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격전장이 되어버린 한국에 뒤늦게 스바루가 뛰어들었다. 한국에서 보면 지각생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들어와 쓴만 단맛 다보고 있는데 멀찌감치 떨어져 눈치보던 스바루가 드디어 결단을 내리고 한국에 입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 넘어야할 산은 많다. 판매망도 짜야하고, 수입 차종도 늘려야 한다. 뿐만 아니다. 많이 팔아야 한다. 차 팔러 왔으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터. 하지만 사람들은 스바루를 잘 모른다. “스바루? 그런차도 있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있다. 그것도 대단히 매력있는 녀석이다.
스바루. 사전을 찾아보면 6連星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 한자를 다시 풀어보면 ‘나란히 자리한 여섯 개의 별’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별 이름에서 스바루가 온 것이다. 레거시는 ‘유산’을 뜻하는 영어다. 스바루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치있는 유산” 이라고 설명한다.
처음 이 차를 만난 것은 지난 겨울 수도권의 한 스키장에서다. 스키장에서 이벤트를 여는 브랜드들은 모두 사륜구동을 뽐내고 싶어한다. 스바루 역시 마찬가지. 레거시를 비롯해 포레스터와 아웃백을 스키장에 풀어넣고 환상적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적어도 겨울에는 스바루의 모델들을 따라올 차들이 그리 많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한 여름. 레거시 운전석에 올랐다. 생김새부터 풀어보자. 단순한 그릴에 거창한 램프다. 프런트 마스크는 그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낯선 모습이다.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레거시는 말하고 있다.
트렁크 리드가 매우 짧게 떨어지는 옆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닛은 길고 트렁크는 짧다. 세단의 안정감보다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디자인이다. C필러를 둘러싼 라인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C 필러에 맞물리는 윈도 프레임의 꺾임은 BMW의 ‘호프 마이스터 커브’를 닮았다. 휠하우스 주변을 볼륨감 있게 처리한 부분도 포인트다.
인테리어는 카본, 가죽, 우드 등의 소재를 잘 섞어 사용했다. 핸들만해도 이 들 3개 재질이 모두 섞였다. 운전석을 둘러싸고 조수석까지 감싸는 공간에 가죽과 우드로 장식한 부분도 적당한 고급감을 준다. 최고급의 가죽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몸을 지탱하기에는 모자람 없는 시트다.
센터페시아는 단순하다.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주요기능이 모여있고 그 아래 공조스위치정도만 있다. 센터페시아에는 금속 소재를 사용했다. 세련된 느낌, 날카로운 느낌, 차가운 느낌이 공존한다.
실내는 넉넉한 공간이다. 선루프는 한 번에 열 수 있어 좋다. 열리는 동안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원 터치로 해결할 수 있다.
가속을 하면 엔진 소리가 힘 있게 들린다. 기분 좋은 소리다. 사뿐 거리는 발걸음. 가벼운 발걸음이다.
출발 초기 가속감은 대단하다. 시트가 미는 것을 몸이 느낀다. 레거시는 강한 성능을 보여줬다. SUV인 아웃백의 경우 시속 200km를 겨우 터치하는 수준이다. 계기판의 시속 200km는 GPS로 실측하면 시속 180km를 넘는 정도다. 같은 엔진을 쓰는 레거시는 훨씬 더 빠른 속도를 냈다.
차의 흔들림이 적어 고속에 도전해볼 용기를 주는 차다. 불안감이 덜하다는 얘기다. 차를 제대로 컨트롤하는 데 문제가 없다.
비슷한 성능들을 보여주는 스바루 라인업이다. 레거시가 그중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포레스터나 아웃백은 SUV인만큼 세단만큼의 성능을 보이기는 힘들다. 레거시의 달리는 맛은 끝내준다. 고속안정감이 인상적이다. 차의 흔들림이 확연히 다르다. 사륜구동에 리어 더블위시본까지 장착해 흔들림을 덜어내 승차감을 높인다.
변속기는 5단 자동이다. 2.5엔진에는 무단변속기가 올라간다. 고출력 엔진에는 무단변속기가 감당하기에 무리다. 때문에 5단변속기가 선택됐다. 변속충격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부드럽다.
시속 100에서 rpm은 2000 전후가 된다. 5단 변속기를 쓰다보니 엔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핸들링은 안정적이다. 또한 바로 응답한다. 수평대향 박서 엔진을 낮게 배치한 덕이다. 콤팩트하면서 진동에 강한 엔진이다. 두꺼운 책 한권 정도의 부피다. 이를 차 아랫 부분에 깔아놓을 수 있다. 무게 중심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만큼 차의 흔들림이 적어지고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주행안정성이 좋아지고 운전자도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로 차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바람소리도 그리 크지 않다. 120정도에서. 힘은 충분하고 차는 편안하다. VDC는 차를 잘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준다. 고속에서의 불안함을 사륜구동이 상쇄하면서 직진주행안정성을 높여준다.
코너에서도 별다른 흔들림없이 부드럽고 여유있게 빠른 속도로 깨끗하게 돌아나갈 수 있었다. 색다른 코너링 경험이다. 타이어는 비명을 지르지만 차체는 부드럽게 코너를 들어가고 탈출한다. 안정감 있는 코너가 재미있다.
VDC는 일찍 개입하는 편이다. 헛바퀴를 느끼기 힘들다. 브레이크 오버라이드도 정확하게 기능한다. 원하지 않는 급출발 상황이 벌어질때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책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차를 살까. 스바루라는 브랜드를 접했거나 아는 이들이 구매층이 될 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 차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낯선 메이커다. 시간을 가지고 좁은 시장을 점차 넓혀야 하는 게 스바루의 숙제다.
성능에 집중한 차라는 인상을 받았다. 박서엔진, 사륜구동, 안정감, 고속주행성능, 코너링 등 성능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고 치밀하게 만들어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밖의 부분에서는 성능에서 만큼의 집요함이 보이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으로 만든 ‘유산’인 셈이다.
스바루가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또 하나의 차가 있다. 바로 임프레자다. WRC를 통해 명성을 쌓아온 스바루의 대표선수인 이 차는 그러나 정작 한국 판매 라인업에서는 빠졌다. 그 차 ‘임프레자’를 기다려 본다.
오종훈의 단도직입트렁크 윗부분을 볼 필요가 있다. 거친 철판과 나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매우 거칠다. 방음재로 덮거나 철판을 매끄럽게 처리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성능에 아무 상관없는 부문이라고 치부해선 안된다. 바로 그런 지점에서 차의 격이 갈린다. 타이어는 무르다.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는 데 비명을 세게 지른다. 차체는 여유있고 안정적인데 타이어 엄살 때문에 더 밟을 수 없다. 입이 무거운 타이어였으면 이 차와 더 잘 어울리겠다.
가속테스트영국 레이스로직이 개발한 비디오 브이박스를 통해 차의 성능을 실측했다. 가속 테스트 결과 0-100km/h 가속시간은 7.73초를 기록했다. 거리는 119.55m. 시속 200km까지는 30.75초, 1160,12m가 걸렸다. 그래프를 보면 속도를 높일수록 가속이 더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동테스트시속 100km에서 급제동을 했다. 제동시간은 3초가 채 안되는 2.99초, 제동거리는 42.65m다.
사진 / 이승용 www.cameraey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