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다루기 쉬운 수퍼카 뉴 카이엔 터보

카이엔이 새 모습을 선보였다. 2002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8년여만의 변화다. 가장 큰 변화는 라인업에서 찾을 수 있다. 포르쉐에서 처음 하이브리드와 디젤 모델이 추가된 것이다. 카이엔이 더욱 화려해진 라인업을 뽐내게 됐다. 한국 시장에서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만날 수 있다. 모두의 우려와 달리 카이엔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모델이다. 911에 이어 카이엔, 그리고 최근의 파나메라까지 포르쉐의 모델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면서도 포르쉐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 상호간섭이 없게 철저하고 치밀한 상품전략에 따라 만들어진 차들이다. 포르쉐의 핵심가치는 양보하지 않으면서 전혀 다른 차들로 구성된 라인업이다. 비슷한 차들을 무조건 많이 만들어 놓고 보는 대중차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전략이다.

뉴 카이엔은 디자인부터 변했다. 헤드램프는 좀 더 단순한 라인으로 분명해졌고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도 변했다. 각진 스타일의 단순했던 리어램프는 좀 더 유니크한 라인으로 변해 부드럽고 세련된 형태를 택했다.

카이엔 터보는 다른 카이엔과 달리 보닛이 솟아 올라 파워돔을 만든다. 터보를 올리면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보닛을 위로 솟아오르게 설계했다.

카이엔은 독일 사람처럼 크다. 위풍당당한 체격을 가졌다. 폭이 1800을 기준으로 보는데 이 차는 1900mm를 넘는다. 휠베이스만 2855mm다.

인테리어는 극적으로 변했다. 스티어링 휠은 군살을 쫙빼서 날씬해졌다. 센터페시아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파나메라에서 가져온 디자인. 센터페시아와 센터콘솔의 경계를 허물었다. 센터콘솔을 센터페시아쪽으로 바짝 끌어올렸다. 조작하기 편한 구성이다. 항공기의 콧핏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버튼들이 운전자를 압도한다. 많은 버튼을 늘어놓으면 깔끔하게 정돈된 이미지를 얻기 힘든대신 원하는 기능을 바튼 한번 조작으로 즉각작동할 수 있다. 원샷원킬인 셈이다.

시트 포지션은 조절 범위가 크다. 키가 큰 사람도, 작은 여성도 자기 몸에 딱 맞게 포지셔닝을 할 수 있다.

카이엔 터보는 4.8 바이터보 엔진 장착해서 500마력의 힘을 낸다. 말이 500마력이지 수퍼카에서나 만날 수 있는 힘이다. 500마력과 제로백 5초대를 수퍼카의 기준으로한다면 이 차 수퍼카 맞다. 심플하고 신사다운 보수적인 디자인이지만 그 안에 500마력이 넘는 괴력을 지닌 몬스터급 수퍼카다.

성능에 대한 집착은 포르쉐의 특징이다. 911만봐도 크지않은 엔진, 수평대향, 리어 미드십을 고집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모습을 보면 외골수적인 고집스러움을 본다. 그렇다고 소비자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이상으로 충족시키는 결과물을 내놓는 포르쉐였다. 카이엔도 마찬가지다.

80km에서 낮은 엔진 소리는 들리는 듯 마는 듯 하지만 작아서 오히려 귀를 쫑긋 세워 듣게 된다.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가진 소리다.

일상속도에서는 편안하게 순항하는 느낌이다. 그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조금이라도 더 밟으면 금새 돌변한다.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다. 멈칫거림 없이 리얼타임으로 반응한다. 일반적인 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즉답식 반응은 발끝에서 시작해 엉덩이를 타고 머리로 전해진다.

포르쉐 섀시컨트롤시스템을 통해 차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온로드에서는 차체를 낮추고 오프로드에서는 차체를 높여 움직일 수 있다. 서스펜션의 높이와 강도를 주행상황에 맞춰 조절할 수 있다.

차체가 높아 길을 내려다 보며 달리는 맛이 색다르다. 911이 도로에 밀착해 달린다면 카이엔은 도로를 내려보면서 달린다.

8단 변속기를 장착했다. 팁트로닉 s다. 연비도 개선해서 리터당 5.7km다. 변속순간의 부드러움, 8단의 효율성 등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수동변속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리아 패키지에는 팁트로닉만 올라간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에도 못미쳤다. 매우 안정적이고 힘에 여유가 있다. 시속 100km 정도에서 큰 힘 낼 필요 없다는 말이다. 고속에서 더 큰 힘을 쏟아부을 여유를 말해준다.

계기판 가운데에는 rpm 게이지를 배치했다. 당연히 시동키는 왼쪽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구성들이 포르쉐를 포르쉐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서서히 가속을 시도했다. 힘은 남고 차는 가벼웠다. 더 줄일데가 어디 있었는지 이전 모델에 비해 185kg을 더 줄였다고 한다.

계측기를 붙여 제로백 타임을 측정했다. 10여차례 측정했는데 한결같이 5초대를 기록했다. 베스트 기록은 5.12초. 출발해서 80m만에 시속 100km를 넘겼다. 시속 200km는 18.11초. 650.49m를 달려 시속 200km 에 닿았다. 수퍼카의 성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시속 100km에서 정지시간은 2.58초, 정지거리는 35.19m였다. 수퍼카에 어울리는 제동력이다.

모든 카이엔은 풀타임 사륜구동이다. 풀타임 4륜구동이라 코너에서도 안정감이 있다. 차가 높아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으나 사륜구동이 주는 안정감이 이를 상쇄하고 남는다. 코너에서 차를 심하게 다뤄도 차가 코너를 이긴다. 코너에 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해낸다. 코너링은 도로와 차, 그리고 운전자의 심리 싸움이기도 한데 카이엔 터보는 운전자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줘 보다 여유있게 코너를 빠져 나갈 수 있게 한다. 힘과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패들시프트도 재미있다. 핸들을 쥔 채로 다룰 수 있어 좋다. 시프트 형상도 별도 버튼이 돌출된게 아니라 핸들에 일체형으로 내장돼 있어서 훨씬 조작하기 쉽고 편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엔진소리다. 고속주행시의 소리도 좋지만 시속 70-80 낮은 구간에서 은근히 들리는, 베이스로 깔리는 소리는 진짜 매력적이다. 얇은 옷 안으로 비치는 근육질 같은 느낌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윤곽이 보이는, 그런 느낌을 소리에서 받는다.

500마력의 힘을 가진 카이엔 터보지만 늘 거칠고 다이내믹한 것만은 아니다. 컴포트 모드를 택하면 의외로 부드럽고 포르쉐 치고는 말랑한 느낌을 받는다.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차가 부드럽고 딱딱해지는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예민하고 반응이 빠르고 엔진 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느낌이 온다.

카이엔 터보는 다루기 쉬운 수퍼카다. 제로백을 5초대에 끊는 괴력을 가졌지만 수퍼카의 불편함이 이 차에는 없다. 딱딱한 서스펜션, 힘겨운 페달류와 핸들, 심지어 차에 오르고 내리기가 불현한 게 이름있는 수퍼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카이엔 터보는 성능으로보면 이들 수퍼카에 뒤지지 않고, 편리함에서는 훨씬 앞선다. 필요할 때 힘을 쓰지만 평소에는 얌전한 모습으로 도로 위의 다른 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포르쉐 카이엔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차다. 뭐든지 다 잘하는. 똑똑하고, 싸움도 연애도 잘하고, 공부도 1등 주인공. 어떤 위기에서도 죽지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그런 주인공이 떠오른다. 약점 찾기가 쉽지 않은, 전과목 1등인 존재 같은 차다.

새 모델로 거듭 난 차를 만나면서 ‘일신우일신’ 하루 하루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의 질, 디자인 등에서 좀 더 완숙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결코 자만하거나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강자의 겸손함도 함께 갖췄다. 포르쉐의 피를 간직한, 타 볼수록 맛 있는, 감칠맛 나는 차. 카이엔 터보는 그런 차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수퍼카 다운 왕성한 식욕은 부담스럽다. 메이커 발표 연비는 리터당 5.7km. 물론 이전에 5.1km/L에서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왕성한 식욕임에는 변함없다. 수동변속기를 택할 수 없는 점도 아쉽다. 이는 메이커 탓만은 아니다. 수동변속기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소비자들의 문제도 크다. 하지만 스포츠카를 만드는 포르쉐라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수동 변속기 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으면 좋겠다. 그래야 포르쉐 답다.사진 / 이승용www.cameraey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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