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다이어리

바람에 강한 알루미늄의 유령, 재규어 XK 쿠페

재규어 XK 쿠페. 아름답지만 효율적이지 않고, 낭만적이지만 부드럽지 않은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진 프리미엄 GT카다.5리터 엔진에 385마력의 괴력을 가진 이 차는 머리를 잔뜩 숙여서 타야 해서 ‘겸손한 자만이 탈 수 있는 차’ 이기도 하다.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달리는 재규어 XK 쿠페에 올라탔다.

XK에는 쿠페와 컨버터블이 있다. 지붕을 열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XK 쿠페와 컨버터블은 결국 같은 차다. 유려한 디자인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XK다. 남미 아마존강 유역에 서식하는 고양잇과의 동물로 표범과 비슷한 재규어. 재규어 등에 올라타서 초여름 한나절의 시승을 즐겼다.

XK 쿠페의 매시타입 그릴은 2차 대전을 무대로 활약하던 영국군의 주력 전투기 ‘스핏 파이어’에서 가져온 디자인이다. 재규어는 당시 ‘스핏파이어’의 부품을 제조했었다고 한다. XK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을 때 기체 날개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 됐다고 재규어는 설명했다.

프런트 범퍼 양옆으로 아가미처럼 배치한 에어덕트가 눈길을 끈다. 쳐진 눈매를 가진 헤드램프는 XK의 공격적인 디자인을 순화시킨다. 높이는 1305mm에 불과하다. 노면에 바짝 달라붙어 달릴 수 있는 체격이다.

재규어의 디자인은 갈수록 현대화되고 있다. XK 뿐 아니다. 최신형 XF, 얼마전 출시한 XJ 등을 보면 이게 재규어 맞나 싶을정도로 과거 디자인 틀을 깨고있다. 전통을 강조하는 유니크한 디자인에서, 현대을 지나쳐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재규어의 모습은 때로 당혹스럽다. 재규어를 평할 때 흔히 사용되는 ‘숙어’와 같은 표현인 “연미복을 차려입은 영국 신사 같은 디자인”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연미복을 벗어던지고 최신 유행의 슈트로 갈아입은 모습이다. 변화된 모습은 항상 낯이 설어서 문제다.

제대로된 쿠페는 멋있지만 실용적이지 않다. 낮은 차체 안에 몸을 들여 놓으려면 머리를 잔뜩 숙이고 차에 올라야 한다. 실내 공간도 차 크기에 비해 좁다. 지붕은 낮게 내려와 머리를 압박하고 2인승 시트는 제대로 누일 수조차 없다. 재규어 XK 쿠페라고 예외는 아니다. 큰 차지만 몸을 압박하는 시트와 여유가 없는 헤드클리어런스(머리 윗 공간)는 여유를 앗아가 버린다.

눈은 호사를 누린다. 고급 가죽으로 발라진 인테리어는 호화롭다. 고급 원목을 사용한 우드트림도 예사롭지 않다. 변속레버 대신 자리한 드라이브 셀렉터는 마치 미래의 차를 탄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변속레버를 로터리 스위치처럼 만든다는 생각은 참 기발하다. 거창하게 자리잡은 변속레버를 없애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다. 더구나 재규어의 변속레버는 J 타입 레버로 많은 이들이 좋아했던 방식이지 않은가. 자동변속기면서 각 레인지별로 고유의 위치가 있던 레버여서 수동처럼 사용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재규어의 J 타입 변속레버는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과감하게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눈을 돌린 재규어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꾸 고개를 뒤로 돌려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나이 먹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j타입 변속레버는 이제 많은 이들의 노스탤지어로 남을 것이다.

차창은 좁다. 숄더라인은 높고 차창은 좁다 차 안에 파묻힌 느낌이 든다. 유사시에 차창을 깨더라도 몸이 제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차창이 좁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그 창으로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기자가 뚱뚱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쨌든 뚱뚱한 사람은 XK의 차창으로 빠져나가기 힘들 수도 있으니 더더욱 안전운전하는 게 낫겠다.

기존 4.2 리터 엔진을 대체한 V8 5.0리터의 엔진은 385마력의 힘을 낸다. 배기량만 보면 적어도 400마력 이상은 가야할 것 같지만 자연흡기 방식을 채택해 이 정도 힘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충분한 파워다. 메이커 발표에 따르면 0-100km/h 가속 시간이 5.5초에 불과할 정도로 빠른 차다.

차체는 알루미늄이다. 차체 어디에도 자석이 붙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경량 차제를 쓴 것이다. 이정도 크기의 일반적인 차라면 2톤이 넘겠지만 이 차의 공차중량은 1690kg에 불과하다. 8기통 엔진에 프리미엄 쿠페에 걸맞는 다양한 편의장치, 6단 변속기 등을 다 장착하고도 이 정도 무게에 불과한 것은 강철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엔진의 힘을 높이는 방법은 엔진 자체의 파워를 끌어올리는 것과, 차의 무게를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마력당 무게비 4.4kg은 수퍼카에 준하는 비율이다.

달리기 성능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가속페달을 툭 하고 터치하는 것 만으로도 차체는 앞으로 쏜살처럼 나갈 태세다. 페달을 깊게 밟으면 정신없이 달려 나간다. 시트가 몸을 밀고 나가는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차창을 열어 손을 날개처럼 뻗으면 날아오를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힘이 힘인 만큼 여기까지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진짜로 놀라운 일은 시속 150km 전후의 고속에서도 바람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A 필러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는 들리는듯 마는듯 150km/h까지도 조용했다. 미끈하게 다듬어진 보디가 바람의 저항을 잘 다스리며 달리고 있는 것이다. 공력특성이 대단했다. 시속 200km에서도 귀에 착착 감기는 엔진소리가 바람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엔진 소리도 특별하게 튜닝됐다. 엔진 흡배기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도록 ‘흡기음향 피드백 시스템’이 적용됐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800이다. 조용한 편이다. 8기통 엔진의 여유있는 힘이 굳이 rpm을 높이지 않아도 필요한 힘을 뽑아내준다. 시속 200km에서도 rpm은 4500을 가리킨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유있는 힘을 확인시킨다. 2단이 시속 110km까지 커버하고 3단은 160km/h, 4단은 220km/h까지 달린다. 220km/h에서 5단 시프트 업이 일어나면 변속비가 오버드라이브 상태가 되면서 더 이상 가속은 힘들다.

이 차에는 다양한 전자장비들이 운전자를 돕는다. 액티브 디퍼렌셜 컨트롤(ADC), 어댑티브 다이내믹스 등이다. 액티브 디퍼렌셜 컨트롤은 각 바퀴에 전달되는 토크 비율을 전자동으로 제어하여 접지력과 가속력을 향상시킨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는 초당 100회에 걸쳐 차체 움직임을 분석, 댐핑 강도를 노면과 주행상황에 맞게 능동적으로 조절한다. 승차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최상의 핸들링 컨트롤 및 접지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들 장치 덕분이다. 뉴 XK 쿠페에는 보행자 안전 보닛(Pedestrian Deployable Bonnet System, PDBS)이 적용됐다. 프론트 범퍼에 적용된 최첨단 센서를 통해 보행자와의 충돌 시 보닛을 단 100분의 3초 이내에 17cm 들어올려 쿠션 효과를 제공해 보행자의 머리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장치다. 적응형 승객안전보조장치(Advanced Restraint Technology System, A.R.T.S)는 충돌의 방향과 정도, 운전자 탑승 여부, 운전자의 자세 그리고 안전벨트의 사용여부를 감지하여 에어백의 공기압을 조정한다.

재규어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몰락한 가문의 상속자를 보는 기분이 이럴까. 재규어는 롤스로이스와 더불어 영국의 자존심 ‘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영국의 자존심 ‘이었던’ 재규어는 지금 인도로 팔려갔다. 식민지였던 인도가 식민통치를 하던 영국의 자존심을 삼켜버린 것이다. 돌이켜보면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 롤스로이스는 BMW에, 랜드로버는 BMW를 거쳐 포드로 갔다가 재규어와 함께 인도 타타그룹으로 넘어갔다. 로터스는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이 소유하고 있고, 벤틀리는 폭스바겐 문중에 들어갔다. 알짜배기 브랜드 미니를 BMW에 넘긴 로버는 중국 상하이차가 차지했다. 이제 영국차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는 에스턴 마틴 정도가 유일하다. 대영제국의 몰락 만큼이나 허망한 영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이다.

그렇다고 재규어를 ‘인도차’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영국에서 영국 사람들이 만드는 ‘영국차’임이 분명하다. 인도 회사가 지배하는 영국회사에서 재규어가 어떤 역사를 새로 써나갈지 궁금하다. 이제부터 나오는 재규어의 새 모델들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센터 페시아의 재질은 그리 고급스럽지 않다. 1억 5,900만원을 호가하는 차값을 감안하면 훨씬 더 고급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비게이션은 리모컨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다. 차와 일체화 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브레이크를 밟으면 핸들이 떤다. 타이어 정렬의 문제이거나, 브레이크 디스크 등 부분적인 문제임이 분명하다.

사진 / 이승용www.cameraey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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