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문을 닫으면 귀도 닫힌다. 조용한 차 알페온

새 차를 만나는 설레임은 언제 느껴도 좋다. 알페온을 만나기 위해 바다 건너 제주도로 향했다. 언제라도 좋은 곳, 제주는 기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알페온은 지엠대우가 대형세단 시장에 내놓은 야심작이다. 으레 하는 수사로서의 ‘야심작’이 아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전에 없던 새 모델을 내놓는 자세로 심혈을 기울였고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차다. 알페온 이전에 팔렸던 대형세단 베리타스는 언급하지 말자. 베리타스의 존재감이 워낙 미미했기 때문이다.

알페온은 뷰익 라크로스의 한국판이다. 같은 차라고는 하지만 엔진과 서스펜션, 인테리어 등 국내에서 손 덴 부분도 적지 않다. 두어 달 전서부터 자유로에서는 도로 테스트중인 알페온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를 시승하던 중 우연치 않게 로드 테스트 중인 알페온과 달리기 시합을 벌인 적이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서로 꼬리를 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렸다. 테스트 드라이버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 함께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코너에서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고 달리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예사롭게 볼 차가 아니라는 인상을 그 때 받았다.

다시 제주에서 알페온을 만났다. 드디어 시승할 기회가 온 것이다. 공항 주차장에 얌전하게 서있는 알페온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미소가 번진다. 새 차를 처음 볼 때의 충격, 혹은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둥그레지는 반응은 없다. 이미 사전에 알려진 모습 이어서다. “아, 사진으로 본 차가 이 놈이구나.”는 정도의 가벼운 설레임 정도를 느낀다.

새 차를 내놓을 때의 풍경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예전에 새 모델은 발표회를 하는 그날 까지 절대 보안, 극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메이커에서 앞서서 디자인을 흘려준다. 디자인 스케치, 익스테리어 사진, 인테리어 사진, 성능 순으로 단계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언론에 발표를 한다. 끝까지 공개를 하지 않는 게 가격 정도이지만 그나마 알페온은 가격조차 미리 오픈해버렸다. 더 이상 숨길 게 없는 차가 된 것. 신비감이 사라진 신차발표회는 공식적으로 출시를 선언하고 사진 찍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시승은 제주공항에서 성산포까지 약 50여km. 그나마 중간에 운전자를 교대해야 했다. 짧은 시승인 만큼 집중해야 했다.

■ 디자인럭셔리 세단이지만 고전적이지 않다. 루프 라인이 뒤로 눌려있고 C 필러 주변의 라인은 쿠페 스타일을 응용했다. 디자인 부문 김태완 부사장은 알페온이 ‘디자인 르네상스’를 구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고급스러움을 잘 살렸다.

라디에이터의 수직 그릴은 대형 세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요소다. 수직 그릴은 대형세단에 걸맞는 권위적인 요소이지만 얇게 만들고 옆부분은 살짝 비틀어딱딱함을 덜어내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 가운데 자리한 앰블럼은 뷰익 마크 대신 알페온이 들어가 있다.

포근한 인테리어다. 운전석 주변을 부드럽게 감싸는 공간은 고속 주행 시에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인테리어는 권위적인 대형세단에서 맛보는 딱딱하고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개방적이고 유니크한 멋이 스며있다. 지엠대우의 회사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인테리어다.

조금 큰 듯 한 스티어링 휠은 손에 잡기 딱 좋은 굵기다. 두 개의 클러스터로 구성된 계기판은 대형세단의 것이라고 하기엔 조금 앞선 스타일이다.

내비게이션은 만족스럽다. 매우 선명하고 지도 표시도 분명해서 보기 편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다. 소리의 질감을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기자의 귀지만 11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오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는 뭔가 달랐다. 소리에 입체감이 있어서 귀가 호강했다. 그런데 인피니티다. 인피니티가 독일 하만벡커사가 만든 오디오 브랜드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닛산 인피니티를 함께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어색함, 혹은 묘한 언밸런스를 느낀다. 한글로는 인피니티지만 영어로 쓰면 다르다. 오디오 인피니티는 y로, 자동차 브랜드 인피니티는 i 로 끝난다.

센터페시아의 각종 스위치들은 적재적소에 자리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우수하다. 짧은 변속레버가 마음에 든다.

인테리어의 구석구석은 마무리가 야무지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했던 예전 대우의 모습이 아니다. 면과 면이 만나는 틈새, 높낮이의 차이 등이 한 차원 높게 마무리 됐다.

알페온은 경쟁모델로 꼽히는 그랜저나 k7보다 크고 넓고 높다. 실내 공간 확보 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알페온의 길이x너비x높이는 4995x1860x1510mm로 4965x1850x1475mm인 K7보다 30mm 길고, 10mm 넓고 35mm 높다. 휠베이스는 K7이 길다. 알페온의 휠베이스는 2837mm로 2845mm인 K7보다 8mm 짧다.

18, 19인치 타이어는 보기에도 믿음직스럽다. 18인치는 미쉘린, 19인치는 굿이어 타이어를 끼웠다. 국내에서 차를 만들면서 수입산 타이어를 장착하는 게 아마도 알페온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원가를 생각하기보다 차의 기본 성능을 충실하게 가져가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성능v6 3.0 엔진은 직분사 방식이다. 지엠이 자랑하는 엔진이기도 하다. 10월 중순엔 2.4 엔진이 추가된다. 미국서 팔리는 라크로스는 2.4와 3.6 엔진이 적용된다. 한국에선 2.4와 3.0으로 라인업을 구축했다. 중형 토스카와 너무 간격을 벌리지 않으면서 준대형, 대형 세단 시장을 커버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나쁘지 않는 전략이다.

알페온은 조용했다. 시동을 켜면 새근거리는 아기 숨소리가 들린다. 차 문을 닫는 순간 바깥 세상의 온갖 잡소리들이 귀에서 멀어진다. 탁 트인 시야는 여전히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있지만 귀 만큼은 차창 밖과 완전히 단절됐다. 차가 움직이면서 조용함에 대한 느낌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렉서스 킬러’라고 했다. 그 말이 화살처럼 가슴에 탁 박혔다. 고개가 끄덕여 졌다. 시동을 켜는 순간 소음측정을 했다. 69db 정도의 소음이다. 공회전 중에는 훨씬 더 조용해진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까지도 떨어진다. 263마력의 힘을 6단 변속기가 매우 효율적으로 컨트롤하고 있다. 짧은 구간에서 시속 150KM 이상으로 달렸는데 조용함은 여전했다. 고속 주행 중에도 엔진 소리는 크지 않았다. 킥 다운을 해도 엔진 소리는 이불을 덮고 지르는 소리처럼,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릴 뿐이다. 방음에 엄청나게 신경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정숙성의 새로운 기준을 알페온이 제시하고 있다.

순간가속을 즐기는 오너라면 알페온을 부담스러워할지 모른다. 엉덩이가 무거워서다. 가속을 하면 가볍게 앞장서서 달리는 게 아니라 엉덩이를 뒤로 빼며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생각만큼 가볍고 탄력 있게 달려주는 맛이 덜하다. 263마력이 공차중량 1785KG을 업고 달리는 셈이니 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는 6.8KG으로 무척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체감되는 무게감은 훨씬 더 무겁다.

0-100km/h를 계측해본 결과 10.51초를 기록했다.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브레이크도 예민하기 보다는 초기 반응이 덜 민감했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가 더 강하게 밟아야 했다. 시속 100km에서 정지까지의 거리는 41.79m. 시간은 3.0초였다.

전체적으로 차의 특성을 살펴보면 편한 승차감에 중점을 둔 세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부드럽고 편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게 달리는 데 포커싱을 두고 예민하고 빠른 가속과 예민한 대신 조금 거친 제동성능을 어느 정도 희생했다고 보인다.

결국 차의 정체성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예민하고 빠른 스포츠 세단이 아니라 승차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고급 럭셔리 세단이라면 앞서 언급한 특성들이 차의 성격에 들어맞는 셈이다. 타깃 연령층을 조금 높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왕 그렇게 간다면 라크로스에 적용된 사륜구동 모델을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핸들을 완점히 감으려면 2.8 회전을 해야 한다. 3회전이 안 되는 것. 스티어링 휠은 조금 큰 듯해도 조향비는 타이트 한 편이다. 빠르게 무리를 지어 달리면서도 제주도 중산간 도로의 직선로는 물론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서도 정확하게 차체를 제어했다. 운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조향성능이다.

알페온은 2.4모델부터 3.0 최고급까지 모두 8개 트림을 운용한다. 가격은 3,040만원부터 4,087만원까지. 풀옵션모델은 4177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앞바퀴 굴림인데 뒷좌석에 센터 터널이 높게 솟아올랐다. 언뜻 그 모습을 보며 후륜구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와이어 하니스 등이 많아서 센터 터널 공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지만 이보다는 뷰익 라크로스의 사륜구동 모델에서 답을 찾아야 할 듯하다. 알페온의 오리지널 모델인 라크로스에는 사륜구동 버전이 있다. 사륜구동과 플랫폼을 함께 쓰는 이유로 센터 터널이 솟아오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어쨌든 앞바퀴 굴림임에도 솟아오른 센터 터널 때문에 뒷좌석 공간은 셋이 타기에 불편하다.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에 크롬을 사용한 부분은 아쉽다. 번쩍이는 크롬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마감재로 바꾸는 것이 이 차의 격에 어울리겠다.

제원

알페온 3.0

전장 (mm)

4,995

전고 (mm)

1,510

전폭 (mm)

1,860

축거 (mm)

2,837

윤거 (mm)

1,581

1,581

엔진

엔진 형식

3.0L V-6 SIDI

배기량 (cc)

2,997

최대 출력 (ps/rpm)

263/6,900

최대 토크 (kg.m/rpm)

29.6/5,600

변속기

6단 자동

연비 (km/ℓ)

A/T

9.3

공차 중량 (kg)

A/T

1,785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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