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대 5시리즈가 한국에 왔다. 5시리즈는 72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 40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BMW의 대표 차종이다. 초소형차 이세타를 내놓은 후 다섯 번째 등장한 모델이라는 의미를 담아 5시리즈로 처음 이름을 붙였다. 이제는 중형차를 말하는 숫자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르노삼성차와 기아차가 자사의 중형차에 5라는 숫자를 붙인 것은 결국 BMW를 따라하고 싶다는 말이다. 새로운 5 시리즈중 535i와 528i, 523i 세 가지 가솔린 모델이 먼저 한국을 찾았다. 550i는 예정이 없고 530D와 525D는 하반기에 들여올 예정이다. 오늘 시승차는 BMW 528i다.
BMW의 새로운 디자인 책임자 호이동크가 새 5시리즈의 디자인을 지휘했다. 길이는 58mm가 길어졌고, 14mm넓어졌다. 높이는 4mm가 낮아졌다. 휠베이스는 80mm가 늘어났다. 길고 넓고 낮아진 체형으로 변한 것.
얼굴도 크게 변했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불꽃 형상의 헤드램프는 눈꼬리가 쳐진 유순한 모습으로 변했다. 키드니 그릴은 훨씬 더 커졌다. 보닛의 곡면은 안으로 푹 꺼지게 만들었다. 빵빵한 볼륨감 대신 팽팽하게 날이 선 긴장감을 주는 디자인이다. 옆면의 캐릭터 라인은 깔끔하다. 오버항은 지금까지 5시리즈중 가장 짧다.
계기판은 중요한 정보들이 우선적으로 드러나게 잘 배열됐다. 아이드라이브의 조그셔틀은 직관적으로 보고 사용하기 편하다. 7 시리즈에 처음 아이드라이브가 적용됐을 때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진화하는 것이다.
직렬 6기통 3.0 엔진이다. 실키 6로 불리는 직렬 6기통 엔진이다.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는 31.6kgm의 힘을 가졌다. 306마력의 535i는 넘치는 파워를 주체하기 힘들고, 204마력의 523i는 급가속할 때 살짝 더딘 맛이 있다. 528i는 국내 수입되는 5시리즈 3개 휘발유 차종 중 다루기가 가장 쉽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힘이 운전자의 의도대로 따라온다.
528i의 6기통 엔진은 두 얼굴을 가졌다. 우아하고 럭셔리하게 움직이다가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친 숨을 내뱉으며 야성을 드러낸다.
시속 100km에서 알피엠은 2000에 못 미친다. 그만큼 안정적이다. 바로 자동 8단 변속기의 힘이다. 최적의 기어비 조합으로 부드럽고 효율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7시리즈에 이어 5시리즈에도 8단 변속기가 적용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킥다운 하면 엔진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귀를 자극하는 얇은 소리가 아니다. 굵은 토크감을 잘 살리는 엔진 사운드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고성능의 이미지를 준다. 소리를 덮어서 막는 게 아니라 이왕 들리는 소리라면 듣기 좋게 만드는 게 독일차들의 특징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굳이 계기판이나 내비게이션을 보이지 않아도 앞만 보면서 운전할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봐도 아이디어가 좋고 잘 만든 시스템이다. 시간이 갈수록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많은 정보가 세련되게 표현되고 있다. 진화하는 것이다.
시속 80km에서 아주 편안하게 달린다. 일상주행영역에서는 역동적이기 보다는 편안하게 다루는 게 좋겠다. 시내에서 굳이 방방거리며 거칠게 차를 다룰 필요는 없으니까. 야외에 나설 땐 조금 거칠어도 좋겠다.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확트인 곳을 힘 있게 달리다 보면 이 차의 또 다른 맛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럭셔리 세단의 편안함과 스포츠 세단 같은 단단한 성능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순식간에 시속 160km까지 치고 오른다. 거칠게 없다. 속도를 조금 더 올려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그리고 힘 있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앞서 말했듯 컨트롤하기 딱 좋은 힘이다. 힘이 너무 강하면 곡선로, 슬라럼 주행할 때 스티어링휠을 정확하게 조작해야 한다. 이 대문에 오히려 강한 힘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언더 스티어링이 발생하거나 컨트롤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120km/h 전후의 속도에서도 엔진은 부드럽다. 엔진 회전수를 높일 이유가 거의 없다. 힘 있게 쓸 필요 없어. 자동 8단 변속기는 저회전 영역에서도 필요한 힘을 뽑아낸다. 덕분에 얌전하게 차를 다룰 수 있다. 편안하게 운전하면 그렇다. 힘이 필요할 때엔 야성을 드러내며 강하게 끌고 달린다. 엔진 소리부터 다르다. 코너에서는 후륜구동이라 무게 균형이 잘 맞은 차의 매력이 한껏 드러난다. 힘과 안정감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뒷바퀴 굴림의 추진력, 미는 힘은 확실히 다르다. 또한 스티어링 성능도 정확했다. 코너에서도 차가 불안하지 않다. 정확하게 반응을 한다. 일반 운전자의 입장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차다. 신뢰할 수 있는 차는 그만큼 안전하다. 운전자와 차의 신뢰, 교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시속 100에서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잔잔한 바람소리가 들린다. 적당히 차의 속도를 짐작케 할 수 있는 편안한 소리다. 고속에서도 바람 소리는 거부감이 없다. 노면 잡소리는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실내에서 느끼는 밀폐감이 좋다. 쾌적함을 유지하는 실내다. 거슬리고 귀찮은 소리는 없다.
시승차에는 없었지만 5 시리즈에도 이제 자동주차 시스템이 적용됐다. 35km/h 속도로 달리면서 차가 스스로 공간을 확인한다. 좌우측 모두에서 일렬주차가 가능하다. 변속기를 후진으로 넣고 핸들에서 손을 떼면 차가 스스로 핸들을 돌리며 주차를 한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만 조작하면 된다.
내비게이션 모니터는 시원해서 좋다. 파노라마 영상 보듯이 16대 9의 고해상도 모니터로 지도와 주행정보를 볼 수 있다.내비게이션은 경쟁모델인 벤츠 E 클래스의 그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수준이 높다. BMW 내비게이션을 보다가 E 클래스의 그것을 보면 짜증이 난다. 한국 시장용 내비게이션까지 독일에서 개발하는 BMW의 정성은 높이 살만하다.
솟아오른 센터터널과 이로 인한 뒷공간의 제약은 어쩔 수 없다. 대신 후륜구동의 안정적이고 우수한 주행성능과 승차감을 얻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는 만큼 무엇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외가 있다. 연비와 효율을 다 잡았다는 BMW의 다이내믹 이피션트다. 달리는 재미와 연비를 어느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다 얻겠다고 고집 부리며 머리를 싸맨 결과 BMW는 다이내믹 이피션트라는 독특한 기술을 완성시켰다. 엔진 효율을 최적화 시켜 힘의 낭비를 막는 것이다. 브레이크의 제동력을 전기에너지로 바꿔 저장하거나 모터로 핸들을 구동시키고, 배터리가 완충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충전을 하지 않는다. 오직 달리는 데 집중하고 쓸데없는데 사용하는 에너지는 줄이고 차단하겠다는 것. 그렇다고 불편한 일은 없다. 잘 달리면서도 연비 좋은 차를 제작하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기술이다. 출중한 미모에 똑똑한 머리까지 갖춘 셈이다.
140km을 넘기며 바람소리 제법 들리지만 엔진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다이내믹하게 들린다. 불안감보다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소리다.
코너에서는 노면을 악착같이 딱 물고 돌아가는 느낌이 전해온다. 아주 탁월하다. 차 높이가 17mm, 최저 지상고가 4mm 낮아져 훨씬 안정적이다. 도로에 딱 붙은 밀착감이 마음에 든다. 서스펜션은 단단하다. 과속방지턱 등을 지날 때 하드한 느낌이 전해진다. 하지만 잔 진동은 없다. 쇼크를 한 번에 확실하게 걸러낸다.
BMW 5 시리즈는 소프트함과 하드함 두루 갖춘 차다. 중저속에서 럭셔리한 편안함을 느끼고, 고속에서는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성능을 흥미진진하게 느낀다. 칼과 붓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선비의 모습을 느낀다. 어울리기 힘든 두 개의 요소를 잘 조화시키는 비결은 ‘기술’이다.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모습을 BMW 5 시리즈는 보여주고 있다.
가속성능0-100km 가속 시간을 실측한 결과 7.49초, 거리는 120.33m로 측정됐다. 정지후 시속 200km까지 도달 시간은 31.35초, 거리는 1189.55m였다.
제동성능100km/h에서 정지할 때까지의 제동거리는 40.42m, 시간은 2.79초였다. 제동성능 그래프를 보면 정지하기 직전에 멈칫 거리는 현상 없이 바로 정지했다. 거칠지만 확실한 제동력을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가속페달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난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운전할 때 가속페달에서 올라오는 삐걱이는 소리는 의외다. 실내가 조용할 때 도드라지게 들린다. 옆 창에비치는 잔상도 아쉽다. 7 시리즈에서와 같이 5시리즈도 사이드 미러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면 옆창에 잔상이 어른거린다. 비오는 날, 야간 주행 시 옆 창에 어른거리는 잔상은 꽤 귀찮은 존재다. 연구해볼 일이다.