 거뜬히 움직였다. 이 정도 능력이면 미시령이나 대관령 옛길도 거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충전구는 두 곳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자리한 현대차 앰블램을 살짝 돌리면 충전구가 있는데 이는 220V 가정용 충전구다. 이를 이용하면 약 6시간 동안 충전해야 한다. 기존 연료주입구가 있는 곳에는 급속충전을 위한 고압 충전구가 자리했다. 380V로 충전하면 25이면 80% 충전이 이뤄진다.

충전구 돼지코는 다르게 생겼다. 가정용 전기와 전기차용 전기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전기차용 전기를 싸게 공급하는대신 누진제를 적용하는 가정용 전기로 전용하지 못하게 콘센트를 달리 만든 것이다. 전기차용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한전에 46만원을 내서 공사를 해야 한다.

전기차는 주로 가정에서 충전할 것으로 현대차는 내다봤다. BMW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유소와 같은 개념인 충전소에서는 비상용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충전을 하고 집에서 전기를 주로 충전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집에가면 싼 전기가 있는데 충전소에서 비싼 전기를 살 필요가 없다는 것. 향후 충전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감안해야 할 내용이다. 충전소 열어봐야 돈 벌기 힘든데 누가 돈들여 이를 지을까. 결국 공공기관이 맡아야 할 몫이 아닐까.

이 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130km. 제로백 13.1초, 항속거리는 140km다. 70km/h 정도의 속도로 정속주행하면 항속거리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현대차는 설명했다.

블루온에는 곰 네 마리가 숨어있다. 경제운전을 잘 하면 한 마리씩 계기판에 나타난다. 네 마리가 모두 나타난 뒤에는 화려한 오로라 쇼도 계기판에 보여진다고 한다. 이 쇼를 보려면 반드시 경제운전을 해야 한다.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는 SK에너지가 공급한다. 가볍고 부피가 작은 대신 비싼 배터리다. 이 배터리는 2000회 충전을 기준으로 개발해 약 20만 km를 달릴 수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블루온은 일반인들에겐 상관없는 차다. 아쉽게도 블루온은 일반인들에게까지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약 300대를 만들어 공공기관에 보급한다는 것이다. 11월에 열릴 G20 정상회의에 의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서둘러 내놨다는 얘기도 들리기는 한다. 어쨌든 블루온은 거기까지다.

실망할 건 없다. 기아차가 2012년 2500대 양산을 목표로 또 다른 전기차를 만들고 있어서다. 그때쯤이면 일반인들도 전기차를 구입해 탈 수 있을 것이다. ‘본격 양산 전기차’라는 타이틀은 기아 몫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엔진 소리가 사라진 어색함을 덜고 보행자 안전을 위해 도입한 것이 VESS다. 버추얼 엔진 사운드 시스템, 일부러 소리를 내는 장치다. 하지만 그 소리조차 들리는 듯 마는 듯 너무 조용했다. 이왕 소리를 내기로 했다면 확실하게 내는 게 낫지 않을까.

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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